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2주 동안은 고국 동포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시간이었습니다. 아픈 허리가 무슨 영광이라도 되는 듯 몇 년 동안 생고생하면서도 선뜻 수술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왔는지 돌아보면 후회도 되고 어리석기도 한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퇴원을 앞두고, 기적처럼 돌아온 꼿꼿해진 허리로 저는 병실과 복도를 걸어 다니며 고국의 뛰어난 의료기술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이것이 미국에서 말로만 듣던 K-의료기술의 발전이구나 싶었습니다. 이제 퇴원을 하면 곧바로 사랑하는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국립현충원 충혼당에 들려 아버지(배경진 애국지사)와 어머니(이석금 여사)께 활짝 펴진 허리를 보여드리고 귀국길에 오를 예정입니다. 그동안 훌륭한 의술을 베풀어 주신 원장 선생님과 친절한 간호사님들, 그리고 병원 직원분들께도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는 척추협착증 수술을 받고 귀국을 앞둔 독립운동가 후손 배국희(82) 선생이 병원을 찾은 기자에게 건넨 인사말이다. 배국희 선생은 평생을 미주지역에서 독립운동가 선양과 광복회, 대한인국민회 등 독립단체를 이끌어 왔으며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3월 5일, KBS가 주관하는 <제20회 해외동포상>을 받은 바 있으며 당시 3천만 원을 고국의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배국희 선생과의 인연은 7년 전인 2018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기자는 미주지역에서 활동한 여성독립운동가 취재를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갔었는데 마침 배국희 선생은 LA 최대 독립운동 단체였던 대한인국민회 이사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었다. 당시도 고령인 75살의 나이로 광복회 및 독립운동 관련 일이라면 미국 전역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왕성한 활동을 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지병이었던 척주협착증 수술을 위해 고국방문을 한 것이다. 미국의 의술이 뛰어난 것 같아도 척추협착증 수술(시술) 분야는 한국이 우수하다며 미국에서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영등포 소재 새길병원(원장 이대영)에 입원하기 위해 고국에 도착한 것은 지난 11월 6일이었다.
문제는 고국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수술비 및 치료비에 대한 걱정이었다. 거기에 도움을 요청할 연고도 없는 상황이라 기자가 임시 보호자가 되어 입원 등의 절차와 수술 및 회복 재활 등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치료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심정’에서 지인들을 통해 후원금 모금을 시작했다.(오마이뉴스 이윤옥 기사, 2025.11.14., 독립유공자 선양에 평생 바친 배국희 선생, 치료비 도움 필요) 그러나 2천만 원에 이르는 치료비를 충당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라,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이대영 병원장에게 큰 용기를 내어 기자는 편지를 썼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났다.
어제(20일), 병원 기획실차장으로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내용인 즉슨 “이대영 원장님께서 독립운동가 후손인 배국희 선생의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겠다라는 말씀이 있었다"고 전해 온 것이다. 이 소식을 배국희 선생에게 전화로 알리면서 두 사람은 서로 전화통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대영 원장의 선대(先代)께서 한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를 말해준 것은 원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원을 통해서였다.
이대영 원장의 5대조인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 1842-1910,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선생은 일제가 저지른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뒤 안동 예안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운동을 펼쳤으며 1905년 을사조약 늑결 시에는 을사오적 처형과 조약 파기를 임금에게 상소하며 국권 회복을 촉구했다. 이어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가 망하자 24일 동안 곡기를 끊고 단식하며 일제에 준엄한 항거로 순국의 길은 분이다.(향선 선생은 절대 순국이란 말과 선생이란 말을 쓰지 말라고 하셨다)
배국희 선생과 퇴원 전 인사차 들른 이대영 원장실에서 기자는 향산 이만도 선생의 5세손인 이대영 원장에게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추적하여 글을 쓰고 있는 기자로서 향산 이만도 선생의 일가(一家)의 우국충정을 익히 알아 온 입장에서 ‘배국희 선생의 치료비 전액 지원 결정’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義)를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쳤던 향산 이만도 할아버지의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5세손 원장의 선행은 그래서 더욱 큰 울림을 주었다.
이대영 원장은 “협착증의 수술적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압술로 알려졌다. 보통 '허리 수술'하면 척추에 나사못을 박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골 유합이 꼭 필요한 경우는 많지 않다. 감압술은 최소 절개로 신경을 압박하는 비후된 인대와 골극을 제거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최근 양방향 척추 내시경이 척추 수술의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양방향 척추 내시경술도 신경 병변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어느 정도 뼈를 절제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작은 위험 부담마저 없애기 위해 2023년 말, 뼈를 삭제하지 않고 내시경 수술을 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곧 '골 절제 없는 감압술'의 개발로 이는 양방향 척추내시경술에서 골 절제를 생략한 새로운 치료법이다라는 것이다.
또 이대영 원장은 “70~80대에도 척추 수술을 받는 환자가 많은데, 몸에 부담이 많이 가는 치료는 아무래도 회복이 힘들다. 고령의 환자들에게 적합한 최소 침습 수술, 작은 뼈도 제거하지 않는 '골 절제 없는 감압술'”을 지난해는 1,590건 진행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한 연구 논문을 SCI급 저널에 게재하는 등 연구와 치료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라고 했다.
어려운 의학용어는 잘 모르겠지만 이대영 원장께서 “척추 환자의 고통을 최대한 줄이고 <골 절제 없는 감압술>을 개발”하여 고통받는 환자들의 삶을 일상으로 회복시키는 일에 선두주자로 뛰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무엇보다 그 큰 수술의 혜택을 받은 분이 독립운동가 후손 배국희 선생이라는 사실이 기뻤다. 기자로서의 보람은 바로 이러한 두 분의 만남이 가능하게 된 ‘사연을 풀어낸’ 점이라고 본다.
먼 이국땅 미주지역에서 반평생을 ‘광복회 및 독립운동 관련 단체와 유족들을 위해 헌신해 온 독립운동가 후손 배국희 선생께서 고국의 눈부신 K-의료의 혜택을 입고 무사히 치료를 마쳤으나 고국의 건강보험 혜택이 없어 치료비로 걱정하던 차에 한국 굴지의 독립운동가 향산 이만도 선생 5세손인 이대영 원장의 병원비 전액 지원 선행으로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귀국 길에 놓이게 되어 임시 보호자인 기자도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내가 나라에 두터운 은혜를 받았는데도 을미년 변란에 죽지 못하고, 다시 을사년 5조약 체결에도 죽지 못하고 산에 들어가 구차하게 연명한 것에는 그래도 이유가 있었다. 지금 이미 아무것도 기대할 만한 것이 없어졌는데, 죽지 않고 무엇을 바라겠느냐? 변란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 지체하고 목숨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은 자진할 방도를 찾지 못한 때문이다. 지금 뜻이 정해졌으니, 명동에 가서 생을 다할 참이다. 다시는 여기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 이대영 원장의 5대조 향산 이만도 선생이 1910년 9월 17일(음 8.14) 곡기를 끊기 시작하면서 남긴 말 -
배국희 선생 기사를 마무리하며 특별히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은 이들이 있다. 척추수술 후 LA행 장시간(13시간)비행을 여러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비즈니스편으로 편히 모실 수 있게 되어 도움 준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말씀을 전하며 한분 한분 이름을 올리지 못함을 용서를 구한다.
특히, 한국광복군유족회(회장 장병화)와 회원들, 한국외대 민주동문회 (김종찬 회장, 정외과80)와 회원들, 발안만세운동 선구자 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겸), 이호헌, 양인선 유족들, 국립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이태룡 소장)와 연구원들, 인터넷우리신문(김영조 발행인) 및 운영위 배재흠 교수, KBS사내동아리 사회봉사단 이정호 명예단장 외에 여러분들의 십시일반 도움으로 배국희 선생께서 안전하게 귀국길에 오를 수 있게 해주신 점, 배국희 선생을 대신하여 고개 숙여 깊이 감사 말씀 올리며 따뜻하고 아름다운 동포애 넘치는 이 이야기를 기사로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