[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이인엽(1656~1710)은 1684년(숙종 10)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2년 뒤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는 일찍이 1689년 숙종이 희빈 장씨(禧嬪張氏) 소생을 원자로 정하는 사건을 계기로 서인이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는데, 숙종이 중전 민씨(閔氏)마저 폐하려 하자 전 한림으로서 전 판서 오두인(吳斗寅), 전 참판 이세화(李世華), 전 응교 박태보(朴泰輔) 등의 재야 서인인사들과 더불어 반대소를 올리는 데 참여하였다.
그 뒤 정계에 복귀하여 양역변통(良役變通)을 주관하였으며, 강화유수로서 치적을 남겨 사당이 세워졌다. 특히, 강화부 방비를 위한 진(鎭)의 설치에 관한 그의 견해는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아 후대까지 종종 인용되었는데, 정조대에 이르러 실제 시행에 옮겨지기도 하였다.
벼슬이 행이조판서·홍문관대제학에 이르렀다. 이 초상화는 사방건을 쓰고 푸른색이 감도는 편복을 입고 있는 이인엽의 반신상 모습이다. 얼굴의 음영처리, 깔끔한 선묘, 한올한올 살아있는 수염, 기운이 넘치는 눈동자의 표현은 이인엽의 기운을 잘 전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도포 위로 묶은 홍색 세조대는 이인엽의 지위가 높았음을 알려줄뿐만 아니라 차분한 채색 가운데 적색이 포인트가 되어 그림을 더욱 생기있게 만들어 준다. 이 초상은 조선후기 17~18세기의 대표적인 선비 초상으로 주목된다.
이인엽 초상화는 경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경주이씨 회와공파 종중의 이정희 씨가 기증한 것이다.
<자료: 경기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