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승만은 외교를 구실로 하여 직무지를 마음대로 떠나 있은 지 5년에, 바다 멀리 한쪽에 혼자 떨어져 있으면서, 난국수습과 대업의 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허황된 사실을 마음대로 지어내어 퍼뜨려 정부의 위신을 손상하고 민심을 분산시킴은 물론이거니와 정부의 행정을 저해하고 국고 수입을 방해하였고(가운데 줄임) 이와 같이 국정을 방해하고 국헌을 부인하는 자를 하루라도 국가 원수의 직에 두는 것은 대업의 진행을 기하기 불능하고 국법의 신성을 보존키 어려울뿐더러 순국 제현을 바라보지 못할 바이오 살아있는 충용의 소망이 아니라. 고로 주문과 같이 심판함.”
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공보> 제42호에 나온 이승만 대통령을 탄핵 사유 가운데 일부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7년(1925년) 3월 18일에 탄핵되고, 23일 면직됐습니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헌법 전문에 있는 것처럼 지금 정부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대한민국 역사의 첫 탄핵 대통령은 이승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9월 상해에서 임시정부와 대한국민의회가 통합해 출범했는데 이때 임시대통령으로 뽑힌 이승만은 1919년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한국은 당장 독립될 가망이 없고 또 독립된다고 하더라도 자치능력이 없으니 미국이 주관하여 국제연맹으로 하여금 한국을 당분간 위임 통치하게 해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한 게 큰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그때 독립운동가며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를 쓴 역사학자인 신채호는 이승만에 대해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것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한 역적이다."라고 비판할 정도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