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금주 재미동포] 지난 20일 나는 보스턴 총영사관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재외국민 투표를 마쳤다. 먼 도시나 시골에서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을 운전해 와서 투표에 참여하는 교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켠이 숙연해진다. 많은 이들에게 이 한 표는 단순한 정치적 의사 표현이 아니라, 기억과 신념, 희망을 담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그에 비하면 매우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마침 수요일, 내가 일하는 보스턴 근교 공립학교에서는 아침 첫 수업이 없는 날이었고, 나는 출근길에 조금 일찍 집을 나서 투표소에 들를 수 있었다. 그 여유는 단지 시간 덕분만은 아니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교장과 교감, 그리고 동료 교사들이 나의 투표를 전적으로 지지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당연히 가야지”, “네가 한국에서 온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아니냐”며 기꺼이 응원의 말을 건넸다. 이국땅에서 마주한 지지와 배려는 낯설도록 따뜻했고, 나는 그 마음을 등에 업고 발걸음을 옮겼다.
2025년 5월 21일 아침, 보스턴은 봄의 절정을 지나 여름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었다. 신록은 무성했고, 부드러운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흔들며 계절의 경계를 알렸다. 그 싱그러운 풍경 속에서 나의 마음은 조금 무거웠다. 오늘은 단지 하나의 선거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의 출발점이기 때문이었다. ‘역사의 한복판’에 조용히 발을 들여놓는 마음, 나는 그 감각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단지 하나의 표일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너무도 크고 깊었다. 이 첫 걸음에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자부심이었다.
나는 미국에 온 지 22년 이 되었다. 보스턴 지역의 공립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이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일상을 살아간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동료들과 소통하며, 커뮤니티에 기여하며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나는 이 사회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내 정체성의 뿌리는 여전히, 그리고 단단히, 한국에 닿아 있다. 한국은 나의 고향이자, 내가 사랑하는 나라다. 그리움과 자부심이 교차하는 마음속의 한국은 언제나 선명하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엔, 그 감정이 더욱 또렷하게 올라온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쿠데타, 그리고 그에 대한 탄핵 이후 치러지는 선거다. 내란의 밤. 그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상적인 구조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참담하고 충격적이었다. 대통령이 헌정을 유린한 내란을 직접 획책했고, 곧바로 시민들의 분노와 국회의 단호한 대응이 이어졌다. 그날의 뉴스 영상은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 SNS를 통해 순식간에 조직된 저항의 물결, 국회의 긴박했던 탄핵 소추안 표결 장면까지.
그날 나는 평소처럼 교실에서 수업 중이었다. 동생에게서 온 문자와 속보 알림을 통해 윤석열의 쿠데타 소식을 접했다. 나는 미국에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치 서울의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듯했다. 그 모든 장면을 실시간으로 함께 겪었다. 수많은 재외 교민들 역시 깊은 충격에 빠졌다. 그 충격은 내가 근무하는 학교, 미국 사회,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내가 일하는 학교에는 한국인 학생들이 꽤 많다. 한국 학생들의 비율이 적지 않기에, 나는 곧장 학교 전체 교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한국에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해산하려 시도했으며, 이에 맞서 시민들이 저항하고 있다는 내용을 공유했다. 당시 서울 거리엔 탱크와 장갑차가 등장했고,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를 습격하는 장면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위한 표결을 시도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교장과 교감, 동료 교사들은 빠르게 반응했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염려의 메시지를 보내거나 이메일로 현재 상황을 자세히 물어왔다. 이후 시민들이 국회를 보호하며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되고, 결국 계엄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나는 즉시 이 사실도 학교 전체에 알렸다. 안도의 반응이 이어졌고, 모두가 시민들의 힘에 감탄하며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다. 한국 시민들이 보여준 민주주의의 저력은, 국경을 넘어 진한 울림을 전했다.
이후 동료 교사들과 나눈 이야기들도 깊이 남아 있다. 많은 이들은 계엄령 선포 소식 자체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들에게 한국은 언제나 선진국의 이미지였기에, 아프리카나 남미의 불안정한 정국에서나 들을 법한 ‘쿠데타’라는 단어가 한국과 연결된다는 사실 자체를 믿기 어려워했다. 그 순간 우리는 분명 국격의 추락을 체감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국격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함께 목격했다. 바로 시민의 힘으로, 시민이 만든, 시민의 참여로 지켜낸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동료들은 이후 뉴스를 통해 ‘응원봉 시위’를 접하고는, 진심 어린 존경과 감탄을 표현했다. ‘우리의 K-시위, K-민주주의’를 부러워하며, 자신들도 그런 시민적 연대와 에너지를 배워가고 싶다고 말했다.
내란의 우두머리 윤석열을 끌어내리기 위한 시민들의 투쟁은 한겨울의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다. 특히 소위 ‘키세스 시위단’이라 불린 이들은, 은박 담요 하나를 두르고 칼바람을 견디며 밤을 새워가며 싸움을 이어갔다. 10대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온 세대가 함께했고, 반짝이는 응원봉과 울려 퍼지는 K-pop 노래가 그 거리를 시위인지, 콘서트인지 모를 뜨거운 열기로 채웠다. 그 거리에는 절망 대신 희망과 연대가 넘쳐났다.
미국인들은 한국에서 벌어진 시민 저항과 참여로 이뤄낸 민주주의의 힘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7, 8학년 사회 시간에는 한국의 살아있는 민주주의 이야기를 가르친다. 동료 교사들이 자료를 문의해 오고, 학생들은 한국의 촛불시위와 응원봉 시위에 큰 관심을 보인다. 내가 전에 근무했던 중학교에서도 사회 시간에 박근혜 탄핵을 이끈 촛불시위를 모범 사례로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진정한 시민 참여의 의미를 전했다. 이 같은 교육은 이어지고 있으며, 미국 교실에서 한국 시민들이 보여준 저항과 참여는 민주주의가 시민의 힘으로 지켜지고 발전한다는 생생한 교훈이 되고 있다.
시민의 저항과 참여로 이뤄낸 살아 있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보스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집권 이후 무너져가는 고국의 민주주의와 날로 추락하는 국격을 지켜보며, 보스턴 교민들은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피켓을 들고, 작더라도 진실을 외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하버드 스퀘어에서 시작된 촛불 시위는 주말마다 이어졌고, 매서운 눈바람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윤석열의 쿠데타 시도 이후, 우리의 촛불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한겨울 보스턴의 얼어붙는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내란 수괴 윤석열을 탄핵하라!”고 외쳤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단단하고 깊었다.
최근에는 사법 내란을 규탄하며, 대법원 판사의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교민들은 각자의 삶을 잠시 멈추고 모여 자발적으로 손팻말을 만들고, 촛불과 응원봉을 들었다.
그 촛불은 단순한 불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국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자,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굳은 결의였다. 그 결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보스턴 교민들의 가슴속에서, 응원봉처럼 반짝이며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노력과 투쟁은, 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 새로운 민주주의 정부를 만들어가는 역사적 순간에 서 있다.
투표소 앞에 선 나는 단지 한 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지난 겨울을 함께 버틴 기억과 연대,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새기는 중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선택했다.
내란을 끝내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릴 후보를.
이건 단순한 정치적 입장의 표명이 아니다.
이건 기억의 투표다.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서고, 목소리를 냈던 시간에 대한 기억.
이건 약속의 투표다. 새로운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 가겠다는 약속.
냉전과 분단에 기생해온 낡은 기득권세력을 몰아내고,
역사의 정의가 제자리를 찾는 나라.
평화와 통일을 향한 길을 닦는,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나라.
그 시작에, 이 한 표가 함께하길 바란다. 한 사람, 한 표, 그 모든 뜻이 모여 역사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