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군을 물리친 동산동 밥할머니 석상

2013.05.28 10:22:11

[고향문화통신 8]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고양시 끝자락인 덕양구 동산동에서 구파발쪽으로 가다보면 고가도로 밑에 목이 잘린 커다라 돌부처가 세워져 있는데 이름하여 고양(高陽) 밥 할머니 석상이다. 이를 두고 고양의 잔다르크 동산동 밥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 동산동 창릉모퉁이공원에 있는 밥 할머니 석상. 글쓴이가 찾아갔을 때는 작년 제향 때의 펼침막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밥 할머니 석상에 관한 유래는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의 산천을 피로 물들인 지 8개월이 지난 선조 26년 정월의 일이다. 무방비 상태의 조정은 긴급히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명나라는 이여송을 대장으로 삼아 명군 4만 명을 파견했다. 명과 합세한 조선군은 왜군에게 함락되었던 평양성을 탈환하고 그 여세를 몰아 한양을 향해 남진하였다

그러나 그해 정월 26일 한양을 눈앞에 둔 고양시 벽제관의 남쪽 숫돌 고개 전투에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은 왜군에게 참패하여 북한산으로 뿔뿔이 패주, 이여송과 장수들의 일부는 북한산 노적봉 밑에 집결하게 되었다 

왜군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이여송과 조선의 도원수 김명원은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진로를 구상 중에 있었다. 그때 한 할머니가 찾아와 김명원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김명원은 즉시 장막으로 들어가서 이여송에게 할머니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는 휘하의 병졸들에게 명령했다. "이 근처 마을에 내려가서 짚단이란 짚단은 있는 대로 다 모아 오도록 하라."

그 시각 노적봉 기슭을 휘돌아 흐르는 냇가에는 수많은 왜병들이 모여들어 술렁대고 있었다흘러내리는 냇물이 어인 까닭인지 뿌연 상태라 이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한 노파가 함지박에 흰쌀을 수북이 담아 이고 산에서 내려왔다. 조금 전에 아군 진영으로 김명원을 찾아갔던 그 노파였다.  

보초를 서던 왜병이 노파를 불러 세워 물으니 산위에 수만 명의 군사가 집결해 있는데 군량미가 남아서 처치하기 어려운 형편이라 백성들에게 나워주고 있다면서 자신도 쌀을 얻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냇물이 희뿌연 것은 병사용 쌀을 씻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파는 손을 들어 노적봉을 가리켰다. “저기 저 산봉우리처럼 쌓여진 짚단이 뭔지 아시오? 그게 바로 곡식을 쌓아놓은 노적가리라는 거요.” 그러면서 노파는 머리에 이고 있던 흰쌀이 들어 있던 함지박을 왜병들 앞에 내밀어 보였다.  

그 일이 있던 다음날 왜병들은 멀리 도망가 버렸는데 그것은 아군의 병력과 군량이 엄청나다고 생각하여 도망친 것으로 보고 있다. 원수 김명원은 미소를 지었다. 왜병들의 눈에 노적가리처럼 보인 것들은 노적봉에 둘러쳐진 짚단들이었다. 그리고 냇물이 흐려진 것은 회를 탄 물을 흘려보냈기 때문이었다. 이 모두는 노파가 제안한 계략이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아군은 즉시 혈로를 뚫고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이때 기지를 발휘하던 할머니는 훗날 석상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아군을 전멸의 위기에서 구출한 슬기로운 할머니로 전해지고 있다 

   
▲ 고양의 잔다르크 동산동 밥할머니 안내판

밥할머니 석상은 좌대를 포함하여 총 높이 155.5 센티미터이고 현재 목 위 부분은 잘려나간 상태이다. 석상의 팔목과 어깨 등은 매우 풍만하여 전체적으로 얇은 곡선들이 몸을 휘감은 듯 보인다. 왼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 팔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펴 손바닥을 밖으로 향()해 물건을 주는 시늉을 하고 있음) 을 하고 오른손은 약함지를 받치고 있다. 입상으로 추정되는데 무릎 아래 부분이 없어져 정확한 원형은 알 수 없다. 석상 뒷면은 비교적 평평하게 다듬어져 있는데 따로 광배를 만들어 받쳤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조 후기 약사보살상의 모습으로 세워진 여성의병장 밥 할머니의 석상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로 보아 대단한 배려 속에 유지되었다. 중국의 사신들과 고위관리들이 지나는 관서대로에 세워진 밥 말머니의 위상은 매우 컸는데 일제강점기 때 목과 얼굴이 훼손되고 말았다.  

마을주민들이 잘려나간 목부분을 새로 만들어 드릴 때마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지금 모습 그대로를 유지한다고 한다. 마을주민들과 후손들이 밥할머니 보존회에서 매년 가을에 제향을 모시고 있다. 

석상 옆으로 구파발에서 삼송으로 이어지는 고가다리가 놓여있어 자칫 놓치기 쉽다. 지난 주 찾았을 때는 작년 제향 때 펼침막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올 제향 때는 글쓴이도 한번 참석해볼 참이다.
 

<안내>
*고양(高陽) 밥 할머니 석상 :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 46
*주소 :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 창릉모퉁이 공원
*가는길: 3호선 구파발 역에서 동산동 모퉁이 쪽으로 걸어서 10분 거리. 또는 구파발역에서 시내버스 7712번 또는 마을버스 330을 타고 한 정거장이면 밥할머니석상 앞에서 내린다.

  

** 이윤옥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에 둥지를 튼 지도 어언 17년째이다. 문화행위가 점점 껍데기와 이벤트성으로 흘러가는 시대일수록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역사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글쓴이는 2006년에 편찬된 고양시사7권에 집필위원으로 참여 한바 있다. 그때 속속들이 소개하고 싶은 고양문화와 역사이야기를 따로 뽑아 두었는데 이제 그 이야기보따리를 얼레빗 신문을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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