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회의 변혁을 꿈꾼 ‘백탑파’ 지식인들

2020.10.19 22:08:07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45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안에는 ‘원각사터 10층 석탑’이 있습니다. 높이 12m나 되는 이 탑은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탑이어서 백탑(白塔)이라는 별명이 생겼지요. 정조 때 이 탑골 주변의 지식인들이 모여 ‘백탑파’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당대 집권세력이던 노론 명망가 출신의 양반인 박지원ㆍ홍대용과 비록 서얼이지만 세상의 폐단과 새로운 학문을 논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서상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차별의 벽을 넘어 우정을 나누고 조선 사회의 변혁을 꿈꾸었습니다. 정조(正祖) 시대인 1776~1800년간 힘을 얻었던 백탑파(白塔派) 선비들을 북학파(北學派)라고도 하며 이들은 또 이용후생학파(利用厚生學派)이기도 합니다. 청나라 문명의 우수성을 깨닫고 그것을 배우자고 주장한 실학자(實學者)들이지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북학의(北學議)》,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담헌연기(湛軒燕記)》 등이 그들이 대표적인 책입니다.

 

특히 백탑파는 당시 지배이념이면서 관념으로 흐르던 주자 학설을 좇는 것을 거부하고 자주적 학문의 자세를 지켰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백성의 삶을 보듬는 이용후생의 학문을 여는 데도 앞장섰습니다. 또 조선 사회 현실을 바로 보고 청의 발달한 문물을 받아들여 백성의 삶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던 사람들입니다. 백탑파는 비록 자신들을 중용한 정조가 죽으며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났지만, 그 사상은 19세기 개화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입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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