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음악을 미국에 심어 온 김동석 교수

2020.10.06 00:19:24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9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는 일제 침략기, 전통가곡의 맥을 이어 온 하규일 명인과 경서도 민요를 전승시켜 온 벽파 이창배 명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하규일은 아악부와 정악전습소에서 후학들을 지도해 오는 한편, 권번에서도 많은 기녀에게 가곡을 가르쳤다는 이야기, 그 가운데 김진향(金珍香)은 《선가 하규일선생 약전》을 썼다는 이야기, 벽파는 경ㆍ서도 소리와 이론에 밝았던 민요계의 큰 사범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부터는 한국의 전통음악과 춤을 미국 땅에 심어 온 김동석(1944~ ) 교수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대학에서는 Donald Kim으로 알려져 있고, Don Kim으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김 교수는 미국의 명문대학교, 곧 UCLA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에서 한국음악을 강의해 왔고, 미국 서부지역에서는 한국의 전통음악과 춤의 대부로 알려진 예술인이다.

 

그는 얼마 전, 미국의 소수민족들이 지닌 예술성 높고, 학술적 값어치가 있는 음악을 보존하기 위해 소수민족 음악인들에게 거액의 기부금을 제공해 주고, 연구 사업을 후원해 주는 ‘Durfee Foundation’의 수상자로 결정되어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더욱 알려지기도 한 인물이다.

 

참고로 미국 내에 살고 있고 한인 동포는 약 200만 명이며, LA지역만 해도 5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지역 UCLA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민족음악대학이 있고, 한국의 전통악기와 노래 등, 한국의 전통음악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 대학에서 한국음악 강의를 해 오며 LA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국악 전공자와 무용인을 모아 <재미국악원>을 세우고, 그밖에도 한국민속 보존단체 (CETA fund)를 결성하였으며, 한국음악무용예술단 창단했고, 초-중-고-대학에서 학교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였다.

 

특히, <한국의 날> 행사(HOLLYWOOD BOWL KOREAN MUSIC FESTIVAL)를 주도해 온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Korean Music symposium을 <한국전통음악학회>와 함께 열어온 활동이라든가, 미국 교사들을 위한 국악 특강, <한미극연합회(Korean-American theater ensemble)> 활동, 정규 방송을 통한 국악강좌 30년, 등등 한국의 전통예술을 미국 땅에 심는 일을 주도해 온 사람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에서의 전통음악 활동은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글쓴이는 10년 이상, 국내 대학교수와 문화재급 실기인들, 대학원생들과 함께 UCLA를 방문하여 〖Korean Music Symposium〗 행사를 함께 진행해 왔다. 그렇기에 한국음악과 관련한 이러 저러한 그간의 사정을 조금은 알고 있는 편이어서 이 기회에 국악과 춤으로 <한국 알리기 운동>에 앞장서 온 김 교수를 소개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Don Kim 교수, 그는 함경남도 금화의 산골마을에서 7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국악과 인연을 맺게 된 경위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원래 우리는 경기도 양평이 고향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만주 일대로 유랑 생활을 하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일제의 징병이나 강제노동을 피하기 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4학년 때, 서울 전농초등학교로 전학을 하여 졸업을 하였지요. 1958년 2월이었을 거예요.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에서 국비로 학생들을 모집한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응시, 합격이 되어 평생 우리의 국악과 함께 살아오게 되었습니다. 집안에 예능계에 종사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제가 유일하게 국악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참으로 묘한 인연이지요. 저는 원래 음악을 좋아했던 터여서 국악사양성소의 6년 생활은 더없는 행복한 나날들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964년, 저와 함께 졸업한 동기동창은 24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국악 활동을 계속해 온 친구들로는 이동규(전 국립국악원, 가곡 명인), 이의경(전 부산시립 국악관현악단 지휘자), 조성보(공주대 명예교수), 조운조(이화여대 명예교수),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박종대(대금, LA 거주), 그리고 작고한 이상규(전 한양대 교수), 김영욱(거문고 명인), 변규백(피리, 작곡), 이창홍(전 KBS 악단, 거문고) 등이지요.

 

 

 

 

 

현재, 서초구 우면동 소재의 <국립국악원>은 1951년 피난처였던 부산에서 개원하였다. 그 4년 뒤에 후계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학교가 바로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였다. 당시에는 종로구 운이동 98번지, 곧 돈화문(敦化門) 앞에서 1~2시 방향으로 고색창연한 한옥 건물이었다. 1960년대 말에는, 중구 장충동 남산 중턱의 현 <국립극장> 옆으로 이전을 하였고, 현재는 강남구 포이동에 있으며, 학교의 이름도 <국립국악중학교>, <국립국악고등학교>로 바뀌었다.

 

학교는 6년 동안 국비장학생 제도였기에 월사금은 한 푼도 들지 않았고, 오히려 교복, 교과서, 노트, 가방, 그리고 매월 일정액의 수당까지 받았다. 어려운 시절, 학비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혜택을 김 교수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때로는 이를 자랑해 왔다고 한다. 그 양성소에 김 교수는 4년 차, 곧 4기생으로 입학하고 졸업한 것이다. 중등부 2학년이 되었을 때, 본인의 희망과 소질, 신체조건, 지도교사의 판단으로 피리, 대금, 해금, 거문고, 가야금 등 5개 전공악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는 가야금에 배정되었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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