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자, <창부타령>으로 판을 뒤집다

2022.03.15 11:52:22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6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산타령 전승교육사, 이건자 명창의 소리세계를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이다.

 

강원도 인제군《가리산리》가 고향이고,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소리를 들으며 익혔는데, 중학교 진학도, 소리공부의 길도, 어렵게 되자, 친구 따라 상경하여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는 이야기, 어느 날 동료들과 명동 구경을 나갔다가 우연히 노래자랑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아버지에게 배운 창부타령을 불러 1등상을 받았다는 이야기, 이것이 인연이 되어 KBS 요청으로 민요 몇 곡을 부르게 되었는데, 구경꾼들도 환호하며 절정의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이날 촬영한 영상은 때마침 추석 특집으로 KBS에서 방영이 되었는데, 판소리의 신영희 명창이 이건자의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제자로 키우고 싶다”라고 해서 그의 문하생이 되기로 한 뒤, 선생의 집에서 동거동숙하며 소리 공부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건자의 남모르는 고민도 시작되었다. 그것은 전문가들에 의해서만 감지되는 미묘한 문제, 곧 이제까지 불러온 이건자의 소리와 신영희 명창의 소리는 같은 전통의 소리이기는 하나, 결이 다른 소리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신영희 명창의 소리는 전라도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판소리 어법(語法)이어서 다른 지방의 지망생으로는 매우 어려운 길이었다는 점을 이건자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판소리와 남도 민요는 가사의 발음을 비롯하여, 독특한 사투리, 억양, 떠는 소리, 꺾어 내리는 표현 등등이 경ㆍ서도지방, 또는 경상도나 강원도 지방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노력해서 안 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미묘한 발음이나 억양, 사투리 등, 전라도 지역에서 태어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히지 않으면 체득하기 어려운 기법이나 기교가 별도로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대동강 물을 먹어 본 사람만이 서도소리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라는 말처럼 서도소리의 독특한 표현을 어려워하는 점과 비견될 것이다.

 

이처럼 판소리나 남도의 민요는 전라도 사람들의 어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진 언어와 창법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건자는 이를, 의욕을 앞세워 ‘노력’으로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라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판소리 명창이 나올 수 없는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은 ‘꼭 그렇지는 않다.’다. 간혹 경상도에서도 명창이 나왔고, 충청도와 경기도에서도 나왔다. 그러나 현재 그 수는 매우 적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

 

발성, 또한 판소리에 있어서는 맑고 고운 목소리보다는 다소 거칠더라도 굵고, 힘찬 소리가 어울리는 소리제다.

 

 

이건자의 목청은 맑고 고운 편이다. 이러한 목으로 신영희 명창과 함께 지내면서 남도의 판소리 공부를 열심히 했으나, 하면 할수록 점점 자신을 잃고 있었다. 결국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 판소리 공부를 중단하고, 고향땅 인제에서 언니가 하는 식당에 요리사로 일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몸은 힘들더라도 마음만은 편했다.

 

언니와 함께 식당일을 도우며 지내기 시작한 지 2년여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노(老) 스님 한 분이 식사하고 난 뒤, “주방에서 일하는 보살님 나와 보라”고 해서 나와 보니 그 스님은 이건자에게 이렇게 조언해 주고 떠나갔다고 한다.

 

“보살님에게는 성공할 세 번의 기회가 있는데, 두 번의 기회는 이미 지나갔고,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남았는데, 그것은 전통의 소리를 부지런히 익히라는 점괘”라며 떠나갔다고 한다.

 

이 말을 믿고 못 믿고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잠자고 있던 이건자의 마음과 그가 가려고 하는 소리 길에 스님의 충고는 큰 충격과 고민을 안겨주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소리 공부를 해서 소리꾼의 길을 가야 하는가? 다시 고민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더는 주방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소리공부를 위해 상경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언니의 곁을 떠나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말 못 할 고민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지극히 우연한 기회에 풀려 버렸기 때문이다.

 

연말이 다가오자, 신영희 명창 댁에서는 국악계 명인 명창들이 모여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면서 연말 모임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노래 한 자리씩 하게 되었는데, 마침 일하고 있던 이건자에게도 노래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판소리의 대가, 무용가, 기악의 명인들이 모여 있어서 초보에 지나지 않는 자신은 판소리를 도저히 부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좌중에 양해를 구하고, 어려서부터 아버지께 배웠던, 너무도 익숙한 노래, 경기민요의 <창부타령>을 목청껏 불러 젖혀 판이 뒤집혔다. “판이 뒤집혔다.”라는 말은 소리꾼들이 흔히 하는 말인데 기대 이상으로 분위기가 압도되었을 때, 그들이 자연스럽게 쓰는 표현이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