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 참 깔끔하다

2022.06.18 10:34:44

황여정, <바늘>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9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바늘

 

                                 - 황여정

 

입에 발린 말

가식을 빼고 나니

너무 깡말라

여유가 없구먼

그래도 올곧기는 제일이라

 

콕 찌르듯 한 땀이 지나간 자리

툭 터진 곳도

스윽 봉합이 되고,

조각조각 맞추니

포근하게 감싸주는 이불도 되고

치마저고리 바지 적삼까지

또박또박 지어내는 일침의 미덕

뒤끝, 참 깔끔하다.

 

 

“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한 품질과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물중(物中)의 명물(名物)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추호(秋毫)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능라(綾羅)와 비단(緋緞)에 난봉(鸞鳳)과 공작(孔雀)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神奇)함은 귀신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人力)이 미칠 바리요.” 위는 조선 순조 때 유씨(兪氏) 부인이 지은 수필 <조침문(弔針文)>에 나오는 바늘 부분 일부다.

 

겨울에는 솜을 두둑이 대고 누비옷을 만들어 자식들이 추위에 떨지 않게 해주시고 겨우내 식구들이 덮을 이부자리를 손보느라 가을철이 되면 낮에는 밭에 나가 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늦은 밤까지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하시던 모습을 이제는 구경하기 힘든 시대다. 옷이 낡고 터지기도 전에 새 옷을 사 입고 요즘 양말은 구멍도 잘나지 않는 질 좋은 물건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함초롬히 앉아 밥상을 차려 상보로 덮어두고 바느질하시면서 가족을 기다리던 어머니의 정다운 모습은 이제 박물관의 밀랍인형이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 황여정 시인의 시 <바늘>에서는 바늘을 일러 “너무 깡말라 / 여유가 없구먼 / 그래도 올곧기는 제일이라”라고 하면서 “콕 찌르듯 한 땀이 지나간 자리 / 툭 터진 곳도 / 스윽 봉합이 되고”라고 노래한다. 어쩌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툭 터진 곳도 스윽 봉합이 된단다. 그러면서 “뒤끝, 참 깔끔하다.”라고 끝맺는다. 요즘 어디 그런 지도자는 없을까?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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