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역사 기록은 대개 역사에 대한 어른들의 기록이다. 청소년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장유유서의 문화가 지배했기 때문에 소년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대해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일기만 하더라도 옛사람들의 일기가 상당수 남아있지만 거의 어른들이 쓴 일기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른들의 삶은 비교적 소상하게 알고 있지만, 옛날 청소년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특이하게 조선후기 10대 소년이 쓴 일기가 남아있어 관심을 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하고 있는 《하와일록(河窩日錄)》은 19세기를 전후하여 안동 하회에 살았던 류의목(柳懿睦, 1785~1833)이 12살부터 18살까지 작성한 일기다.

일기에 나타난 류의목은 15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짊어지면서 과거시험 준비에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시험공부만 한 것이 아니었다. 돌림병의 유행과 치료, 친족 내의 관혼상제, 족보의 편찬 등 당시 지방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안에 대해 두루 관심을 가지고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문중의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인식했고, 남인의 몰락과 서얼층의 부상을 근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며, 서세동점(밀려드는 외세와 열강)의 시기에 한창 들어오고 있던 서학(西學) 곧 기독교의 침투와 이로 인한 사상적 혼란을 목도하고 일기에 썼다.
10대 소년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심지어 당시 남인의 영수였던 번암 채제공의 죽음에 대해서는 영남의 운수가 다한 것으로 보고 크게 상심하는가 하면, 향내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좌수 자리의 향배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어쩌면 아버지의 이른 죽음이 그에게 일찍 철들게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류의목의 세계관이 과연 타당하고 바람직한가를 떠나서 그의 일기는 현대인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조선시대 청소년들은 결코 나약하거나 일방적 보호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일찍 어른이 되어 사회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일기는 보여준다.

류의목은 18살에 관례를 치르고 혼인을 하면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으므로 당시와 현재는 사회시스템에서 차이점은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인간의 능력은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소년이 어른으로 되는 것은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믿고 맡길 때 자신의 힘으로 성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와일록》은 자식을 키우는 오늘날 부모들에게도 요긴한 지혜를 제공한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문중에서 맡긴 국학자료 57만여 점 가운데 학술적 값어치가 높은 자료를 대상으로 관련 분야 전문가들로 연구팀을 구성하여 심층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0여 년째 진행되고 있는 연구에서 지금까지 100명 이상의 전문 학자가 연구에 참여했고 연구 성과를 묶은 단행본 가운데 다수가 우수학술도서로 뽑힌 바 있다. 금년도에는 《하와일록》 말고 퇴계 14대손으로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선비목사’ 이원영(李源永, 1886~1958) 관련 자료도 연구하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앞으로도 미공개 국학자료에 대한 심층연구를 지속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