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항우의 부하인 항장(項莊)이 칼춤을 추며 유방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유방의 부하, 장자방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홍문연가>라는 단가의 노랫말에서 항우를 향해, “은혜를 망각하는 배은(背恩)이라든가, 또는‘망의(忘義)“라고 하는 배경도 알고 보면, 유방과의 경쟁 결과에 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받게 되는 비판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항우가 그의 부하를 통해 유방을 죽이려 했던 연회에서 유방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결정적 요건은 무엇보다도 그의 사람 됨됨이, 곧 인품과 신의가 두터워서 목숨을 걸고 유방을 따르는 충성심 강한 부하들이 다수 존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는 특히 장자방의 역할이 커서 근거리에서 유방을 지켜주었고, 번쾌(樊噲)의 존재도 한몫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홍문연가>라는 노래 속에는 잔치에 모인 무인들의 이름이 일일이 열거되지 않은 채, 주로 그들의 옷차림을 엮어 살벌한 분위기만을 띄우고 있어 아쉽다.
여기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장수로는 나이 70살에 항우의 모사가 되어, 홍문연회에서 패공을 죽이도록 권한 범증(范增)이라든가, 젊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여 한(漢)의 공신이 된 진평(陳平), 항장이 검을 들고 춤을 추며 패공을 죽이려 할 때, 막아주던 항백(項伯), 그리고 춤을 추던 항장(項莊) 등의 이름이 등장할 뿐, 실제로 유방을 도와 큰 역할을 했다는 번쾌(樊噲)의 행동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아 다소 아쉽다.
유방의 수하, 번쾌는 참으로 특이하게 묘사되고 있는 무인(武人)이어서 인상에 남는 인물이다. 그와 관련하여 특별히 기억되는 점은 번쾌라는 장수는 거구(巨軀)이면서 힘이 센 장사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상대방이 술을 권하기 위해 술잔을 건넨다고 하면, 이를 뿌리치고 술항아리를 통째로 들고 마셨다는 이야기라든가, 또는 술안주도 돼지 앞다리를 통째로 들고 뜯는 바람에 모든 장수들이 기겁하고 입을 닫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또한 재미있는 일화로 남아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축성할 당시의 이야기도 있다. 당시에는 항우도 아직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전이어서 공사장 인부로 참여하여 남들보다 몇 곱절 큰 돌을 지고 다닐 정도의 장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항우가 한 곳에 이르러보니, 어떤 사람이 돌은 짊어졌는데, 항우 자기의 짐보다도 배나 되는 큰 돌을 짊어지고 있어서 항우가 매우 놀랐다고 하는 것이다. 후에 알고 보니, 그가 바로 <번쾌>라는 장사였다고 한다. 그러한 인연으로 인해 그와 같은 용감하고 힘센 장사를 자기의 수하로 만들지 못하고, 유방의 부하로 있다는 사실이 초패왕 항우에겐 뼈아픈 위압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단가 <홍문연가>에는 아쉽게도 이러한 대목들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고, 다만, 항장(項莊)이라고 하는 무인(武人)이 춤을 추며 유방의 목을 노렸다는 춤, 곧 항장무(項莊舞)라는 칼춤의 이름만을 남기고 있다.
이 춤은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후기, 무극(舞劇)의 하나로 무대에 올려졌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 춤에 관련된 구체적인 기록들을 조사해 놓은 장사훈의 《국악대사전》을 참고 해 보면, 조선 말기 고종 임금 때 홍문연(鴻門宴) 이야기를 무극화(舞劇化)한 평안남도 선천지방의 연희물이 처음으로 궁중에서 공연되었다는 점을 알 수가 있어 참고된다.
특히, 1890년대 초에 제작된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는 이 춤에 관한 대략적인 절차를 소개해 놓고 있으며, 항장무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든가, 복식, 그리고 의물(儀物) 등은 《교방가요(敎坊歌謠)》와 《이왕직 아악부 기록》에 나타난 기록들을 통해서 춤의 특징들을 알 수 있도록 해준 점이 참고되고 있다.


또한, 이 춤은 무인(武人)들이 출현하는 관계로 <선유락(船遊樂)>과 같이 <대취타 大吹打>가 연주되었다는 점도 특징이다. 여기서 <대취타>라는 음악은 치고(打) 부는(吹) 악기들이 중심이 되어 행차하면서 연주하는 활달한 음악으로, 참여 악기들은 태평소가 주된 가락을 연주하고 용고, 징, 자바라, 나발, 나각 등 일정치 않은 음정을 가진 타악기와 취악기들로 편성된다.
대취타의 용도는 주로 임금의 거동이라든가, 현관들의 행차, 군대의 행진, 또는 개선(凱旋) 등에 쓰였다는 음악으로 옛 군악(舊軍樂)을 말한다. 항장무에 출연하는 인물들로는 항우와 우미인을 비롯하여, 패공, 범증, 장량, 항장, 항백, 번쾌, 그리고 집사와 기수(旗手), 세악수(細樂手) 6인, 취고수 8인 등이다. 또한 이 <항장무>에 사용되었던 일부의 무복(舞服)이라든가 투구, 등은 현재 그 형태만이 국립국악원에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