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왕이 내게 은밀히 고백했소.

2018.12.30 22:31:12

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3 위기의 장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예지낭자는 충분히 자격이 있소.”

어떤 자격을 말하는 것일까? 이제는 광해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광해군의 심기(心機) 역시 도무지 깊이를 알 수 없는 미로(迷路)요 미궁(迷宮)이었다. 광해군이 갑자기 장예지의 귀에 대고 다시 속삭였다.

“부디 날 도와주오. 예지낭자! 나의 조선을 내 손으로 통치하고 경영할 수 있도록 떠나지 말아주시오. 상대가 누구이든 간에 난 조선을 지켜 낼 것이요. 조선을 감히 넘보는 세력들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요!”

광해군이 진심을 토해냈다. 그의 미끈한 콧날이 장예지의 머리카락에 닿을 듯 가깝게 접근했다. 숨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부왕이 내게 은밀히 고백했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난 왕의 비열한 권력과 혹독한 집념, 빌어먹을 체통과 슬픔, 야속함 따위를 모두 용서해 주고 말았소. 그리고 겨우 깨달았지.  임금은 결국은 나의 임금이었고, 아버지란 사실을.”

광해군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져 바싹 밀착하고 있던 장예지의 가슴골을 타고 흘러들었다. 장예지는 그저 아득함만을 느끼고 있었다. 바다의 바람보다도 더욱 거친 바람이 그녀의 육신을 진저리 치도록 파고들었다.

 

 

* * *

 

“어서 오너라! 과인이 그동안 경황이 없었다.”

선조의 부름은 전혀 의외였다.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은 각기 도승지의 통보를 받고 어전으로 선조를 배알하기 위해 입궐한 것이다. 임해군은 24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약간 상한 얼굴이었다. 한창 혈기가 왕성할 시기였으나 피부도 검었고 어딘가 음침해 보였다. 순화군 역시 18살의 약관이었으나 윤기 없는 얼굴에 눈동자가 탁해 보였다. 더구나 임해군은 세자의 보위를 동생 광해군에게 빼앗긴 꼴이 되어서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파락호에 가까웠다.

“아바마마를 뵈옵니다.”

“소자, 감복할 따름이옵니다.”

선조는 임해군과 순화군을 찬찬히 관찰하였다. 불민한 자태가 한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왕자들은 조선처럼 전쟁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냐?”

순화군이 선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답변했다.

“우리에게 다른 전쟁이 또 있는 것이옵니까?”

선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다면 왕자들의 몰골이 이리 척박할 수 있겠는가. 주로 일과를 어찌 보내는고?”

술로 시작하여 술로 끝난다고 차마 대답을 할 수 없는 임해군이었다.

“임금의 학문을 익혔으나 이제 그것을 버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을 사정없이 비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사옵니다.”

“술로 말이더냐?”

“절망을 이기는 길이 그 뿐인가 합니다.”

선조가 혀를 찼다.

“어리석은 짓이다. 명국에서 보내 온 세자에 대한 견해를 넌 혹시 듣지 못하였느냐?”

 

유광남 작가 ykncf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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