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신록은 언제 오는가?

2023.04.19 11:11:10

배는 곧 임금의 길이고 물은 곧 인심이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9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때일 것이다."

 

우리에게 수필가로 기억되는 영문학자 이양하(1904~1963) 선생의 대표적인 수필 「신록예찬」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면서 신록을 만끽할 때로 5월을 거론하신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 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져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 님의 수필을 다시 펴지 않아도 대체로 사람들은 5월을 신록의 계절로 보는 데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 바로 요즈음이 바로 신록의 한복판이라는 것이다. 겨우내 흑갈색으로 뭉쳐있던 외피 사이로 어느 틈에 연록의 새순과 새잎들이 솟아올라 며칠 사이에 가지를 덮어준다. 새들은 자기들 세상을 만난 듯 날아다니며 마음껏 목소리를 높인다. 거기에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지구온난화인가 뭔가로 지구의 온도가 상당히 올라간 이후에 이제 우리의 신록은 4월 하순이 아닌가? ​

 

이런 생각은 지난 한참 동안 산을 오르지 못하다가 드디어 며칠 전에 올라서 느낀 것이다. 늘 보면 어느 시점을 잘라서 신록이니 아니니 말하기가 어려웠을 터인데, 갑자기 참 오랫만에 올라가니 길가에서 늘 보던 나무들이 어느새 다 연초록 옷을 입고 막 화장하고 싶어 하는 소녀처럼 보이더라는 것이다. 단 하나 차이라면 5월 초 보다 요 때는 황사가 많이 부는 것이고 그러기에 이양하 님의 지적이 맞는다고 하실 수도 있지만, 그러나 기온과 다른 조건은 확실히 신록을 4월 하순으로 끌어올려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4월 하순의 한 가운데인 19일에 우리나라 정치의 신록을 연 4·19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4·19를 의거라 부르건 혁명이라고 부르건 본질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국민의 지탄을 받은 데 대해 젊은 대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저항했고 그 뜻을 받아 국민이 일어섬으로써 다시 국민의 뜻이 정치의 본질임을 회복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정치라는 것은 몇천 년의 역사가 있지만, 순수하게 맨주먹으로 일어서서 국민이 주인임을 관철한 일(그러기에 혁명이라고 불러 마땅하리라)은 처음이고, 그것이야말로 늙고 낡고 병든 정치라는 나무에 새잎이 나게 한, 다시 말하면 정치에 신록을 가져온 것일 뿐이라고 하겠다.

 

오늘이 4월19일, 그런 정치의 신록을 연 지 63주년이 되는 해구나. 이런 때에 다시 정치를 생각해보게 된다.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우리가 원하고 선택한 정치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공화의 정치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공화제(共和制)는 세습하는 군주가 존재하지 않는 정치체제이다. 우리 국민은 선거를 통해 최고지도자를 뽑고, 또 다른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뽑아 그들이 서로 견제하면서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믿어왔다. 다만 그들에게만 맡길 수 없어 사법제도와 언론에 감시와 길잡이 역할을 하도록 해 왔다.

 

우리는 지도자가 많은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국민의 올바른 뜻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한다. 더는 특정인만으로 그들의 리그를 형성하고 그것으로 나라를 운영하면 안 된다. 지도자를 모시는 사람들도 마치 군주를 모시는 것 이상으로 지시나 명령을 그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복종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지도자가 잘못하면 국민에 의해 내려가고 새로운 지도자가 새로운 생각으로 나와야 한다. ​

 

그런 당연함이 자꾸 어긋나고 배신당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웬일인가? 누구 쪽이라 할 것도 없이 정치권은 진영논리로 가득 차 있어 합리적인 의견 개진이나 형성이 안 되고, 옳고 그름을 떠나서 무조건 지도자를 따라하면서 상대방 흠집을 내기에 바쁘다. 국민이 본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는 듯하다. 정권들은 좁은 인재 창고로 자기들 사람만 써서 사회를 점점 경직되게 만드는 것이 여전하다. 일반 사람들의 생각도 어느 틈에 그러한 진영싸움에 말려들어 가고 있고, 아무리 멈추라고 해도 멈출 생각을 안 한다. 자연엔 봄이 오고 신록이 나오는데 정치권에는 신록이 나올 생각도 하지 못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맹자는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배와 물로 비유했고, 그 가르침에 따라 당나라 때 육지(陸贄·754∼805)는 말했다. “배는 곧 임금의 길이고 물은 곧 인심입니다. 배는 물길을 따르면 뜨고 거스르면 가라앉습니다. 임금은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굳건해지고 잃으면 위태로워집니다. 이 때문에 옛날 훌륭한 임금은 사람들의 위에 있을 때는 반드시 천하 사람의 마음을 쫓으려고 하였고 감히 천하 사람들을 가지고서 그의 욕심을 쫓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군주와 백성, 임금과 천하사람이란 용어를 대통령과 국민으로 바꾸어도 다 맞는 이야기인 것을 우리가 다 아는데, 왜 그런 것이 우리의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는가?

 

 

4·19정신은 개혁이고 혁신이다. 잘못은 고쳐야 하고, 낡은 껍질은 벗어야 한다. 3년 전인 60돌에 정치권에서는 ‘더 정의롭고 나라다운 나라’,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 수호’,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정치개혁’ 등의 성명을 발표했다. 문맥상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크게는 다 그 말이 그 말이다.

 

국민을 위해 국민의 편에 서서 새롭고 맑고 깨끗한 정치를 하자는 다짐일 것이다. 요즘 우리 산야에서 보는 그런 신선하고 깨끗한 신록과 같은 정치를 하면 되지 않겠는가? 기득권과 낡은 편 가르기에 얽매어 한 치도 못 나가는 그런 정치 말고, 과거를 훅훅 털고 새 정치를 해달라. 세계가 지금 21세기, 모든 문명이 낡은 사고를 벗어났는데 우리 정치인들의 사고와 행태는 갈수록 더 퇴회 되는 것이 아닌가?

 

4·19의 정신이 민주주의를 지킨 것이라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4·19정신은 미래 잃은 대한민국에 새로운 횃불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때의 그 정신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신선한 새잎이 나오기를 부탁해 보는 것이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