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대추나무의 기적

2021.01.13 11:57:15

우리나라도 죽은 대추나무가 다시 살아나듯 했으면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8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새해가 되어 봄이 돌아오자 만물이 새로운데, 성명께서 즉위하여 나라를 다스리신 지 큰 나라인 경우 천하에 호령할 수 있는 준비 기간인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 세월은 위에서 흘러 하늘의 운수가 바뀌었으며, 백성은 아래에서 곤궁하여 사람의 일이 극에 도달하였습니다."

 

1663년 새해가 되자 교리 이민서(李敏敍) 등이 당시의 왕인 현종에게 올린 차자(箚子:왕에게 올리는 간단한 서식의 상소문)의 시작은 이렇게 한다. 효종을 이은 새 임금이 즉위한 지도 5년이 지났는데, 이 정도면 정사를 다 파악해서 나라가 편안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다.

 

”지금 전하께서는 ....왕위에 계신 기간이 적은 것이 아닌데 세도가 나쁜 쪽으로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심이 벌써 떠나갔으니 대업을 보장할 수 없으며, 국가의 형세가 이미 기울었으니 나이가 한창때인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성명께서는 위로 선왕께서 부여하신 막중한 사업을 생각하시고 아래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상황을 살피시며, 계절이 바뀐 데에 느낌이 일고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데 슬퍼하시며, 한밤중까지 잠 못 이루며 생각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탄식하시겠지만, 어리석은 신들로서는 미처 알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신들은 탄식과 근심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눈물이 흐릅니다.“

 

 

교리라고 하면 왕의 주변에서 각종 문서를 만들고 다듬고 보관하는 일을 하는 중견간부다. 이민서는 나중에 참판, 판서를 두루 거치는 중요한 신하로 성장하는데, 이때의 차자(상소)는 매섭기가 그지없다. 이민서는 임금이 특별히 안일하거나 술을 즐기거나 여자에 빠지지 않는 모범적인 자세를 보이면서도 국정이 제대로 안 돌아간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미 나타난 폐해를 말해보겠습니다. 신하를 접견하는 일이 매우 드물어 상하로 하여금 막혀서 뜻이 통하지 않게 하고, 경연을 여는 날이 없어 성상의 공부가 나날이 퇴보되고 그에 따라 잘못된 정사가 발생하게 하고, 호령(지휘하여 명령함)이나 조처가 걸핏하면 시일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소 신하들이 맥이 빠지지 않는 이가 없어서, 일에 나아가 처리하려는 뜻은 없이 고식적으로 시간이나 때우려는 풍조가 이미 고질이 되었고, 의지와 기운이 시들한 채 상하가 서로 본받아 대세가 쇠미해져서 누구도 수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종종 나타나는 위태로운 징조나 멸망할 조짐들이 모두 여기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전하께서 어찌 차마 이런 데에서 안주하실 수 있겠습니까. 신들은 감히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 궁중에 계시면서 좋아하는 일들이 무슨 일이며, 더불어 대화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입니까? 신하를 멀리하면 부녀자들이 앞에 있게 되는 데 불과하고, 충고하는 바른말이 들리지 않으면 거처에 장난하는 대화가 있게 되는 데 불과합니다.

 

이와 같다면 쇠퇴해지거나 흩어지고 넘어지는 것이 어느 곳인들 이르지 않겠습니까. 맑고 깨끗한 바탕이 나날이 혼미해지고, 굳건하고 커다란 기운이 나날이 사라지며, 안일에 빠지는 해독이 내부에서 조금씩 고질화하고, 산만한 모습이 밖으로 환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현종 초기면 지금부터 360여 년 전이다. 이때에도 왕의 정치와 그를 걱정하는 신하들의 고민은 지금이라고 다를 바 없이 많았음을 알게 된다. 신하들이 시간만 때우려는 풍조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임금이 궁중에 있으면서 대화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고 묻는다. 그때와 지금은 왕정과 민주정으로 다르지만,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에 무슨 무슨 상소 형식의 글들이 많아진 것을 보면 현재의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국민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대통령이란 자리도 당시의 신하들이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를 받아주며 고민했듯이, 현재의 정치의 큰 방향을 정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찾아내냐 하는 자리인 것은 마찬가지라 하겠다. 그러기에 같은 문제를 갖고 예전에도 고민했음을 알게 된다. 그러한 지적에 대해 임금은 어떤 해답을 주어야 할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현재의 일이 지극히 위태롭다는 것을 살피시고 기업을 유지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유념하시며,(중략) 매일 아침 일찌감치 조회하시고 정사를 보는 마루에 나오시어, 경연의 신하들로 하여금 틈을 타 강의를 올리도록 하고, 대소 신하들로 하여금 생각이 있으면 들어가 대면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출납되는 공사에 결재를 지체하지 마시고, 인하여 나날이 일을 하시면서 자주 그 성취 여부를 살피시고, 인하여 단정한 선비를 친근히 하여 귀와 눈을 널리 열어 놓으시고, 뭇 계책을 두루 장악하여 가부를 살펴 가리시고, 여러 신하들을 책려하시어 바삐바삐 직무를 보게 하시고, 호령을 내어 사방을 고무 진작시키소서. 이는 참으로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근본으로 거룩한 거동인 것입니다.​

 

참으로 임금에게 올리는 회초리가 매섭다. 이민서는 이같이 자신이 심한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임금이 이러한 신하들의 말을 받아주는 풍토가 있기에 할 수 있다고 했지만, 현재와 같은 민주주의를 한다는 세상에서도 힘든 말들을 과거 왕조시대에 임금에게 올리고 또 임금은 이를 받아주고 했다는 것에서 참으로 과거 조선왕조의 정치풍토가 봉건적이거나 강압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고, 신하와 임금의 대화에 의해 신하들이 끊임없이 대책을 제시하고 임금은 그 가운데서 옳은 것은 과감히 받아들여야 성공한 군주가 될 수 있었음을 말해주는 좋은 사례 중의 하나라 생각한다.​

 

사실 그만큼 조선시대에는 임금이란 자리는 어려웠다. 현재의 대통령이란 자리도 여전히 어렵다. 모든 이들이 모든 문제를 다 대통령에게 올려 해결하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외롭고 힘들어도 어떻게 하는가? 대통령의 생각, 말 하나하나가 그리 중요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귀를 열고 말을 듣고 남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일부 당파의 욕심을 떠나 큰길을 가야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 늘 이야기하는 대로 하늘이 돕지 않겠는가?

 

           

지금은 거의 없어진 경희궁은 원래 인조의 아버지가 살던 곳이었다. 그 가운데 흥정당 동쪽에 인조의 아버지가 대추나무를 한 그루 심고 아침저녁으로 사랑하여 구경하며 때로는 말을 매고 계마수조(繫馬樹棗)라 하였다. 그 후에 나무가 문득 말라 죽어 몇 해가 되었는지 모르는데, 현종 신축년(1661)에 나무가 다시 거듭 피어나더니 이해에 숙종이 태어났다.

 

60년 후인 경종 신축년(1721)에 또다시 거듭 피어났는데 영조(英祖)가 세자가 되었으며, 다시 60년 후 정조가 왕이던 신축년(1781)에 왕비가 임신했는데 이듬해인 임인년(1782)에 대추나무가 또 다시 거듭 피어나더니 문효세자(文孝世子)가 탄생했다고 한다. 정조대왕은 죽은 대추나무가 다시 살아나 왕실에 잇단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 것을 기뻐하며 그 해 1782년에 이 대추나무를 제목으로 신하들에게 글을 짓도록 해서 평가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올해가 신축년이다. 현 정권은 올해로 집권 5년차에 들어간다. 이민서가 차자를 올린 것은 임금의 집권 5년이었을 때였다. 집권 5년 차 벽두에 쏟아진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현 정권을 향한 민심의 표출이다.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죽은 대추나무가 다시 살아나듯 우리나라의 정치가 기적처럼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해를 새로 맞으면서 엉뚱하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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