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읍성 동벽 실체 발굴조사로 드러나

2022.09.29 11:52:27

현장 공개설명회 경주읍성 현장 사무실서 열어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과 경주시(시장 주낙영)는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진행한 사적 경주읍성(1963.1.21. 지정)의 5구간(계림초등학교의 동·북쪽 외곽 ; 길이 약 200m, 면적 5,887㎡)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끝내고, 오는 29일 낮 2시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초등학교 북편 읍성현장 사무실에서 공개설명회를 연다.

 

이번 경주읍성 5구간 발굴조사는 경주 읍성의 복원ㆍ정비를 위한 기초 학술자료 확보를 목표로 2019년 8월부터 시작되었다. 이번 5구간은 경주읍성 범위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구간으로 성벽의 면석이 12단으로 제일 높으며, 그 높이는 약 2.2m 정도이다. 지난 2018년에 복원정비를 끝낸 동문(향일문, 向日門)과 일부 동벽의 북편 끝까지와 북벽도 일부 포함하고 있으며, 이번 발굴조사로 동벽 남단부 일부를 뺀 전체 약 440m 정도의 경주읍성의 동벽 실체 대부분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지적도와 잔존하는 성벽 및 발굴 자료를 종합하여 추산한 동벽 전체 길이가 약 624m** 인 것을 고려하면 2/3가 넘는 규모다.

 

 

 

* 동문의 남쪽에 잔존하는 치와 정비된 성벽 약 86m 부분 + 북쪽으로 발굴․복원된 3·4구간 및 우회도로구간(약 206m) + 이번 5구간 발굴(약 147m)

- 3․4구간 발굴 : 2009~2016년 발굴조사 [한국문화재재단, 慶州 邑城Ⅰ(2017년)〕

- 우회도로구간 발굴 : 2015~2016년 발굴조사 [한국문화재재단, 慶州 邑城 Ⅱ(2018)〕

** 경주읍성의 위치와 범위는 1912년 일제강점기 지적도에 표현된 읍성을 현재의 지적도와 겹쳐 확인할 수 있는데, 동벽 약 624m, 서벽 약 612m, 남벽 약 570m, 북벽 약 606m로 네 벽 총 길이는 2,412m로 추산됨

 

이번 조사의 성과는 첫째, 경주읍성 문헌기록인 고려 현종(顯宗) 3년(1012)에 처음 토성(土城)을 쌓고, 고려 우왕(禹王) 4년(1378)에 석성(石城)으로 고쳐 쌓았다는 기록상의 개축 양상을 동벽에서 명확히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벽은 동벽 아래의 토성 흔적이 이어지지 않고 처음부터 석성으로 쌓은 것이 확인되어, 현재 읍성 범위로 파악되고 있는 개축된 석성의 범위와 평면 형태가 다르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둘째, 동벽의 대부분이 편축(片築)* 방법으로 개축된 것을 확인하였다. 석성으로 개축할 때 동벽쪽 토성의 외벽 쪽은 절개하고 내벽쪽은 토루(土壘)*를 이용하여 축조하였고, 북벽쪽은 바로 쌓아 올렸으나 벽석(壁石) 축조방식에 있어서는 외벽만 석축으로 하고 내벽은 흙과 잡석으로 채우는 편축 방법은 같은 양상이다. 처음 석성으로 개축시의 벽석은 동벽과 북벽에서 아래 3단 정도만 남아 있고, 그 위로는 조선초기와 조선후기에 수축(修築)*된 성벽으로 확인된다. 수축된 성벽도 외벽만 석축으로 쌓는 편축 방법으로 축조하였는데, 내탁부(內托部)*에 일정 높이마다 석축열(石築列)*을 만들어 내부 판축토(版築土)*의 밀림을 방지하였다.

* 편축: 한쪽 벽만 돌을 쌓아서 만듦

* 토루: 토성의 벽을 구축하기 위해 여러 겹의 흙으로 다져 쌓은 구조물

* 수축: 집이나 다리, 방죽 따위를 고쳐 짓거나 보수함

* 내탁부: 성벽 구축 시 성 내벽을 구축한 부분

* 석축열: 돌로 쌓아 만든 줄

* 판축토: 건축물의 기단이 되는 판판하게 다진 흙

 

 

 

 

 

셋째, 동벽과 북벽이 연결되는 성벽의 모서리는 직각을 이루지 않고 둥글게 축조한 양상이 확인되었다. 이는 『경주읍내전도(1798년)』* 의 도상에 표현된 직각의 모습과는 다름을 알 수 있었다.

* 정조(正祖)에게 올린 『집경전구기도(集慶殿舊基圖)』 내의 것으로 당시 경주 읍내의 고분군 및 산천의 모습과 함께 읍성 성곽을 뚜렷하게 구획하고, 내부에 여러 건물까지 매우 사실적이고 상세하게 그린 그림

 

넷째, 체성벽에서 달아내어 축조한 치(雉)*의 기단부가 동벽쪽에서 2개, 북벽쪽에서 1개가 확인되었다. 이번 동벽쪽의 2개는 이미 발굴되어 복원된 동문 북편의 첫 번째 ‘치’ 다음의 것이다. 이로써 동문 북편에 존재했던 3개 치의 위치가 모두 정확히 확인되었으며, 거의 75m 간격이다. 이 3개의 치 중 가운데 것에서는 팔부중상 면석 3매가 기단석으로 사용되었음이 보도(2020.2.21.)된 바 있다. 그리고 북벽의 치는 북벽의 동편 첫 번째 치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치는 모두 일제강점기의 지적도상에 표시된 위치와 일치한다. 또한 동벽과 북벽이 연결되는 모서리 부분에는 이를 감싸는 평면 말발굽 모양의 기초석 범위(길이 10m, 너비 10m)가 확인되었는데, 성우(城隅)*로 판단되며, 일제강점기 지적도에는 표시가 없다.

* 치(雉) : 성벽에서 주로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돌출시켜 쌓은 방어시설

* 성우(城隅) : 치(雉)의 종류 가운데 하나로 모서리에 있는 치를 말함

 

이와 같은 경주읍성 5구간에 대한 발굴결과와 그 성과는 향후 경주시의 동문(向日門) 북편의 동벽과 북벽에 대한 복원ㆍ정비 시 읍성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진행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본다.

 

이번 현장공개 공개설명회에서는 관련 전문가와 지역민들에게 발굴조사 결과와 성과를 출토유물과 함께 보다 자세하게 설명할 예정이다.

 

 

한성훈 기자 sol11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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