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추분, 범죄자 죽이는 일도 미뤄

  • 등록 2025.09.23 11: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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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14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정종실록》 1권 정종 1년(1399년) 3월 1일 기록에는 중추원 부사 고 구성우의 부인 유 씨와 중 신생이 사통하고 구성우의 종 둘을 살해한 것이 들켜 이들을 잡아 국문하고 죄를 물어 죽이자고 청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에 임금이 말하기를 “범한 바가 크기는 하지만, 봄ㆍ여름은 만물이 생장하는 때라, 옛 법에도 죽이는 것을 꺼렸으니, 추분(秋分) 뒤를 기다려서 단죄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고 서서히 음의 기운이 커진다는 24절기 열여섯째 추분(秋分)입니다. 조선시대는 위 정종실록의 예처럼 범죄자를 죽이는 일도 추분 뒤로 미룰 정도로 추분에는 모든 것을 삼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추분 무렵이 되면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들은 뜨거운 햇볕, 천둥과 큰비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입니다. 내공을 쌓은 사람이 머리가 무거워져 고개를 숙이는 것과 벼가 수많은 비바람의 세월을 견뎌 머리가 수그러드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벼에서는 향[香]이 우러나고 사람에게서도 내공의 향기가 피어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철종실록》 10년(1859) 9월 6일 기록에는 “추분 뒤 자정(子正) 3각(三刻)에 파루(罷漏,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세 번 치던 일) 하게 되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아서 딱 중간에 해당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될 것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도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바른길’을 말하고 있음입니다. 이처럼 우리 겨레는 추분날 일을 삼가고 종 치는 일조차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중용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중도가 더욱 절실한 때기도 합니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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