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좌창으로 전해오는 <장한몽>의 전반부를 소개하였다. 장한몽(長恨夢)은 “긴 시간 잊을 수 없는 꿈같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남녀 사이 애정, 결혼 문제를 다룬 신파조(新派調)의 이야기라는 점, 시작 부분부터 “이수일을 배반하고 김중배를 따라가던 심순애를 아시는가? 금강석(金剛石)에 눈이 어두워 참사랑을 잊었으니 그 마음이 좋을 손가!, 사랑으로 돈을 구해 진정을 잊었으니 그 마음이 좋을 손가?, 목숨같이 사랑하던 심순애가 남의 아내가 되었으니 생각사록 원통하다”라는 등등의 노랫말이 쏟아져 나온다고 이야기했다.
초창기에는 창가(唱歌) 식으로 불러오던 형태였으나, 서도(西道)의 좌창(坐唱) 형식을 빌려 불러오고 있다는 이야기로 그 줄거리는 이수일이라는 남자 주인공이 어려서 부모를 잃고 심순애의 부모 밑에서 친남매같이 지내다가 연인(戀人)의 관계로 발전, 혼인을 약속했으나 이를 심순애가 어기게 된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 배경에는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한 명분이 담겨 있어 동정의 여지도 없지 않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 후반부 이야기로 이어간다.
결과적이지만, 심순애의 처지나 부모의 처지에서도 이수일과의 혼인 약속을 외면하고 김중배를 택하는 문제는 현시대의 상황이 아니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비련(悲戀)을 그려 나가고 있는 이 작품에서는 물질적 값어치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이 그 중심 주제가 되고 있기는 하나, 100년 전의 시대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결정은 별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남녀의 관계에서 돈의 영향력이 그토록 크고 중요한 대상인가?, 아니면 사랑이 중심인가?, 하는 대목은 사람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현재까지도 왈가왈부(曰可曰否)의 문제로 이어오고 있어 현명한 답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작품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타고, 개작(改作)이 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고, 신파(新派) 연극의 대명사가 되어 그 영향이 서도소리에도 미쳐 이 분야의 주요 악곡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이 노래에서는 부모의 결정에 순응한 심순애가 그 결과에 대하여 이수일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용서를 비는 대목들도 나오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수일은 심순애를 용서하지 못하고, 갖은 모욕과 비웃음으로 세상을 저주하고 상대를 미워하기도 한다. 젊은 남녀 사이 애정 관계만을 본다면, 심순애가 이수일을 도저히 잊을 수 없다고 하겠지만, 다른 한편, 부모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심순애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래에서 이수일은 순애를 저주하며 비통해하고 있지만,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묘안이 없음을 알게 된 이후로는 술로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가 돈 때문에 사랑을 잃었다는 판단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복수 심리가 작동하기 시작, 사채업 등으로 큰 재산을 모으게 된다.
한편, 순애는 비록 부모를 위해, 부모의 뜻에 따라 김중배와 혼인은 했지만, 수일을 그리워하며 생각하는 마음은 잠시도 잊지 못하고 있다가 중병(重病)이 들어 죽기 직전에 놓이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수일을 만나보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했으나 허사로 끝난다.
그 뒤, 이수일도 심순애에게 너무 냉혹하게 대했음을 참회하게 되면서 순애의 병도 점차 쾌유하여 두 사람은 안락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이 서도좌창에 얹힌 <장한몽>은 순애와 수일의 이별 대목만을 중심으로 엮은 것이어서 전후 관련 이야기는 생략되어 있어 그 맥락을 첨가해 보았다.
노래의 줄거리가 재미있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일정한 장단 형이나 박자 형태가 특별히 짜여 있지 않은 무정형(無定形) 절주로 진행된다는 점이라든가, 또는 다른 악곡에 견줘 비교적 높은 음역의 가락들이 이어져 상청(上淸)의 고음(高音)을 많이 쓰는 점, 그러면서 잔가락의 처리나 극(劇)적인 표현, 특징적 시김새의 처리 등등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대목은 서도의 대표적 민요, <수심가>의 애절한 가락에 얹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는 점이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언제나, 언제나 참사랑 만나, 이 세상 백 년을 잘 산단 말이오.
생각사록 잊어버릴 날, 없어서 나 어이나 할 까나.“
(다음 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