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대교 지나 압록강신대교 넘어 대륙으로 가자

2019.07.20 10:52:43

배를 타고 오가며 덤으로 얻은 재미 몇 가지
백두산과 고구려역사기행(3)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끊어진 압록강 다리, 6.25때 폭파된 한강인도교와 철교에 관해선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또 다른 끊어진 다리들을 보게 되었다. 바로 중국과 북한을 잊는 압록강에 놓인 다리들이다. 몇몇 다리는 지금도 끊긴 체 남아 있고 어떤 다리는 왕래는 하되 북한 경제제제 조치로 시간제한이나 검열을 받으며 가끔 차가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어떤 다리는 완공은 했으나 개통하지 않은 체로 남아있었다. 한ㆍ중합작으로 건설된 압록강 신대교가 바로 그것이다. 그 까닭은 명확치 않으나 개통 되지 않고 있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어 한강대교를 지나 북한땅을 거쳐 압록강 신대교를 넘어 대륙을 달릴 날이 하루 빨리 오길 기원하며 이번 여행 마지막 편을 쓰고 있다.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유적지를 보고 난 뒤 경관 좋은 압록강변을 따라 이동했다. 압록강 상류의 어느 지점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북한 쪽에 근접해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끊어진 다리 하나를 보았다. 다리의 끊어진 부분 사이로 유람선이 통과하면서 운행했다. 북한 주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오가고 강변에서 물놀이를 하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기도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덤으로 얻은 재미 중 하나는 북한 평안도 '안주' 출신 가이드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자기를 '유반장'이라 불러달라는 그 가이드는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국 화교 출신이었다. 1960~70년대 북한의 경제가 괜찮았을 때 중국인 이었던 할아버지가 북조선에 살려고 들어와 정착한 것이다. 화교여서 아버지가 중국을 드나들며 보따리장사를 하여 주위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13년 전에 중국으로 이주하여 여행가이드를 하고 있다. 한해에 한 번씩 북한에 가서 어머니 뵙고 친구들도 만난다고 했다. 삼년 뒤쯤엔 통일이 될 거고 자기가 중요한 인물이 될 거라며 너스레를 떠는 38살 청년이다. 북한 억양이 정겨웠고 가감 없는 북한의 실상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이번 여행 지역이 북한접경지역이라 그런지 음식이나 생활 문화가 크게 낯설지 않았다. 백두산유역에서 채취된 야생블루베리 말린 것과 그 블루베리로 만든 들쭉술 맛이 일품이었다. 그 가이드의 소개로 말린 능이버섯을 사서 귀국 뒤 삼계탕을 끓였더니 국물맛이 더 없이 좋았다.

 

그리고 '집안'시에서 많이 훼손 되었으나 더러 남아있는 국내성 성벽이 있었고 그 성벽 가까이에 북한식당 '묘향산'이 있었다. 유반장의 소개로 묘향산식당에서 냉면과 더불어 푸짐한 한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정갈하고 맛있는 식단에 모두들 만족했다. 게다가 '반갑습니다', '통일이여 오라', ' 잘 가세요. 다시 만나요' 등의 노랫말에 맞춘 북한 종업원들의 공연에 박수갈채가 쏟아졌으며 모두들 가슴벅차했다.

 

 

 

 

 

중국에서 마지막 날은 일요일이었으며 단둥시에서 맞았다. 신의주, 위화도, 월량도 등 북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압록강공원' 과 6ㆍ25전쟁의 상흔이 짙게 배어 있는 아픔의 현장 '압록강단교' 그리고 북한과 한 발자국만 가면 넘을 수 있는 '일보과' 등을 탐방했다. 일요일이라 압록강공원엔 관광객이 많았다.

 

여기서 다시 끊어진 압록강다리를 볼 수 있었다. 바로 '압록강단교'라고 이름 붙여진 거대한 철교이다. 1909년에 만주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철교이다. 다리 중간부분을 돌려 배를 드나들게 했던 장치를 볼 수 있다. 철교 입구에는 '압록강단교'란 글씨가 적혀있고, 중국군 참전기념조형물이 있었다.(앞의 두사람은 팽덕회와 모택동아들). 이 다리를 통하여 북한정권을 도우려 중공군이 물밀듯 밀고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미군의 폭파로 끊어진 부분도 기념비가 있으며 수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엄청난 관광자원인 것이다.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선 안 되겠다고 다짐해본다.

 

 

 

 

철교 위를 걸으며 북한 신의주 쪽을 바라다보았다. 멀리서 보기에도 높은 빌딩과 대형 놀이기구 등이 즐비했다. 이 철교 바로 옆엔 '한중우의교'라는 철교가 있었다. 과거엔 중국과의 물자교역이 활발했으나 요즘은 대북 경제제제 조치로 오가는 차가 뜸하다고 한다. 아무튼 중국과의 교역으로 신의주는 북한에서 평양에 버금가는 큰 도시라고 했다.

 

압록강 하구엔 퇴적물이 쌓여 생긴 섬들이 많다. 그 섬들 가운데 일부는 북한섬, 일부는 중국섬이라고 한다. 단둥시에서 북쪽외곽에는 2m정도만 건너뛰면 북한영역의 섬에 닿을 수 있는 글자 그대로 '일보과'라는 곳이 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북한 초소 근무병에게 담배를 건네며 대화도 가능 했단다. 지금은 철책이 둘러쳐져있다.

 

이 여행에서 뜻하지 않게 덤으로 얻은 재미가 또 한 가지 더 있다. 여행 시작과 끝을 배에서 보냈다. 인천 단둥을 오가는 페리호를 탔던 것이다. 하룻밤을 자고나면 다른 나라에 와 있었다. 단 몇 시간에 날아가는 비행기에선 맛 볼 수 없는 묘미가 있었다. 특히 해질녘 아름다운 노을과 밤하늘의 또렷한 초승달과 북두칠성과 반짝이는 별들과 그리고 새벽 안개 속에 나타난 신비롭게 떠있는 섬들과 영흥풍력발전소의 풍차도 아름다웠고 새우깡을 찰나에 낚아채는 갈매기를 순간 포착해 슬기전화(스마트폰)에 담는 재미도 좋았다.

 

 

 

요즘 일본의 경제침략에 결연히 대처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 남과 북이 손잡고 통일대국으로 나아가면 누가 우릴 얕잡아 볼 것인가?

 

양인선 기자 gaunc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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