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내음

2022.09.07 11:09:38

[정운복의 아침시평 123]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베어진 옥수수 대궁 위에 내려앉은 고추잠자리의 나른한 오수에서

길가에 마냥 흐드러지게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의 청순한 자태에서

한낮의 여름을 식히듯 또랑또랑한 귀뚜라미 울음소리에서 묻어나는 가을을 느낍니다.

 

 

해는 점점 짧아져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아직 여름이고 싶은 나무의 잎새를 재촉하는 서늘한 바람

여름내 숨어있던 새들도 햇살 아래로 나오는 걸 보니 가을이 오는 것 같습니다.

 

길쭉한 꽃송이를 하얗게 이고 있던 밤나무의 모습이 어제인 듯한 데

바늘 숭숭한 송이 안엔 속살이 굵어져 가고

성급하게 다가온 추석에 열매를 물들이기에 바쁜 대추나무

보름달 아래 휘영청 한 수숫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월 감의 깊이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여름은 켜켜이 쌓인 소중한 추억과 함께

떠날 채비를 마치고

그 빈자리에 풍요를 구가하는 계절이 성큼 와 있습니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나뭇잎이 지는 계절, 이별의 계절, 비워냄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여름내 키워냈던 열매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개구리의 합창으로 요란했던 황금 들녘도 빈 들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가을은 비워냄을 학습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덜고 비워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가 가진 불필요한 욕망을 비워야

삶의 무거움을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어찌 되었든 가을입니다.

가을엔 낙엽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왜 사랑이 낮은 곳에 있는지를….

 

 

정운복 칼럼니스트 jwb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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