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가족, 그 아름다운 관계에 대하여

2022.09.17 11:35:55

이강훈 사진전 <곁을 내주다> 9월 20일부터 류가헌에서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눈에 밟히다 - 한때 산업역군으로 불렸으나 사우디에서 돌아와 건설노동자로, 서울역 노숙자로, 이제는 쪽방촌 사람으로 불리는 박 씨는, 옆방 팔순 노인의 하루가 자꾸 눈에 밟혔다. 거동이 불편하여 끼니조차 챙기지 못하는 그를 위해 각자이던 밥상을 하나로 합쳤다. 가정을 이루어 본 적 없이 오래 혼자였던 두 사람에게는 서로의 숨소리도 위안이었다.

 

타인에서 한솥밥을 먹는 식구로, 그리고 이제는 돈의동 쪽방촌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두 남자의 나날을, 사진가 이강훈은 한 해 넘게 곁에 없는 듯 맴돌며 사진에 담았다. 한번 본 그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 사진들이 2011년 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사진가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사진가로서 이강훈의 이름과 ‘타인 가족’의 개념을 주목게 했다.

 

 

 

 

서로 기대다 - 성수동 골목 반지하에 사는 임 할머니와 이 할아버지. 각자 곡절 끝에 만나 ‘남은 생을 서로 의지하며 살자’라고, 혼례식도 혼인신고도 없이 달동네 작은 방들을 옮겨 다니며 함께 산 세월이 40년이다. 없는 것투성이의 삶이지만, 그래도 이들에게는 ‘서로’가 있다. 함께 사는 이가 있으니 기초생활 수급 대상에도 못 들지만, 그래도 서로를 포기할 수는 없다.

 

<서로 기대다>는 이강훈이 <눈에 밟히다> 이후 4년 만에 내보인 ‘타인 가족’ 두 번째 시리즈다. 서로를 지켜주며 살아가는 두 노인의 초상을 통해, 우리 삶에서 ‘서로’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되뇌게 했다.

 

이후로도 일차적인 형태로서의 가족이 아닌, 사회적 인연의 테두리에서 만난 다른 형태의 가족관계들을 살피는 사진가의 시선은 계속되었고, 이제 7년여 만에 그 결실이 전시로 선보인다. 9월 20일부터 류가헌에서 열리는 이강훈 사진전 <곁을 내주다>다.

 

 

 

 

 

곁은 내주다 - 전라북도 순창에 귀촌한 젊은 농부 한재희 씨와 그의 아내는 서로에게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에게도 자신들의 ‘곁을 내어주고’ 함께 살아간다. 재희 씨는 어르신들 부탁을 쫓아다니느라 본인 농사일은 뒷전이기 일쑤다. 명자 씨 또한 날마다 새벽부터 저녁나절까지 이어지는 식당 일에 숨 가쁜 하루를 보내면서도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강훈의 눈에, 살갑고 바지런한 부부를 중심으로 마을 전체가 하나의 가족 공동체처럼 살아가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소중했다. 다섯 해 동안 숱하게 순창을 오가며 조용히 그들의 삶을 응시하고 사진으로 옮겼다. 사진가 임종진이 “사람과 사람이 관계로 성장해가는 마을 전체의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한 그 모습들이, 모두 50여 점의 전시작으로 추려져 관람객들 맞는다.

 

‘눈에 밟히다’, ‘서로 기대다’, ‘곁을 내주다’ 전시 제목들은 두 단어가 합쳐져 새로운 비유로 확장된 관용어들이다. 작가는 전시 제목처럼, 타인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관계를 통해 ‘눈에 밟히고, 서로 기대고 곁을 내주는’ 삶의 값어치를 세상에 전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한영 기자 sol11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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