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흉년에는 소를 잡지 못하게 했다

  • 등록 2025.12.01 08: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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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16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를 잡지 못하게 함은 올해 농정(農政)과 가장 큰 관계가 있는 일이다. 평년에는 혹 임시로 장패(藏牌)* 하는 일이 있었으나, 이는 풍년이 들어 흥청거리는 정사이지 결코 흉년에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의정부에서는 앞서 미리 각 행정구역에 알려 전보다 갑절 엄히 단속하게 하고, 형조와 한성부에도 미리 단속함과 아울러 도성의 안팎에 거듭 분명히 알아듣게 하여 금령(禁令)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좌ㆍ우 포도대장도 한결같이 두루 알도록 하라.“

 

위는 《순조실록》 32권, 순조 32년(1832년) 12월 1일 기록으로 흉년을 맞아 소를 잡지 못하게 함을 온 나라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는 조선시대 농경 사회에서 논밭을 갈고 짐을 나르는 등 농사의 핵심 일꾼으로 여기는데 흉년에는 곡식 생산이 더욱 어려워지므로, 소를 보호해 농업 기반을 지키는 것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근본으로 알았던 사회(조선시대) 전체의 생존에 직결되었지요. 또한 이 ‘우금’은 소 돌림병이 생겼을 때도 시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내내 도살한 사람을 유배 보내는 등 엄히 다스렸어도 소고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소의 도살과 소고기의 독점 판매는 시전(市廛)의 하나인 현방(懸房), 곧 푸줏간에서 했고, 서울의 현방은 성균관에 있었는데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반인(泮人, ‘다림방’이나 ‘도사-屠肆’, 전복-典僕)이라 했는데, 소고기 장사나 전통연희에 종사하는 천민이었지요. 그리고 소의 도살 곧 우금(牛禁)은 술을 금하는 주금(酒禁), 소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는 송금(松禁)과 더불어 농업 국가인 조선에서는 철저히 금지되던 삼금(三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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