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들과 제자들의 백인영 10주기 추모공연

2023.02.07 11:44:27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1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백인영 떠난 지 10년이다. 그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추모 공연을 준비했는데, 여기에 신영희, 김청만, 이광수, 원장현, 김영길 등 가깝게 지내던 국악인들이 우정출현을 해 주었다.

 

첫 순서는 이광수 명인의 비나리로 막을 열었다. 사물반주에는 임인출ㆍ임수빈ㆍ장필기ㆍ김진옥 등이 강약을 조절해 가면서 소리를 이끌어 주고 있었다. 다른 성악과는 달리, 사물로 반주한다는 자체가 이미 소리의 적극성을 예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이광수의 비나리는 힘이 실려 있는 소리였고 강과 약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어서 공력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소리였다. 그의 비나리는 어려서부터 익혀 온 소리로 이 분야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

 

원래 <비나리>는 <빌다>의 옛 명사형으로 알려진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사에 방해가 되는 여러 액살(縊殺)을 물리치고 순조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간절히 소망하는 바를 기원하는 내용이 중심이다. 곧 살을 푸는 살풀이, 액을 막아주는 액막이, 수명의 장수와 부귀(富貴)와 복덕(福德)을 비는 덕담이나 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리꾼의 공력에 따라 그 차이가 심한 편이다.

 

두 번째는 유대봉제 백인영류 가야금 산조를 백기숙 외 15명의 합주로 연주하였다. 이 산조는 1960~70년대 전후 유대봉(1927-1974) 명인이 왕성하게 연주하고 있었는데, 이 산조를 백인영이 익힌 다음, 그의 음악적 감각으로 가락을 첨삭(添削)하고 조절하여 새롭게 백인영류를 만들어 연주하기 시작한 유파이다. 윗대 선생에게 배운 그대로의 가락을 지켜나가는 산조 음악인들은 그렇게 흔치 않은 듯 보인다. 스승의 가락을 기본으로 하되, 부분적으로는 본인의 가락을 첨삭하여 연주하고 있다.

 

 

백인영이 유대봉에게 산조를 배울 당시는 1960년대 말이었다. 그런데 공부하기 위해 선생을 찾아가면, 어제 가르쳐 준 가락과 오늘의 가락이 달라서 배울 때마다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렇게 타는 스승의 즉흥성이나 변화된 가락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고 말한 바 있다. 백인영은 선생이 세상을 뜬 뒤, 선생이 남긴 녹음본을 구해서 그 자료로 연습한 다음, 1986년 호암아트홀에서 유대봉류를 재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민속 음악인들이나 평론가들은 “마치 유대봉이 살아 돌아와 연주한 듯”한 발표회였다고 그의 연주 자체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이 연주로 인해 백인영은 <1986년을 빛낸 올해의 음악가>로 뽑혔고, 자연스럽게 유대봉제 가락을 이어가는 연주자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1991년, 그는 객석이 주최한 <가야금 여섯 바탕전>에서 유대봉류 가야금 산조를 40분에 걸쳐 발표하게 되었는데, 이 연주로 인해 유대봉제 산조도 기존의 다른 유파와 동등하게 보존되어야 하고 전승해 나갈 값어치가 있는 음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백인영의 제자, 이민영이 말하는 이 산조의 특징을 들어본다.

 

“이 산조는 가락의 변화를 강조하면서도 화려하고 즉흥적인 면이 다른 유파와 다른 맛을 내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조(調)를 바꿔 가며 다채로운 음을 구성해 내는데, 진계면은 남도소리의 한(恨)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지요, 그러나 경드름에서는 경기지방의 맛을 시원하고 깔끔하게 표현합니다. 또한 중모리와 중중모리에서는 남도의 맛과 경드름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속소리를 진하게 내되, 그 기교를 마음껏 자랑합니다.

 

그 뒤 자진모리 부분에서는 거문고 가락의 특성을 살려서 장엄하고 활기찬 가락으로 시작하는데, 변조되는 부분에서의 음색이 또한 특이합니다.

 

특징적인 연주법으로는 음(音)을 제자리에서 줄을 가볍게 짚는 경안(輕按)이라는 방법으로 내지 않고, 눌러서 내는 역안(力按)의 방법으로 처리합니다. 또한 주법에서도 퉁기는 주법보다는 엄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음색 자체의 무게감이 실리고 있지요. 그래서일까요? 남성적인 힘과 패기로 무장된 <유대봉제 백인영류 산조>는 웅장하고 온화하며 그러면서도 자유롭고 변화무쌍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세 번째 순서는 백인영류 아쟁산조 합주였다. 국립국악원에서 아쟁연주를 담당해 왔던 김영길 명인을 위시하여 신재현, 김인규 등 10여 명의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와 명고 김청만의 반주로 이어졌다. 김영길은 백인영과 사제의 인연을 맺지 않았음에도 “네가 내 가락을 이어가면 좋겠다”라는 유언을 받들어 2주기 추모공연 때, 백인영류 아쟁산조를 복원 연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산조의 특징은 우조와 계면조의 구분이 뚜렷하며 변청의 활용이 돋보인다는 점, 자진모리 악장에서는 경드름제를 첨가하여 가락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만든 점, 무엇보다도 즉흥성이 가미된, 그러면서 관객과 함께하는 현장성이 살아있어 정형화되지 않은 것이 매력이다.

 

<가시고기>라는 실내악곡을 연주한 뒤, 마지막으로 시나위와 씻김굿이 이어졌다. 신영희 명창 외 4명이 소리를 하고, 대금의 원장현, 아쟁의 김영길, 장고의 김청만, 징의 이광수 등이 함께 반주하며 백인영의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풀고 극락세계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굿이 행해졌다. 이 굿은 춤이나 음악에서 예술적 요소가 뛰어난 작품이다.(2022년 11, 13.)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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