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오늘 4월 5일이 청명이구나
사전에 보니 청명(淸明)이란 말의 뜻으로 1. 날씨(혹은 하늘)가 맑고 밝다. 2. 소리가 맑고 밝다. 3. 형상이 깨끗하고 선명하다.... 이렇게 풀이한다. 이 가운데 오늘 청명의 뜻은 1. 날씨가 맑고 밝아서 일 것이고, 그러기에 이때쯤 이런 이름의 절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청명이 음력으로는 3월에, 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에 든다고 하고 해의 황경(黃經)이 15도에 있을 때라고 한다는 천문학상의 설명은 이제 좀 지겨울 때이다. 그저 날이 맑고 좋은 철인데 우주 공간을 망원경으로 잘라서 연구하는 천문학이 어쩌고저쩌고하면 이 청명한 날의 기분이 복잡해지고 골치가 아플 것이다. 그러니 글 쓰는 분들도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로 유식한 척하지 말자. 다들 유식한 글에 질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달력을 보니 오늘이 청명일 뿐 아니라 식목일이란다. 아 그렇구나. 4월 5일이 식목일이지. 아니 아직도 식목일이 의미가 있는가? 예전에 나무 한참 심자고 강조할 때 일이지, 지금은 우리 주위에 온통 나무가 우거져 있고, 산에는 나무들이 너무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 올라가지도 못할 지경인데 아직 식목일을 찾는가? 더구나 공휴일도 아니지 않은가?
예전에 하도 쉬는 날이 드물어 이날 하루 쉬는 것이 그리도 좋아 손꼽아 기다렸지만, 지금에야 식목일을 반길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절기상의 명절이 휴일과 겹치면 그다음 날을 쉬도록 하는 제도까지 생겨 일년 가운데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을 견줘 보면 쉬는 날이 더 많은 게 아니냐는 착각을 할 만한 그런 시절인데 우리는 식목일이라고 이를 기억하고 기리고 계속 살려야 할 것인가?
요즘처럼 봄 햇살이 우리의 몸속의 피를 데워 혈액순환이 촉진될 때면 우리만이 아니라 식물들, 나무들도 다 몸속에서 혈액순환이 왕성해질 것이다. 그러니 나무를 심으면 잘 자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고, 다만 그것이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더 이른 때를 잡아서 식목행사를 하면 어떠냐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을 얻는 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 벌거벗은 임금님이 아니라 벌거벗은 산들을 많이 보고 큰 우리 같은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식목의 추억은 각별한 것이어서 쉽사리 이별하기에는 섭섭하다.
그런 우리가 모르고 지나온 것이 우리 역사의 식목일의 시원이라고 하는 속설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우리의 식목일의 유래는 무려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신라의 문무왕이 근 10년 동안 당나라와 싸워 문무왕 17년 2월 25일에 당나라 세력을 완전히 밀어내고 삼국통일을 이룩했는데. 이날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5일이어서 이날을 기려 나무를 심었던 것이 식목일의 유례란다. 그런데 이 말은 그동안 역사에 관해 나름대로 공부를 조금 했다는 필자까지도 전혀 처음 듣는 말인데, 이게 산림청 누리집에 실려 있단다.
나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이야기이니 그런가? 하고 생각을 해보면서도 우리 역사에 농사의 시작을 알리고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는 있었지만 나무를 심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잘 알다시피 봄에 제기동에 있는 선농단에 임금이 행차하여 모내기를 시범으로 보여주는 행사를 했고, 창덕궁 후원에 논을 만들어 거기에 벼를 심고 그 벼가 크는 것을 보면서 한 해 농사의 흉풍을 살펴보았다는 것은 알겠지만 삼국통일을 기려 나무를 심었다는 말은 정말 처음이다.
혹시 이 말이 우리가 현대에 식목일을 정하면서 그 의미를 붙였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제1회 식목일 행사는 1946년 4월 5일 서울시의 주관으로 사직공원에서 거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는 아직 우리가 정부를 가지지 못할 때, 곧 미군정 치하에서 정해진 것이라고 하는데, 그보다는 일제강점기 일본 사람들이 산림녹화에 열을 낸 역사가 있었다.
조선총독부 출범 당시부터 1915년 영림창장(營林廠長)으로 영전할 때까지 식산국 산림과장(山林課長)을 지내면서 식림정책을 주관한 일본인 사이토 오토사쿠(齋藤音作, 1866~1936)가 1910년 5월 5일 동대문 밖 동적전(東籍田, 선농단옆)에서 순종황제를 종용해서 친경식(親耕式)을 거행했고 이듬해인 1911년 4월 3일 남산 왜성대에 있는 총독관저(總督官邸) 뒤뜰에서 제1회 기념식수일 행사를 거행한 것이 효시라는 것이다.
기념식수일은 일제가 패망을 눈앞에 둔 1945년 4월 3일에도 진행되었는데, 그 장소는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의 분점격인 경성호국신사(京城護國神社) 경내였다고 한다. 기념식수 행사만이 아니라 실제로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전역에 나무를 많이 심은 것은 사실이다.
해방 이후 첫봄을 맞이한 1946년 4월 1일, ‘해방기념’이라는 이름을 내건 식수행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졌고, 그 이듬해인 1947년부터는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식목일로 기리는 이 행사의 배경에 있는 일본의 역사를 도외시할 수가 없다. 그렇게 본다면 삼국통일을 이룬 기념으로 식목일이 제정되었다는 소식은 조금 믿기가 어렵다. 자칫하면 요즘 흔히 쓰는 '가짜 뉴스'로 취급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런데 그게 무슨 그리 중요한가? 광복 이후 60년대 들어서서 그때까지도 전국에 민둥산이 많았는데, 대대적인 식목 행사와 산림 보호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모범 산림조성국이 되어 지금 이렇게 우리 주위가 온통 푸른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런 청명한 시절에 지난 역사로 시비하지 말고 이렇게 나무들이 잘 자라준 고마움을 마음껏 느끼고, 이런 때에 우리 마음을 이 날씨와 환경의 조건처럼 맑고 밝게 지니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다만 이런 날씨에 우리 마음을 청명하게 지니는 방법이 과제이다. 청명한 마음을 가지려면 청명한 숨쉬기를 해야 한다. 2006년 필자의 3번째 책 제목이 《청명한 숨쉬기》다. 이제 와서 절판된 옛책을 선전하자는 것이 아니다. 일찍부터 맑고 밝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청명 하루 전인 4월 4일 낮 서울 망우리 공원의 묘역에서 한 일본인 추모행사가 열렸다. 바로 1931년에 이 땅에서 숨져 여기에 묻혀 있는 일본인 산림기사 아사카와 다쿠미의 92주기 추모행사다. 다쿠미가 젊을 때 전국에 좋은 나무를 보급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지만, 그것보다도 그가 우리 한국인들의 친구가 되어 우리의 아픔을 이해하고 더듬어 주었으며, 우리가 갖고 있던 우리 문화를 발굴하고 정리해 후대에 전해준 공로가 크기 때문이다.
최근 한일 사이 막힌 물꼬를 트는 노력이 우리 쪽에서부터 시작된 분위기에 맞춰 어제 행사장에는 우리 쪽에서도 일본 쪽에서도 많은 분이 와서 함께 추모했다. 나무 이야기를 하면 앞에서 말했지만, 조선총독부 시절 나무정책을 실질적으로 집행한 사이토 오토사쿠도 이곳 망우리 공원 위편에 묻혀 있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그 사람의 행적은 일본을 위한 총독부 정책의 수립, 집행자로 머문 점이 더 강하였던 만큼 다쿠미만큼 우리가 추모하기가 좀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생각하는 맑은 마음은 이웃을 이웃으로, 친구로 보는 것이다. 가깝게는 집안과 동네, 마을.... 크게는 나라와 국가 사이에도 마음을 트고 서로 이해하고 돕고 보듬고 사는 것이다. 그런 청명한 마음은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청명한 숨쉬기를 통해 더 퍼질 수 있다. 이렇게 좋은 날에는 좋은 맘으로 좋은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실천해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