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 조선사 산책 나가볼까

2022.03.28 12:04:09

《신병주 교수의 조선 산책》, 신병주, 매일경제신문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은근히 친숙하면서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조선, 그러나 보면 볼수록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신기한 조선. 기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재밌는 사실도 많고, 이 책의 부제처럼 ‘민초의 삶부터 왕실의 암투까지’ 다양한 결의 역사를 두루 맛볼 수 있는 시기가 조선이다.

 

《조선 산책》 지은이 신병주 교수는 조선사 전문가로, 역사의 다양한 모습과 그것이 오늘날 지니는 함의를 꾸준히 전달해왔다. 이 책은 2015년 10월부터 <세계일보>에 ‘역사의 창’이라는 이름으로 약 3년 동안 격주로 연재한 칼럼을 시의에 맞게 적절히 재구성한 것이다.

 

 

칼럼에 연재한 글이니만큼 각 꼭지가 재미있으면서도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책의 어느 부분을 펴서 읽어도 술술 읽힌다. 이 책의 제목이 ‘산책’인 것에서 알 수 있듯 각 꼭지가 그렇게 어렵지 않으면서도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말랑말랑한 주제가 많다. 그 가운데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꼭지를 발췌해보았다.

 

# 선비의 육아일기, 《양아록》

 

그렇다. 근엄할 것만 같은 ‘조선 남자’, 선비도 육아일기를 썼다. 16세기 학자 이문건(1494~1567)이 쓴 《양아록》이 바로 그 일기다. 그럼, 누구를 키우면서 쓴 것일까? 언뜻 생각하면 아들이나 딸을 키우며 썼을 것 같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손자다.

 

이문건은 중종 때 과거에 합격했지만, 명종 즉위 뒤 외척정치가 심해지면서 경상도 성주로 유배를 떠났다. 일신이 고단한 상황에 자식들도 대부분 천연두로 일찍 죽었고, 유일하게 장성한 둘째 아들 온(熅)도 어릴 때 앓은 열병 탓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이문건은 아들을 교육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자신의 기대에는 영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희망을 잃어가던 시절, 이문건의 인생에 반짝 희망이 생겨났다. 바로 손자가 태어난 것이다. 58살에 보게 된 2대 독자인 손자 수봉. 그때부터 그의 관심은 온통 손자로 옮겨가게 된다.

 

어찌나 애지중지 길렀던지, 그는 손자가 자라나는 모습을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손자가 혼자 앉을 수 있게 된 이야기, 아랫니와 윗니가 난 이야기, 할아버지가 글을 읽는 모습을 보고 흉내를 낸 이야기… 여기까지만 보면 한 ‘손자 바보’ 할아버지의 더없이 훈훈한 육아일기로 막을 내렸을 것 같지만, 소름 돋는 반전이 있다.

 

손자가 일곱 살이 되어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는 아기 때만큼 귀엽지는 않았나 보다. 자신의 기대만큼 손자가 명석하지 못하고 공부를 게을리하자, 처음에는 어르고 달래던 그는 매를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때리는 마음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이 사실. “손자가 한참을 우는데 나도 울고 싶을 뿐이다”라고 쓴 날도 있다.

 

글공부로 이미 갈등이 시작됐지만, 결정적으로 손자가 13살 때부터 술을 입에 대면서 집안이 발칵 뒤집힌다. 아무리 옛날이어도 13살에 술은 많이 이른 감이 있긴 한데, 수봉이도 인생이 상당히 힘들었나 보다. 손자가 만취해서 돌아오던 날 이문건은 가족이 모두 손자를 때리게 했다. 누이와 할머니가 열 대씩 때리고, 자기는 스무 대도 넘게 때렸다.

 

 

그러나 이런 교화(?)의 노력에도 손자의 술 사랑은 여전했고, 결국 《양아록》의 마지막 부분인 ‘노옹조노탄(老翁躁怒嘆)’에서 이문건은 손자에게 자꾸 매를 드는 자신을 자책하며 “늙은이의 포악함은 진실로 경계해야 할 듯하다”라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손자마저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것에 대해 허무함도 감추지 못한다. “할아버지와 손자 모두 실망하여 남은 것이 없으니 이 늙은이가 죽은 뒤에야 그칠 것이다. 아, 눈물이 흐른다”라고 쓴 부분은 그의 실망감이 얼마나 깊었는지 보여준다.

 

흔히 ‘선비 할아버지의 손자 육아일기’라고 하면 어화둥둥 귀엽게 기른 모습만 생각하게 되지만, 손자가 자라면서 이런 반전이 있었다니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하다. 다양한 직업이 없고 양반이라면 성리학 공부를 해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유일한 출세의 길이던 시절, 이른 나이에 시작한 글공부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13살부터 술을 마셨겠는가 말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 손자야말로 이문건 인생의 보배였다! 귀양살이도 힘들고 자식도 지지부진해 별로 희망이 없던 시절, 이 손자가 태어나 이문건은 참으로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비록 자라면서 공부를 못하고 술을 먹어서 속을 썩이긴 했어도, 이 손자 덕분에 《양아록》을 써서 역사에 이름 석 자를 확실히 남겼으니 손자가 인생의 귀인이 아니겠는가.

 

# 조선시대에도 보훈특별전형, ‘충량과’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공무원을 뽑을 때 국가유공자 후손들에게 특별가점을 주는 제도가 있지만, 조선에는 아예 국가유공자 후손을 대상으로 한 특별과거인 ‘충량과’가 있었다. 1764년(영조 40) 1월, 영조는 충신과 의사의 마음을 위로하는 뜻으로 충량과를 만들고, 직접 충량과 시험 현장에 나아가 응시자를 격려하기도 했다.

 

충량과 성적에 따라 김노순ㆍ김장행ㆍ김이소 등 3인을 뽑고, 무과 합격자도 14인을 선발했다. 영조는 병자호란 때 충절을 지킨 김상용과 김상헌의 후손은 모두 과거에 참여했으나, 유독 삼학사의 후손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삼학사는 조선의 항복에 반대하다가 심양으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홍익한, 윤집, 오달제를 뜻한다. 영조는 이후에도 충량과를 여러 차례 열어 국가유공자 후손을 특별히 예우했다.

 

물론 오늘날에도 국가보훈자를 우대하는 제도가 많이 마련되어 있지만, 어째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는 횟수와 친일파의 후손이 호의호식하며 풍족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는 횟수가 비등한 것 같다. 최소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조상 원망’만큼은 하지 않도록 국가가 좀 더 보훈자 예우에 신경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처럼 다른 시대에 견주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조선이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딱딱한 역사적 사실을 잘 읽히는 부드러운 글로 풀어내기까지 지은이가 기울였을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글 끝부분에 과거의 역사가 오늘날 어떤 시사점을 가지는지 평론한 부분이 지나치게 간략해 다소 피상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이 책의 미덕은 조선사 전문가인 지은이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조선사의 뜰을 유유자적 산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시사(微視史)부터 거시사(巨視史)까지 종횡무진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각자 특별히 관심 가는 꼭지를 발견해보는 것도 좋겠다.

 

 

우지원 기자 basicfo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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