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25 방일영 국악상> 시상식장에서 만난 전 경주시장, 이원식 씨가 전해주는 정순임 모녀와 귀하고 오랜, 인연(因緣)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그가 경주시청 문화과에 근무하고 있던 젊은 시절, 문화 관광 활성화 사업을 진행할 당시였다, 장월중선 명창은 판소리, 춤, 기악, 병창, 토막극, 등을 다양하게 구성해서 여러 차례 공연을 해 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훗날, 자신이 경주시장이 되어 외국 도시들과 자매결연도 맺고, 나라 밖 문화교류를 추진해 오면서 장월중선이 창단한 <신라 국악단>의 위력을 체험하였다는 이야기, 일본의 어느 공연장에서 정순임이 판소리를 부를 때, 모든 관객이 기립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의 예술혼이 그 따님에게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또 근래 정순임 명창이 경주에서 <장월중선 국악경연대회>를 열었을 때, 그는 스스로 후원회장을 맡아 모녀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글쓴이는 축사를 하며 끝부분에서 “80대 중반 정순임 명창은 무대에 올라 소리를 해야만 건강을 유지하는 분, 그러니까 3~4일에 한 번은 꼭 무대에서 판소리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는 당부의 말씀을 전했다. 만일 그 실행이 어렵다면, 전국 애호가들 이름으로 경주시장께 특별 요청을 하겠다는 이야기도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는 판소리 국가 예능보유자 정순임은 어떤 분인가? 하는 이야기를 글쓴이의 축사에서 발췌해 보기로 한다. “그는 국가 무형유산 판소리 <흥보가>의 예능보유자로 해당 종목의 전승과 공연 활동을 활발하게 펴오고 있는 분입니다. 그야말로 어렵고, 힘들며 외로운 그 길을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오직 판소리의 외길 인생을 살아온 분이지요. 본인(글쓴이)은 몇 차례, 정순임 명창과 나라 밖 연주 여행을 함께 한 경험이 있습니다.”

나라 밖 연주여행이란 바로 2001년도부터 시작해 온 학회(學會)의 동계 나라 밖 활동과 하계활동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간 것이다.
곧 글쓴이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전통음악학회』는 겨울방학을 이용해 미국의 UCLA와 공동 주최로 《Korean Music Symposium - 한국음악 심포지엄》 강연과 공연 시리즈를 열어 왔고, 또 다른 하나는, 1991년에 교류를 시작, 2000년도 여름부터는 본격적으로 중국의 연변예술대학과 정례적으로 이어 온 《전통음악 실연(實演)교류회》를 말한다. 각각의 행사에 참여하는 인원은 30~40여 명 정도였고, 대부분은 학회 회원으로 있는 젊은 교수들이나 대학원의 석, 박사 과정의 원생들이었다.
그런데 공연 교류행사에는 국내 정상급 명인 명창들을 포함해서, 그들의 제자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교류사업은 정부 부처나 기업으로부터 행사 지원금이 마련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참가자들의 자비(自費)로도 행사는 진행되어야만 했던 것이어서 나라 밖 학술모임이나 실연교류회는 보통의 부담이 아니었다.
이러한 행사와 관련하여 나는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정순임 명창과 그의 동생 정경옥 명창, 경북 무형유산의 임종복 전승 교육사를 비롯한 그의 크고 작은 제자들이 몇 차례 참여해 주면서 교류 행사가 더더욱 빛이 났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정순임 명창을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게 되면서 그분의 음악세계나 인간적인 친밀감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 명창은 우리 음악을 미국이나 중국의 교포를 위시하여 주류 사회에 소개하여 우리 겨레의 수준 높은 전통음악을 소개하고 이를 더 널리 확산시켜 나가겠다는 취지에 공감, 기꺼이 자비(自費)로도 참여를 결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글쓴이는 그의 폭 넓은 이해와 참여를 너무도 고맙게 생각해 왔으며,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라 밖 행사를 위해 여행을 하면서 더 자세하게 알게 된, 정순임 명창은 참으로 다정다감한 분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되는 정 명창의 모습은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 속에서도 젊은 국악인들에게 본인이 이전에 겪었던 재미있고 유익했던 경험담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가령, 젊은 국악인들이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라든가, 특히 무대에 오르기 전 확인해야 할 사항, 등등을 아주 친절하고 자상하며 재미있게 알려 주기도 했던 것이지요.”
한국의 무형유산을 올곧게 전승해 나가는 권위 있는 예능보유자라는 인상보다는, 순수함을 지닌 다정한 이웃, 누구나 좋아하는 할머니 같았다는 느낌이 더욱 솔직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웃집 할머니 같은 그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사뭇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무대에 오르면, 그 긴장감은 다 녹아버리고 부드러우면서도 맑고, 높은 목소리와 구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사설의 전개, 그리고 그 사설에 어울리는 다양한 연기(발림) 등으로 청중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기 시작하는 마술사로 변하곤 하는 것이었다.
마치, 정순임의 소리는 일상의 소녀가 지니고 있던 순수하고 진솔한 마음, 그 깊은 곳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농익은 소리였기에 그 울림의 반향(反響)도 더더욱 크고, 아름답게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그가 얼마나 판소리를 사랑하며 살아왔고, 또한 남다른 태도나 열정을 지닌 소리꾼이었는가? 하는 점을 알게 하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바라건대, 그 울림의 시작이 그가 살고 있는 <경주>라는 지역에서부터 비롯되어 한반도 전 지역으로 널리 널리 퍼져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날이 도래(到來)할 때까지, 내내 건안(建安)을 기원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