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과 영애 <아름다운 사람>

2019.02.13 12:02:23

수정처럼 맑은 어린 시절의 모습
[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121]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아이를 보면 부모가 보이고 아이들을 보면 세상이 보인다.

 

아이들 버릇없다고 혀 차지 마라.

저 밖에 모른다고 흘기지도 말고

감정이 메말랐다고 탄식도 하지마라.

 

하늘에서 떨어졌겠는가, 땅에서 솟았겠는가.

아이들이 거울이다, 잘 들여다보아라.

거울에 비친 저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다.

 

예절이 밥 먹여 주냐고

남 생각은 뭐하러 하냐고

돈 안 되는 일은 거들떠도 보지 않던 우리의 모습이며

 

내 새끼 귀하다며 호호 불기나 했지

좋은 학교가라며 학원으로만 돌렸지

더불어 살아가는 법과 사랑의 소중함과

지혜가 지식보다 위라는 것을 가르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다.

 

설명해보라.

컴퓨터 게임이 아이들을 망친다하면서도

게임 시장이 몇 십조 짜리라며 육성하는 현실을

몇이 하면 도박이고 카지노에서 하면 오락이 되는 현실을

 

필부의 거짓말은 왜 죄가 되고

위정자의 거짓말은 왜 기술이 되는지 설명해보라.

아직도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지구의 나이가

육천 살이라 우기는 자들이 여전히 세상을 움켜쥐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해보고

정직하면 가난하다는 공식에 대해서도

아이들 앞에 나서서 설명해보라.

 

요즘 아이들 흉포하다고

퇴폐적이라고

끈기 없다고 흉보지 마라.

 

“표현의 자유”라는 구실을 달고 무지막지한 욕설과 끔직한 폭력과

낯 뜨거운 외설작품을 쏟아낸 건 누구였으며, 제 자식 밖에 모르고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어 “단일성 정체감 장애”라든가 “분노 조절 장애” 같은 외우기조차 힘든 사회적 병리현상을 만들어 낸 건 누구였더냐.

 

미풍양속의 붕괴와 이기적 사고와 배금주의에 물든 세상.

부모의 과보호와 성적지상주의 교육과 독선만 보며 자란 아이들.

각종 유해환경과 위선과 모순, 불합리 속에서 자란 그 아이들이

결혼하여 이제 부모가 되었다.

 

보이지 않느냐.

두렵지 않느냐.

 

미풍양속의 붕괴와 이기적 사고와 배금주의에 물든 세상에서

부모의 과보호와 성적지상주의 교육과 독선을 배우며 자라야하는 아이들이.

각종 유해환경과 위선과 모순, 불합리 속에서 자라야하는 아이들이.

그 대물림이.

 

혀 차지 말고

흘기지 말고

원망하지 마라.

이제라도 거울을 보자.

아이들은 죄가 없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 오면

들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 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날은 저물고 비는 내리고 일터에 나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처마 밑에서 기다리자니 그리움이 구름처럼 밀려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이 모습이 아름다움이다.

 

바람이 불어도 좋았다.

가슴을 펼 수 있는 푸른 들판만 있으면 마냥 좋았다.

굴렁쇠를 굴려도 좋았고 아니, 그냥 뜀박질만 하여도 좋았다.

이게 아름다움이다.

 

함박눈이 내린다.

어른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고 누렁이와 둘만 남았다.

마을 뒷산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며 노래를 부른다.

세상을 가슴에 담는다.

이게 아름다움이다.

 

이 노래엔, 우리는 누렸으나 아이들에겐 물려주지 못한 아름다움이 담겨져 있다.

 

사람의 지문은 사물에만 남는 게 아니라 음악에도 남는다.

음악에 웬만한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 듣는 곡이라도

누구의 작품인지 어렵잖게 알아맞힌다.

무늬는 목소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영혼에도 있다.

 

1974년에 발매된 <아름다운 사람>은 현경과 영애의 유일한 독집음반에 수록된 곡으로, 김민기의 무늬가 또렷이 남아있는 작품이다.

 

첫머리의 기타연주는 얼핏 단조롭게 들리나 어린 시절의 맑은 넋을 잘 나타냈고,

베이스 기타는 길동무처럼 이현경의 목소리와 나란히 간다.

박영애는 상대적으로 깊고 남성스런 목소리를 지녔는데,

이현경과 어우러져 흡사 다정한 부부의 느낌을 준다.

본디 화음 곡으로 만들어졌으나 제작자의 고집에 따라 제창 곡으로 취입하였다.

한 폭의 크레용화를 노래에 담아내기엔 제창이 오히려 잘 어울린다는 슬기였을 것이다.

 

당시 서울대학교 미술대에는 듀엣의 계보가 형성 되었는데, 도비두(김민기, 김영세), 두나래(김아영, 최분자)의 뒤를 이어 현경과 영애(이현경, 박영애)가 활동하였다.

그 시절 음대 쪽 보다 미대에서 직업가수가 많이 나왔는데, 음대에서 학생들의 대중음악활동을 학칙으로 금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젊은 층의 사랑을 담뿍 받았던 현경과 영애는, 애초의 약속대로 졸업과 동시에 활동을 접고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우리에게서 순수함이 멀어져 가듯.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ccrk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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