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나 오늘 토박이말]눈구름

  • 등록 2025.10.18 1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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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솜구름, 포근한 '눈구름'을 아시나요?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아침 바람이 어제와는 다르다는 것이 살갗으로 느껴집니다.  조금 있으면 시린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이 오겠지요? 그런 날 잿빛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쏟아낼 듯 묵직한 낯빛(표정)을 하고 있을 때, 우리 마음속에는 조용한 설렘이 피어오르곤 합니다. 바로 흰 눈을 기다리는 마음 때문이겠지요. 이처럼 겨울 하늘의 느낌을 오롯이 품은 아름다운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바로 ‘눈구름’입니다.

 

 

‘눈구름’은 그 이름 그대로 참 숨김없고 거짓없는 멋을 지닌 말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뜻풀이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이 말에는 두 가지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눈과 구름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하늘에 흩어진 구름과 그 사이로 흩날리는 눈송이를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낼 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마치 그림이(화가)가 흰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한 겨울 바람빛(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둘째는 우리에게 더 낯익은 쓰임새로, ‘눈을 내리거나 머금은 구름’을 뜻합니다. 금방이라도 펑펑 함박눈을 쏟아낼 것처럼 잔뜩 물기를 머금어 짙은 회색빛을 띠는 구름을 떠올리면 꼭 맞습니다. 

 

하늘에는 눈구름이 뒤덮여 함박 같은 눈을 쏟고 있었다.《표준국어대사전》

차가운 바람이 서쪽에서부터 묵직한 눈구름을 몰고 오고 있다.《고려대한국어대사전》

 

두 사전을 살펴보니 ‘눈구름’은 ①눈을 품고 있는 구름이라는 뜻과 ②눈과 구름이 어우러진 바람빛(풍경)이라는 뜻을 모두 지닌, 참으로 그림 같은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눈구름’과 비슷한 말로는 한자말인 ‘설운(雪雲)’이 있습니다. 뜻은 같지만, ‘눈구름’이라는 토박이말이 주는 살갑고 포근한 느낌과는 조금 다릅니다. ‘설운’이 정제된 느낌이라면, ‘눈구름’은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이야기처럼 구수하고 따스한 느낌을 품고 있다고 할까요?

 

우리 삶에서 ‘눈구름’이라는 말을 부려 써보면 어떨까요? 우리 나날살이가 한결 더 넉넉해질 것입니다.

 하늘 좀 봐. 온통 눈구름이네. 오늘 밤에 눈이 오려나 보다.

아이들이 잿빛 눈구름만 보고도 저렇게 좋아하네.

따뜻한 방 안에서 포근한 눈구름이 세상을 하얗게 덮는 걸 보는 것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이처럼 ‘눈구름’은 그저 날씨를 알려주는 말을 넘어, 우리의 느낌과 바람을 담아내는 그릇이 됩니다. 꽁꽁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줄 하얀 눈을 기다리는 설렘, 고요한 바람빛을 보는 놀라움, 그리고 어쩌면 조금은 쓸쓸한 그리움까지도 이 말 한마디에 담아낼 수 있습니다.

 

다가올 겨울 어느 날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세요. 묵직한 ‘눈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면, 그저 ‘흐린 날’이라고 말하기보다 ‘눈구름 낀 날’이라고 살갑게 불러주세요. 그리고 그 아름다운 우리말을 곁에 있는 분들에게 가만히 알려주세요. 우리가 생각없이 지나쳤던 하늘의 낯빛이, ‘눈구름’이라는 말로 얼마나 빛깔스럽고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함께 나누는 기쁨은 작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네 삶은 한 뼘 더 따뜻하고 살가워질 테니까요.

 

 

 

이창수 기자 baedalmalji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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