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인천(仁川)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도 소리꾼 유춘랑 명창이 그의 제자들과 함께한 2025년 정례 《서도소리 발표회》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서도 소리>란 말에서 <서도(西道)>는 우리나라 서쪽 38 이북의 서해안 지대를 의미하는 황해도와 평안남북도를 포함한 지역의 개념이고, <소리>는 가악(歌樂), 또는 성악(聲樂)이란 의미를 지닌 순수 우리말의 통칭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서쪽 지역에서 불러온 황해도나 평안도 지방의 노래’를 뜻하는 말이 된다.
지역의 노래로는 서울, 경기, 충청남북도 일부를 포함하는 <경기소리>도 있고, 호남의 <남도소리>도 있으며,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하는 <동부소리>, 그리고 <제주소리>도 있다. 이들 각 지역의 노래들은 그들의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며 그 위에 가락이나 창법, 표현법, 장단, 멋스러움 등을 표출해 온 것이다.
오래전부터 인천시와 인근의 도서지방은 서도소리를 잘하는 소리꾼들이 많았다. 그러한 영향으로 인해 서도의 한(恨) 많은 소리를 좋아하는 애호가층도 다른 어느 지방, 어느 도시보다도 두터운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환경이나 여건이 유춘랑이 쉽게 발표회 무대를 만들기 어려웠으나, 인천시민의 격려로 용기를 낼 수 있었고, 그래서 앞으로도 더더욱 열심히 노력해 보답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글쓴이는 당일 정례 공연에 앞서, “치레진성(致禮眞誠)으로 서도(西道)소리와 이웃을 대하는 유춘랑 명창”이라는 제목의 격려 말을 해 주었는데, 그 요지의 일부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기악이나 성악은 그 소리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악자위동(樂者爲同)의 정신이 배어있다 하겠습니다. 특히, 목소리의 울림을 통해, 모두를 공감(共感)하게 만든다는 의미는 듣는 사람도 그러하지만, 부르는 이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달변가(達辯家)의 매끄러운 설득보다는 다소 어눌해도 진심이
담긴, 충고의 말을 신뢰하는 이치와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의 예로, 갑(甲)이 부르면 공감이 크지만, 을(乙)이 부르면 그렇지 않은 현상도 나타날 때가 있다.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소리꾼의 마음가짐에 따라 다양한 소리 색깔이 나타나기에 듣는 이의 마음도 서로 다르게 움직이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갑(甲)에 해당하는 소리꾼으로 나는 강화(江華)가 낳고, 인천이 키운 서도소리꾼 유춘랑 명창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유 명창이야말로 치례(致禮)와 진성(眞誠), 곧 지극한 마음과 참된 정성으로 서도소리를 대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그 하나의 예로 오래전, 경험담 하나를 소개해 본다.
10여 년 전, 중국 연변대학과 <한-중 실연교류회>에 유춘랑 명창은 제자들 몇 사람을 대동하고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공연 전날 밤 매우 늦은 시간이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호텔 지배인으로부터 단장이었던 나에게 항의성 전화가 걸려 왔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하고 급히 유 명창 방을 내려가 보았더니 밤늦도록 호텔방에서 학생들과 조심스레 연습하는 것이었다.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을 잠시 잊고 최선을 다해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겠다는 그의 마음이나 자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나는 지금도 그날의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유춘랑이 다양한 우리소리 가운데서도 유독 서도소리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서도 소리꾼이 되기로 결심하게 된 배경도 알고 보면 생활 속에서 서도소리들을 들으며 자란 환경적 영향이 절대적으로 보인다.
누구보다도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어머니가 강화에 정착해 살면서 자녀들에게 <수심가(愁心歌)>를 불러주었다는 점이라든가, 기분이 좋으면 서도의 대표적인 민요, <산염불>을 즐겨 부르시던 할아버지의 소리를 자주 들으며 자랐다는 점, 또한 장고와 북, 쇄납 등을 잘 다루었던 아버지 형제분들의 노래와 연주도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서도소리는 그에게 피해 갈 수 없었던 인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러한 성장과정이 밑바탕이 된 그 위에 그는 본격적으로 이은관 명인이 운영하는 <대한국악원>에 나가 서도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 1981년부터는 김현규 명창에게도, 1990년대 이후에는 인천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던 벽파 이창배의 제자, 이영렬에게도, 그와 함께 황해도 양소운 명인의 서도좌창을 전승한 안선균에게도 소리를 익히는 등, 다양한 스승 밑에 폭 넓은 소리 공부를 해 온 것이다.
누구보다도 동생(유지숙)의 스승으로 당시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의 예능 보유자였던 오복녀 명창 문하에 들어가 서도좌창이며 민요, 입창 등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정통 서도소리꾼의 꿈을 키워 온 학습 경력, 40여 년이 넘는 세월은 그의 능력이나 소리 실력을 여지없이 증명해 주고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유춘랑은 그 어렵다고 하는 서도의 다양한 창법이나 가락, 특히 미세한 표현법인 시김새까지도 맛깔스럽고 자연스럽게 표출해 내는 정상급 명창 반열에 오른 보물이 아닐 수 없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