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李白 기자]
달밤
윤동주
흐르는 달의 흰 물결을 밀쳐
여윈 나무그림자를 밟으며,
북망산을 향한 발걸음은 무거웁고
고독을 반려한 마음은 슬프기도 하다.
누가 있어만 싶던 묘지엔 아무도 없고,
정적만이 군데군데 흰 물결에 폭 젖었다.
1937년 4월 15일
▲ 윤동주 시인 전시관 |
▲ 윤동주 시인 학찬시절 모습 오목새김 |
▲ 윤동주 시인 생가에서 양종 대종교 종무원장 |
▲ 백민역학연구회양종이사장, 임원진과함께 |
▲ 윤동주 시인 "달밤" 시비 |
▲ 윤동주 시인 생가 툇마루 |
▲ 윤동주 시인 생가 정문 |
윤동주(1917.12.30 ~ 1945.2.16) 시인하면 맨 먼저 서시가 떠오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가슴이 싸해지면서 울컥 눈물이 솟구쳐 오는 이 마음은 윤동주시인의 생가에 다녀온 뒤에도 여전히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가시가 되어있다. 또한 한민족의 영원한 숙제 인 것같다.
달밤을 읽노라니 그 당시의 상황이 그려지면서 내 가슴엔 쓴물이 울컥울컥 내린다. "고독을 반려한 마음은 슬프기도 하다." 여전히 우리는 두 동강 난 한반도에서 여전히 눈물을 삼키고 산다. 그런데 이젠 눈물이 아주 말라 버려 잊혀져가는 우리의 애국지사들의 마음이다. 정신이다. 혼이다. 우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은 바로 우리의 얼 "겨레 얼" 민족의 자긍심이었다.
누구에게 혼을 빼앗겼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지금이 안타깝게 여겨지면서 오늘 9월 5일 다녀온 윤동주시인의 생가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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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白 기자
경기대에서 동양철학 석사를 이수하고 역학자로서 백민역학연구회와 대종교에서 찬강으로 활동하며, 역학과 사진으로서 과거와 미래를 비교 조명하며 희망을 열어가는 역학인이자 사진가이다. 한국사진방송에서 자연과 철학을 중심으로 에세이를 기사로 올리며 포토클럽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