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낙조 비꼈는데, 은린옥척 낚아내어

  • 등록 2025.07.15 11:08:20
크게보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4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순임금이 탔다고 하는 악기, 오현금(五絃琴) 이야기를 하였다. 금(琴)이란 악기는 고려 예종 때, 중국 송(宋)으로부터 들어왔으나, 현재는 연주법이 단절되어 희귀한 악기로 남아있다는 점, 관련하여 책과 금을 들고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해 주던 좌서우금(左書右琴)의 선비들은 지금 만나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 또한 부부의 정(情)이 돈독할 때 쓰는 말, ‘금실 좋은’, ‘금실이 좋다’라는 금슬상화(琴瑟相和)라는 말에서도 이 악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구려의 왕산악이 중국에서 들어온 7현금을 고쳐 만들어 탔더니, 그곳에 검은 학(鶴)이 내려와 춤을 추어 현학금(玄鶴琴), 후에 <학>을 빼고 <현금-玄琴>, 곧 우리말 <거문고>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단가, <몽유가>에는 순(舜)임금의 오현금에 이어 양귀비를 잃은 뒤, 명황의 피눈물이 아미산에 뿌려졌다는 이야기, 초의 패왕이 된 항우(項羽)장사와 우미인의 이별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 수양산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죽어 간, 백이와 숙제, 오자서와 굴삼려, 견우와 직녀, 소상의 팔경, 이화정, 오류촌 도연명의 정자, 여포의 적토마, 노장익당 황한승 등등, 많은 인물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어서 개략적인 사설 내용을 이해하면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여기서는 초(楚)의 패왕 항우(項羽)와 우미인의 이별 이야기를 간단하게 소개해 보기로 한다.

 

우미인(虞美人)은 초(楚)의 항우(項羽)장사가 사랑했던 우(虞) 씨 성을 가진 미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의 4대 미녀로 우미인을 비롯하여 월(越)의 서시(西施), 화가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궁녀로 머물러 있다가, 후에 원제의 비(妃)가 되어 나라를 구했다는 왕소군(王昭君), 그리고 당(唐) 현종의 여인, 양귀비(楊貴妃) 등을 꼽기도 한다. 이들 미녀에게는 공사(公私) 간에, 가슴 아픈 역사가 있게 마련이라고 했던가?

 

우미인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생을 비극적으로 살다 간 여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초(楚)의 힘센 항우(項羽)장사가 한(漢)의 군대와 싸울 때였다. 그런데 항우의 병사들이나 장수들은 한 나라의 군대와 맞서 싸울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위약해져서 결국은 포위가 된 채,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되었고, 항우는 살아남은 일부 군사들을 이끌고 탈출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역부족으로 한나라 군사들에게 포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된 우미인은 구차한 변명 한마디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항우 장사에 대한 그녀의 일편단심을 짐작하게 하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그가 죽은 뒤, 그의 무덤에는 예쁜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오고 있다.

 

항우와 우미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다룬, 「우미인가」는 다양한 형태의 문학 작품으로, 또 다른 예술 작품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데, 주된 내용은 항우에 대한 우미인의 절개를 애틋하게 그려내고 있어 감동적이라는 평가다. 과거 우리나라 조선창극단(朝鮮唱劇團)에서도 판소리 창작극으로〈마의태자〉, 〈황진이〉, 〈백제의 낙화암〉, 〈논개〉 등과 더불어 〈항우와 우미인〉이라는 제목의의 공연 기록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몽유가>라는 단가는 끝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아있다.

특히 “산나물과 보리밥으로 배불리 먹었으니, 기름진 음식이 무슨 소용이냐“라는 뜻의 ”산채맥반(山菜麥飯) 적구충장(適口充腸), 고량진미(膏粱珍味)는 무용(無用)”이라는 대목이 그러하다.

 

짧은 세상 살아가며 과욕과 명예가 얼마나 헛된 꿈이었는가를 일러주는 가르침 같기도 해서 매매일 큰 소리로 되뇌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낚시대 둘러메고 조대(釣臺-낚시터)로 내려가니,

서산낙조(西山落照-서쪽 산에 해는 떨어져 비추는데)비꼈는데,

은린옥척(銀鱗玉尺)-은빛 비늘의 큰 물고기) 낚아내어

버들 끝에 꿰어 들고,

망혜완보(芒鞋緩步-짚신을 신고 천천히 걸어가며)로

어부사(漁父詞) 외우면서

행화촌(杏花村-살구나무 꽃마을) 찾아가,

고기 주고, 술을 사서 취(醉)하여 돌아보니,

청한담백(淸閑淡白-욕심 없이 마음이 깨끗한) 이내 몸이,

세상공명(世上功名)을 비할소냐.

구승갈포(九升葛布-칙 줄기로 엮은 허름한 옷) 입었으니,

금의(錦衣-비단옷)를 부러워할 것이며,

산채맥반(山菜麥飯-산나물과 보리밥)으로

적구충장(適口充腸-입을 통해 배를 채웠으니)하였으니,

고량진미(膏粱珍味-기름지고 맛있는 음식) 무용(無用)이라.

세상사 정녕 이러하구나.

아니 놀고 무엇 하리.”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