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편지177] '대한독립단'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께 '강대덕'

2013.12.03 08:21:00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대한독립 쟁취를 위한 항일조직 '대한독립단'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 !!

  오늘 1117일은 제74순국선열(殉國先烈)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일요일이라 이틀 전인 15일 금요일에 기념식을 거행하는 자리에 참석하였습니다. 순국선열의 날은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선열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대한민국은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을 위시하여 국가유공자이신 순국선열님들의 희생으로 지킨 자랑스런 국가입니다
 순국선열의 날은 일본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맞서 국권 회복을 위해 항거하고 헌신한 독립운동 유공자들 가운데 일신과 목숨을 잃은 순국선열(殉國先烈)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이들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으로 매년 1117일이며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199759일에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1919년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391121일에 임시의정원 제31회 임시총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회의에서 지청천(池靑天), 차이석(車利錫)을 비롯한 6인이 1117일을 순국선열공동기념일(殉國先烈共同紀念日)’로 제안하였고 원안대로 의결되어 기념일이 시작되었습니다. 1117일을 기념일로 선택한 것은 19051117일에 체결된 을사조약(乙巳條約)의 치욕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대한독립 쟁취를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 하셨던 관동의병창의대장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

 

대한독립단 도총재 박장호 선생 영정

  저는 강원도 홍천출신으로 홍천과 인연이 깊은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 선생님을 대학학부 때부터 오로지 한 분야의 학문만 40년 공부하고 있는 역사학도입니다. 현재는 대학에서 한국사와 민족사상사 및 민족운동사를 연구 강의 하다가 20024월부터 대한민국 독립기념관 학예연구관으로서 학예실장 등 직임을 봉직하면서 정년을 앞두고 고향 홍천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과 홍천향교 장의 직분을 맡아 유학(유교) 및 불교 관련 역사, 강원도지역사 등을 연구하면서 관련단체에서 후학과 지역의 역사문화, 문화재 등 관련인사들을 위하여 강의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화남 도총재님께서는 일찍 화서선생님을 모시고 화서학파(華・重・省・毅)에서 학문을 정진하시고 개항반대 상소운동과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셨으며 한일병합 이후에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셨지요. 특히 화서선생과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선생의 개항반대와 통상반대 상소를 본 받아 1876년 강화도조약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개화정책에 반대하여 화서학파의 핵심이었던 위정척사운동의 중암(重菴)과 성재(省齋) 선생을 모시고 지도받으면서 유인석(柳麟錫)홍재구(洪在龜)유기일(柳基一)홍재학(洪在鶴) 등의 유생들과 함께 개화정책에 반대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511월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됨에 따라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화남 선생님께서는 화서선생의 학통과 위정척사 사상을 몸으로 실천하시어 제가 살고 있는 강원도 홍천(洪川)에서 관동의병(關東義兵)을 창의하시어 관동의병대장으로 사생취의(捨生取義)의 정신으로 항일투쟁을 끊임없이 실천하여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877년 화남 박장호 친필 (강원대 박물관 소장)

  1910822일 국권이 상실되었을 때 선생님께서 지휘하셨던 홍천의 관동의병부대를 이끌고 만주로 옮겨가시어 항일의병투쟁전을 계속하셨습니다. 19193·1운동 이후에는 조맹선(趙孟善)백삼규(白三圭) 등 국내에서 의병활동을 하다가 일본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온 내일의 국권회복을 기약한 의병장들을 모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결성하고 도총재(都總裁)로 추대되어 독립선언문을 발표하였습니다. 또한 젊은 청년들을 모아 독립군(獨立軍)을 편성하여 항일운동을 지휘하였으며 국내외 모두 100여개소의 지단 지부를 설치하고 만주지역에는 거류동포 100호 이상을 구호하여 구관을 두고 자치행정을 실시하도록 하였습니다.

 

  1920년에는 평안북도 일원의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일본경찰대와 교전을 벌여 많은 전과를 남겼습니다. 그해 12월에는 한족회 청년단 연합회와 통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 사령부에 통합되고 19222월 유하현에서 한족회 광현단 등 독립운동단체들과 화합, 대한통군부를 조직하고 발전적인 해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1922년 일제의 앞잡이인 밀정(密偵) 김헌(金憲)에게 암살당하여 순국하셨습니다.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화남 도총재님의 대한독립 쟁취를 위한 공적을 인정하여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에 추서하셨습니다.

 

존경하는 관동의병창의대장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

  화남 도총재님께서 제 고향 홍천군 서석면에 거주했다는 사실은 1902224일에 별세한 부인 진주강씨의 묘가 하군두리(下軍杜里)에 있고, 1903년 작성된 '강수계수성록(講修契修成錄)'에 거주지가 홍천 생곡(洪川 笙谷)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905년 을사조약 후에 서석면 풍암리에서 중기의병을 일으켰다는 기록에서 입증이 됩니다. 우리지역에도 화서학파 연원 후학들께서 위정척사운동과 의병운동, 그리고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역사적 고증으로 화서학파의 민족운동사와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저로서는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후학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년을 앞두고 고향 홍천문화원 문화학교에서 전직 교장선생님과 교육자 및 정년을 마치고 지역사회에 인문학적 역사문화를 관광자원화 할 수 있는 지적재능을 역사문화관광해설사 양성과정의 교육을 수료 후 일선에서 관광객을 맞이하여 안내 해설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1852년 화서 선생님께서는 금강산을 몇 차례 다년오신 후 자연에 매료되어 홍천 삼포(三浦)로 이거하여 일감재(一鑑齋)를 짓고 향촌(鄕村)에서도 도학(道學) 진흥시켜 도의(道義)를 강학하고 이상향(理想鄕)을 꿈꾸었으나 계속되는 불운(不運)으로 1860년 다시 화서 선생님의 고향 벽계(蘗溪)로 돌아가셨습니다. 화촌면 삼포의 광산김씨 김재구(金在龜)는 화서 선생의 둘째 사위로 그 후손은 강원도 홍천 춘천 등에 번성한 집안으로 세거하고 있으며, 서석면 풍암리에는 화서선생 후예가 기거했었고, 양평의 이계선(李繼善)이장우(李長于) 등 화서 문인들이 홍천으로 이주한 것이나 홍천지방의 화서문인은 화서 선생의 삼포 이주와 관계가 있습니다.

화남 박장호의 홍천세거 기록

(강수계수성록)

 

관동의병창의대장 이셨던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 !!

  화남 선생님의 선사(先師) 화서선생님께서는 개항기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주장하고 애군여부 우국여가(愛君如父 憂國如家)를 역설하여 민족사상 가장 많은 창의호국(倡義護國)의 인물을 가장 많이 배출한 근대민족주의의 선구자이셨습니다.

"중암집(重菴集)에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께서는 일찍이 화서중암성재 세분 선생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하여 우국우도(憂國憂道)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으나, 끝내 나라가 오랑캐에게 먹혔는데 다시 일으키지 못하고 우리 도()가 사교(邪敎=천주교; 필자주)에 침식되었는데도 구하여 유지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사우(士友)들과 더불어 뜻을 모아 힘을 다하여 성묘(聖廟)를 수호하고 대의(大義)를 강론(講論)하여 중동(中東=강원도; 필자주)의 인심을 모아서 이 원통함을 풀고자 하나 도와줄 분(의암 유인석; 필자주)을 기대하고 있다. 이 천지(天地)에서 이 근심을 책임 맡고 짊어질 자는 우리 세분 선생님에게서 공부한 사람을 제쳐놓고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는가"

  의암 유인석 선생께서는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이 보낸 이 편지를 두고두고 보면서 19147월에 답하기를, "형이(朴長浩; 필자주) 이 책임을 짊어진다면 내가 비록 못나고 병들었지만 죽기 전에는 힘을 다하여 도와 드리겠다"라고 하셨지요.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

  화남 도총재님께서는 의암선생과 국내에서는 물론 국외 만주에서도 두터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항일투쟁활동(抗日鬪爭活動)을 하셨습니다. 화남 선생님께서는 외아들 필보(병항)를 데리고 만주로 망명하여 무장투쟁을 계속하셨습니다. 이진용조맹선 의병장은 장백무송임강현 등지로, 유인석 의병장은 서간도 집안현으로, 조병준 의병장은 관전현환인현 등지로 이동하였습니다. 화남 도총재님께는 191931운동 이후 국내로부터 이주하여 오는 동포들의 생계를 돕기 위하여 농무계(農務契)를 조직하고 독립정신을 고취시켰습니다.

   19194월 화남 선생님께서는 조맹선백삼규조병준전덕원 등의 의병장과 유림대표, 보약사 대표, 향약계 대표, 포수단 대표 등 560명이 유하현 삼원보서구 대화사(大花斜)에 모여 전열을 가다듬고 통일된 항일군사조직을 결성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의 독립쟁취를 위한 항일군사조직 단일기구로서 '대한독립단'이었습니다. 대한독립단은 도총재부와 총단과 지단, 남만주 제1사단 등의 조직을 갖추어 군사조직으로 재편하셨습니다. 화남 도총재님께서 이끈 인물들은 대부분이 평안도 출신들인데, 의암 유인석의 문인이거나 운암 박문일의 문인으로 화서연원(華西淵源)을 이루고 있어 절의(節義)가 꿋꿋한 인물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대한독립단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

  대한독립단 국내지단을 보면 주로 평안도에 설치되었는데, 대한독립단은 무장독립운동에 필요한 무기와 군수품 등에 소요되는 경비충당을 위한 군자금(軍資金) 모금과 독립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독립군의 양성과 무장독립운동(武裝獨立運動)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리고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께서는 다시 기원독립단 총재로 추대되셨습니다. 주요 간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박장호(단장), 백삼규(부단장), 이응해(총단장대변), 김평식(총무부장), 전덕원(재무부장), 강규묵(검찰부장), 김정희(참모부장), 백진해(참모), 채원개(독립군대장), 백경수(독립군대장), 조맹선, 최향준(무기장) 등이었습니다. 화남 도총재님은 조병준을 단장으로 하는 민국독립단과도 조국광복을 위한 일에는 뜻을 같이하여 상호 협력하였다. 백발이 성성한 노구의 몸으로 머나먼 이국땅 만주벌판에서 오로지 조국광복의 그날을 고대하면서 독립운동에 동분서주하던 도총재님께서는 192242일 일제의 앞잡이 김헌(金憲)에게 피살되어 순국하였습니다. 참으로 민족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대한독립단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

  화남 선생님께서는 오로지 일관된 우국우도(憂國憂道)의 정신과 항일공적은 부인할 수 없는 명명백백한 사실로 근대 한국민족운동사에서 높이 평가되어 우뚝 솟아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6231일에 국가에서는 건국공로훈장 단장(54)을 추서하셨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의롭게 살다가 의롭게 세상을 떠나신 선열(先烈)들의 위업이 후세(後世)에 길이 길이 전하여 세인(世人)의 귀감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여 후학들을 지도하겠습니다. 일제에 항거하여 가족을 버리고 자신을 죽여서 조국을 구하고 민족을 살리려는 화남 박장호 총재의 의병정신과 독립정신은 오늘의 우리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자손만대(子孫萬代)로 조국의 자주와 독립을 수호하고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 당연한 일입니다.

  존경하는 대한독립단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

  한국 근대민족운동사의 거성이요 우리 홍천군의 자랑인 화남 박장호 도총재님의 구국일념과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정신을 기리는데 우리는 솔선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제74주년 순국선열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한 지금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밑바탕을 만들어 주신 순국선열님들의 고귀한 나라사랑 정신을 마음 속 깊이 다시금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자리 매김하고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이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의 바탕위에 이룩된 것임을 우리 모두 가슴 속 깊이 자각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74주년 순국선열의 날, 선열들의 거룩한 애국애족정신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갖기를 바라며, 우리 앞에 닥친 정국의 혼란과 경제난국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국민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에 충실하며 다함께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 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해 보았으면 합니다. 화남 도총재님!! 부디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강대덕

                                                             

  대한민국 독립기념관 학예실장 역임 후 현 학예연구관,

몽골 국립울란바토르대학교 초빙교수,

홍천향교 掌議, 홍천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장

저서 華西 李恒老時代認識(신서원, 2001)

華西 李恒老의 삶과 學問世界(양평문화원, 2005)

한일관계 2천년 보이는 역사, 보이지 않는 역사(경인문화사, 2006)

國脈 砥平義兵(을지문화사, 2007)

강원여성독립운동(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2013)

 


이한꽃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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