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로 알기) '가치'보다 '값', '값어치'

  • 등록 2025.10.10 11:07:46
크게보기

말집(사전)이 그어 놓은 보이지 않는 금을 넘어서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우리는 무언가의 소중함이나 쓸모를 이야기할 때 ‘가치’라는 말을 참 자주 씁니다. 그런데 혹시 이 말을 쓰면서 우리 토박이말 ‘값’이나 ‘값어치’를 떠올려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가치’와 ‘값’은 비슷한 말이라고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막상 선뜻 바꿔 쓰기는 망설여질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값', '값어치'라는 말보다 '가치'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알맞다고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까닭은 우리가 늘 펼쳐 보는 말집(사전)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먼저 말집(사전)에 실린 ‘가치’의 뜻풀이를 보겠습니다.

 

가치(價值)

사물이 지니고 있는 쓸모. 《표준국어대사전》 / 사물이 지니고 있는 값이나 쓸모.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철학] 대상이 인간과의 관계에 의하여 지니게 되는 중요성. 《표준국어대사전》

[철학] 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진, 선, 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가치’의 비슷한 말(유의어)로 ‘값’과 ‘값어치’를 나란히 올려놓았습니다. 이 풀이만 보면 ‘가치’가 쓰이는 어떤 자리에든 ‘값’이나 ‘값어치’를 마음껏 골라 써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말집에서 ‘값’이나 ‘값어치’를 찾아보면 그 비슷한 말로 ‘가치’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치’는 ‘값’을 비슷한 말로 품어주지만, ‘값’은 ‘가치’를 그러지 못하는, 마치 한쪽가기(일방통행) 같은 풀이인 셈입니다. 이러니 사람들은 ‘가치’를 더 크고 넓은 뜻을 지닌 말로, ‘값’이나 ‘값어치’는 그저 물건값을 따질 때나 쓰는 말로 여기게 되기 쉽습니다. 말집(사전)이 그어 놓은 보이지 않는 금이 우리말의 쓰임길을 되레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값’과 ‘값어치’는 본디부터 훨씬 더 깊고 너른 뜻을 품어온 우리 토박이말입니다.

 

1. 사고파는 물건에 일정하게 매겨진 액수.

2. 물건을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

3. 어떤 사물의 중요성이나 의의.

4. 노력이나 희생에 따른 대가.

5. 어떤 것에 합당한 노릇이나 구실.

6. 수학 하나의 글자나 식이 취하는 수. 또는 그런 수치.

7.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가격’, ‘대금’, ‘비용’의 뜻을 나타내는 말.

8.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수치’의 뜻을 나타내는 말.

9. ((‘-ㄹ 값에’ 구성으로 쓰여)) ‘-더라도’, ‘-ㄹ지언정’의 뜻을 나타내는 말.

 

보시는 바와 같이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값'의 뜻을 아홉 가지로 풀이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말로 '가격', '가문', '가액'을 들어 놓았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이보다 적은 6가지 뜻이 있다고 풀이를 해 놓았고 비슷한 말은 '가격', '가문', '가액', '가전', '고가', '대전', '돈', '대료', '금', '가치', '값어치', '의의', '코스트', '수치', '셈값', '숫값'이 있다고 했습니다. 

 

값어치

일정한 값에 해당하는 분량이나 가치.(표준국어대사전)

일정한 값에 해당하는 쓸모나 가치.(고려대한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은 비슷한 말을 따로 풀이를 하지 않았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비슷한 말로 '값', '가치'가 있다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값’과 ‘값어치’의 뜻풀이 속에는 ‘가치’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물건값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성과 쓸모까지 아우르는 큰 그릇이지요. 특히 ‘값어치’는 ‘그 값에 해당하는 분량이나 정도’를 뜻하는 뒷가지(접미사) ‘-어치’가 붙어 만들어진 말로, ‘그 값에 걸맞은 쓸모나 중요성’이라는 속뜻을 품고 있어 ‘가치’라는 말과 더욱 잘 어울립니다.

 

우리 말꽃지음몬(문학작품)에도 이 말을 부려 써서 사람의 소중함과 삶의 무게를 멋지게 나타냈습니다.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나중에는 E선생이란 분이 설렁탕 값이라고 일 원짜리 한 장을 따로 집어주지 않았는가. - 현진건, 「운수 좋은 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노. 다 제 값이 있는기다.- 박경리, 「토지」

제대로 된 물건이라면 제 값어치를 하기 마련이다..-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죽음의 값어치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무게로 측정된다. - 안정효, 「하얀 전쟁」

 

이처럼 ‘값’과 ‘값어치’는 사람의 존엄, 삶의 의미,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함을 나타내는 데 모자람이 없는 토박이말입니다.

 

말집(사전)이 그어 놓은 금은 우리가 손수 지우고 넘어서 나날살이에 쓰면 어떨까요?

 

 

가치 있는 삶 → 값진 삶, 값있는 삶

이번 기회에 너의 가치를 증명해 봐. → 이번 기회에 네 값어치를 보여줘.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 → 예술적 값어치가 높은 작품

그것은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 → 그것은 충분히 돈을 댈  값어치가 있다.

 

‘값지다’, ‘값있다’, ‘값하다’, '값어치 있다', '값어치 하다'처럼 여러 가지로 풀어 쓸 수 있어 우리 생각과 느낌을 한결 꼼꼼하게 담아낼 수 있습니다.

 

말집의 풀이가 아쉬울 수는 있지만, 말의 임자는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값’과 ‘값어치’를 제자리에 되돌려 널리 쓸 때, 우리말은 더욱 살찌고 우리 삶은 한결 또렷해질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나날살이 속에서 참된 ‘값어치’를 지닌 것들을 우리 토박이말로 불러봐 주세요. 그리고 이 값진 우리말을 둘레 사람들과 나누는 기쁨도 함께 누려 보시길 바랍니다.

 

 

이창수 기자 baedalmaljigi@gmail.com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