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는 다 읽었으나, 또 읽고 싶다

2021.05.13 11:24:39

[‘세종의 길’ 함께 걷기 70]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경연과 사초기록

 

그간 몇 회에 걸쳐 세종의 사맛 가운데 ‘마음 나누기’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았다. 앞으로는 세종의 정사(政事) 속의 일화나 정치의 일상사를 통해 세종의 사맛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세종은 임금이다. 임금은 하늘 아래 으뜸으로 모든 일을 결정하는데 그렇다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일까. 그럴 수 있다고 여겨지지만, 전제조건으로 커다란 규제가 가로막고 있다.

 

그 하나는 경연을 계속하여야 하고 다른 하나는 침전에서 벌어지는 일상사 이외에는 사관이 그 행동을 기록한다. 올바른 임금의 길을 가기 위하여 하루에 3번까지도 경연에 참여하여야 하고 낮과 밤에 궁궐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은 《실록》 혹은 《승정원일기》로 기록되어 임금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된다. 실록은 후세의 심판을 받는다는 큰 뜻이 있지만 동시에 영상(映像)이 없던 시대여서 그러하지 모든 행동이 거울에 비치듯 문자로 남겨지는 행동의 복제물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실록》에서 경연(經筵)이란 단어를 찾아보자. 전체 12,470개 가운데 200여 회 이상 임금은 다음과 같다.

 

세종(2,011), 문종(240), 성종(4,332), 연산군일기(825), 중종(1,767), 명종(548), 선조(323), 숙종 (197/8), 영조(465), 정조(278)

 

성종이 많았던 것은 어린 13살(1469)에 왕위에 올라 1494년까지 26년 동안 왕위에 있던 탓일 수도 있다. 왕위에 올랐을 때 나이가 어렸던 탓에 경연에 충실했다고 보인다.

 

세종의 경연에 관계된 학습 과정을 살펴보자.

세종은 우선 학업에 부지런하셨다.

 

... 왕은 날마다 사고(四鼓, 새벽 2시~4시)에 일어나서, 환하게 밝으면 군신의 조참을 받은 연후에 정사를 보며, 모든 정사를 처결한 연후에 윤대(輪對, 임금에게 직무에 대하여 보고하던 일)를 행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를 묻고, 수령의 하직을 고하는 자를 불러 보고 면담하여, 형벌 받는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며, 백성을 사랑하라는 뜻을 타이른 연후에, 경연(經筵)에 나아가 성학(聖學, 유학)에 깊이 생각하여 고금을 강론한 연후에 내전으로 들어가서 편안히 앉아 글을 읽으시되, 손에서 책을 떼지 않다가, 밤중이 지나서야 잠자리에 드시니, 글은 읽지 않은 것이 없다. (《세종실록》 32/2/22)

 

 

세종은 즉위 2달에 접어들 즈음에 유교 경전에 밝은 유관, 변계량, 이지강에 대군 시절의 스승 이수를 포함해 14명을 경연관으로 하여 10월 17일부터 경연을 시작한다. 교재는 제왕학이라 일컫는 《대학연의》였다. 그 핵심인 삼강령과 팔조목을 세분해 경전에서 관련되는 설을 모두 인용해 입증하고, 제가의 설을 부연해 《대학연의》의 본디의 뜻을 해명하는 데 기본을 두었다.

 

경연에 나아가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강론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읽기는 다 읽었으나, 또 읽고 싶다.’라고 하니, 동지경연(同知經筵) 이지강(李之剛)이 아뢰기를, ‘읽고 또 읽는 것이 성의(誠意)의 공부를 다 하는 것이옵니다.’라고 하였다. (《세종실록》 1/3/6)

 

《대학연의》의 1차 강독은 세종 1년 4월 27일 종강하고 30일에 2차 강독을 시작하여 3개월 뒤 10일 뒤에 마친 뒤 세종 8년 7월 18일에 3차 강독을 시작한다. 마친 뒤 ‘또 읽고 싶다’고 하자, 신하는 그것이 ‘성의의 공부를 다 하는 것‘이라고 호응한다. 《대학연의》에 대한 애착은 세종 16년 책을 인쇄하도록 명하고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언자(諺字, 훈민정음)를 붙여 가르치도록 하였다. 이는 종친을 비롯한 여러 정부의 관료들을 위한 배려였다. 세종에게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읽기와 생각 : 내가 경서와 역사책을 두루 보지 않은 것이 없고 또한 지금 늙어서 기억할 수 없으나 반드시 다시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지금 그만둘 수 없는 것은 다만 책을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떠올라서 정사(政事)에 시행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로써 보면 책을 읽는 것이 어찌 유익하지 않겠는가?(《세종실록》 20/3/19)

 

이 말은 책을 읽고 → 이에 생각의 빌미와 생각의 열매를 얻고 → 정사(政事)로 시행되는 고리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곧 읽기는 생각을 얻기 위한 것이고 생각은 실천을 위한 기본이 되고 있다. 철학하는 임금 이도는 실천을 위해 생각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생각은 먼저 읽은 문헌을 복습하게 하고 정리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므로 학습 후 생각하지 않는다면 배운 것이 몸에 스며들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경연은 마음공부까지

 

이렇게 생각하게 해주는 학업의 목적은 ’마음 닦기‘라고 한다.

 

 

마음 : ‘마음을 바르게 하여야 조정을 바르게 하고’, 조정을 바르게 하여야 백관을 바르게 하며, 백관을 바르게 하여야 만민을 바르게 한다고 하오니, 이는 고금에 뛰어난 격언(格言)이옵니다. (세종 23/12/9)

 

마음공부 : 동지경연 이지강이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진강(進講)하고 또 아뢰기를, ‘임금의 학문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근본이 되옵나니, 마음이 바른 연후에야 백관이 바르게 되고, 백관이 바른 연후에야 만민이 바르게 되옵는데, 마음을 바르게 하는 요지는 오로지 이 책에 있사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그러나 경서를 글귀로만 풀이하는 것은 학문에 도움이 없으니, 반드시 마음의 공부가 있어야만 이에 유익할 것이다’라고 하였다.(《세종실록》 즉위년 10/12)

 

‘마음의 공부’는 심학을 거론하지만, 이 시대에는 ‘성의 정심’ 곧 《대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탐구라 할 수 있다.

 

사대부의 업 중 하나는 학업으로 관리들은 궁중 내 경연 참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세종은 재임 중 1,898회의 경연을 했다. 월평균 5회인 셈으로 경연은 단순히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현실정치를 고전에 대비해 명확히 바로잡는 토론의 마당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신하는 간하고 임금의 행동은 기록으로

 

간언을 업으로 해야 하는 직에는 사간원과 사헌부가 있다. 오늘의 감사원이나 검찰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정치현장을 후세에 간하는 업으로는 사관이 있다. 사관은 후세의 판단을 위해 오늘을 기록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선비나 정치에 참여하게 된 관리는 배운 학문을 기초로 간언(諫言)할 수 있어야 한다. 간하는 것도 사리와 시의에 합당한 것에 제한되기도 한다. 양녕에 관해 또 불사(佛事)에 관해 진언을 듣지 않는 바 있지만, 이는 임금의 이념 혹은 사상의 범주로 남는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논의의 대상이다. 그러나 간하는데도 이를 직분(職分)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직무수행으로 하는지, 마음을 담은 충의로 하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마음을 담아 간하라는 것이다.

 

임금은 종사에서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모든 행위에는 당대에는 물론 역사적인 책임이 따르게 된다.

 

있는 대로 기록 : 윤대를 행하고 경연에 나아갔다. 《좌전(左傳)》을 강(講)하다가 ...

 

"실행(實行)하고 기록하지 않는 것은 성덕(盛德)이 아니다."라는 말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 말은 무엇을 말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사관(史官)은 마땅히 한 시대 행사(行事)의 자취를 다 기록하여 뒷세상에 보일 뿐이다. 임금 된 사람이 어찌 능히 사관(史官)에게 착한 것은 기록하게 하고, 착하지 못한 것은 기록하지 못 하게 하겠는가." 하니, 검토관(檢討官) 설순(偰循)이 대답하기를,

 

‘이른바 <써서 법이 되지 않으면 후사(後嗣)가 무엇을 보겠느냐?>라는 말과 같아야만 경계하는 말이 되어 임금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사신(史臣)은 마땅히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지 않고 다 기록해야 한다고 한 것은 이 말을 한 사람은 자못 실언(失言)한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옳다. 하였다. (《세종실록》11/4/9)

 

사관이 기록하는 것은 옳고 그른 것, 착하고 착하지 못한 것을 가리지 않는 사실(事實)이며 이는 곧 사실(史實)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임금에게 깨달음을 주는 비유로 쓰이고 있다.

 

임금은 당대가 아닌 역사적인 시간 속에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동에 그만큼 책임감이 따르기도 한다.

 

 

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kokim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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