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를 둘러싼 오해, 이제는 풀어야 할 때

2022.02.28 12:13:56

《분재인문학》, 성주엽, 생각하는정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74)

사람들은 왜 내 겉만 보고

어쩌다 내 진면목이 숨겨진 채

괴롭힘을 당한 난쟁이로만 인식되어온 걸까?

사람들이 우리를 가까이 하도록

우리를 아끼는 이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며

사랑을 주고 길러온 것인데......

 

자연의 풍광을 정원으로,

정원에서 집안으로 들여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관심과 사랑이 있었는데

괴롭혀온 것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오해투성이의 말들만 난무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흔히 분재에 대해 갖는 편견이 있다. 가만히 놔두면 ‘자연스럽게’ 잘 자랄 나무를 괜히 못살게 굴어 성장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분재는 그런 억압과 왜곡의 예술이 아니다. 나무가 가장 좋은 조건에서 자랄 수 있도록 고도의 기술을 발휘해 균형과 절제의 미학을 구현하는 것이다. 사람의 타고난 본성을 교육해 순화시키듯, 분재 또한 나무의 본성을 적절히 다듬어 천 년을 가는 나무로 탈바꿈시킨다.

 

이 책 《분재인문학》의 지은이 성주엽 실장은 제주도 서북쪽, 한경면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에서 아버지 성범영 원장을 도와 1991년부터 나무와 정원을 돌보고 있다. 이 책은 분재에 대한 항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나무를 통해 깨달은 삶의 지혜와 분재의 매력, 분재를 감상하는 법 등을 나누고자 썼다. 지은이의 바람대로 분재에 관해 널리 알려진 오해와 이를 바로잡는 문답을 구성해보았다.

 

 

1. 나무를 못살게 구는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분재가 나무를 자연 그대로 두지 않고 인위적으로 비틀고 구부린 것이라면 나무는 일찌감치 죽어버렸을 것이다. 차라리 숲속 나무를 베어다가 땔감으로 쓰는 것이나, 화전을 일구기 위해 숲에다 불을 놓는 것이 진짜 나무를 죽이는 행동이다. 분재는 건강한 나무다. 제한된 생활공간 안에 살아가는 비결을 터득했기 때문에 생활력도 대단히 강하다.

 

2. 분재는 그냥 서서 보면 된다?

분재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어 이루어지는 생명 예술이므로, 분재를 감상하려는 이들은 자기 마음을 비우고 흔들리는 이파리와 휘어진 가지에서 오랜 비바람을 견디어온 나무의 심정과 기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분재를 보는 바람직한 자세는, 허리를 숙여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것이다. 가지와 잎의 배열을 잘 보기 위해서다. 낮은 자세로 분재들이 햇볕과 바람, 이슬과 서리를 맞으며 오랜 시간 이루어낸 자태를 보아야만 비로소 분재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겨울철에 이파리가 없는 나목일 경우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가지의 배열이 잘 보여 괜찮다.

 

 

3. 분재는 그냥 감상하면 되는 것이다?

분재도 세 가지 예를 갖추어 감상해야 한다. 함부로 만지지 않고, 가격을 묻지 않으며,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첫째, 사람의 손길과 체온은 나무를 괴롭히는 것이기도 하고, 예술작품을 함부로 손으로 만지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둘째, 생명예술을 다듬어 온 세월과 사랑 앞에 “이거 얼마예요?” 하고 가격을 묻는 것 또한 실례다. 살아 있을 때 가치는 무척 크지만, 죽었을 때는 장작으로도 쓸 수 없는 게 분재다.

셋째, 창작자나 예술가의 인격과 안목을 담아 만든 분재 작품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분재는 창작자에게 분신과도 같으므로, 부모에게 자식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과 같다.

 

4. 분재는 일본에서 시작된 문화다?

분재 문화는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중국의 서화를 보면 당나라 때부터 분재를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문헌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고려 중엽부터 분재 문화가 시작되었고, 일본는 한반도를 통해 분재 문화를 전수받았다. 그러나 일본은 분재 문화를 고도로 발달시켜 지금은 한국의 ‘분재’라는 용어보다 일본의 ‘본사이’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영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도 분재의 정식 명칭으로 ‘BONSAI’가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생각하는 정원에서는 한국 명칭인 ‘BUNJAE’로 표기해 세계인에게 한국의 분재 또한 널리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5. 분재는 실내에서 기르는 것이다?

아니다. 분재는 실내에서 3일 이상 전시하면 나무에 치명상을 입히게 된다. 분재는 일반 나무와 똑같은 환경에 놓여 비바람을 맞으며 살아야 활기차게 자란다. 사람들이 분재를 실내에서 기르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유는 대부분 백화점 같은 공공장소에서 분재전시전을 통해 작품을 접했기 때문인데,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실내에 잠시 놓았다가도 그날 바로 야외로 내놓아야 한다.

 

사실 많은 사람이 분재를 한 번쯤 보았으면서도 그 내력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은 분재 문화가 생소한 독자들이 분재에 담긴 철학과 미학적 가치를 알아갈 수 있는 좋은 분재 입문서이다. 글이 많지 않으면서도 ‘생각하는 정원’에서 선보이고 있는 다양한 분재 사진을 고화질로 수록하여 분재의 참맛을 깊이 음미할 수 있다.

 

이번 봄, 제주를 찾을 계획이라면 생각하는 정원도 같이 들러보면 어떨까. 필자가 방문했을 때 잘 가꾼 분재 사이로 사유와 철학이 담긴 글판이 많아 생각하며 걷기에 참 좋았다. 사람 또한 타고난 기질을 정성스러운 손길로 다듬은, 잘 가꾼 분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대할 때도 좋은 분재를 대하듯 예를 갖춰 대한다면 세상은 한층 부드러워질 것이다.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