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달린 외할머니 생신 3

2014.01.04 20:43:24

어른과 함께 읽는 동화

[그린경제/얼레빗 = 이수옥 동화작가]  엄마는 성질을 내며 엄마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수빈이를 돌보아 주려고 수빈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수빈이네 집으로 오셨거든요. 하지만 이사를 오신 것은 아닙니다.

토요일 오후에는 외할머니 집으로 가셨다가 일요일 저녁이면 다시 오십니다. 오늘은 토요일도 아닌데 왜 할머니 집으로 가셨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외할머니는 늦은 밤이 되어서 오셨습니다. 엄마는 잘못한 수빈이를 나무라듯 외할머니에게 따지듯 물었습니다.

“아침에 시장 좀 보아다 놓으라고 했잖아요. 말도 없이 집에는 왜 가셨어요?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요? 가뜩이나 회사에서 일이 있어서 늦게 왔는데…….”

엄마는 따발총같이 외할머니에게 마구 따졌습니다. 외할머니께서도 성이난 목소리로 엄마에게 따졌습니다.

“너는 수빈이 생일만 생각하고 엄마 생일은 꿈에도 생각 안했지?”

“엄마생신은 아직 멀었잖아요?”

   
▲ 그림 김설아 (동신중 1학년)

짜랑짜랑한 엄마 목소리가 집안에 가득 퍼졌습니다.

“너 내 방에 가서 달력이나 보고 와서 큰소리를 쳐도 치거라.”

조용조용하게 따지시는 외할머니 목소리는 얼음덩어리보다 더 차갑게 들렸습니다. 외할머니 방에는 숫자가 왕방울만한 커다란 숫자가 적혀 있는 달력이 걸려있거든요. 외할머니 방으로 급히 들어갔다 나온 엄마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같이 새빨개졌습니다.

“엄마, 죄송해서 어떡해요. 정말 죄송해요. 음력날짜를 신경 쓰지 않아서 깜빡 잊었어요. 작년에는 수빈이 생일이 지나가고 며칠 더 있다가 엄마생신이었잖아요. 올해도 그런 줄로 알았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미안해서 어떻게 할 줄 몰랐습니다. 엄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습니다. 수빈이는 엄마에게 갑자기 슬픈 일이 생겼나보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수빈이 생일은 며칠 전부터 호들갑을 떨면서 챙기더라. 엄마가 내 집도 없이 딸네 집에 와서 살면 서러워서 살겠니?”

“엄마,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정말 깜빡 잊었어요.”

“수빈이 생일 챙기니까 당연히 어미생일도 챙기는 줄 알았지.”

“엄마, 수빈이 생일은 양력이라서…… 지금이라도 나가세요. 맛있는 거 사 드릴 게요. 뭐 갖고 싶은 거라도 있으시면…….”

“일 없다. 일 없어. 집에서 아버지하고 저녁밥 맛있게 먹고 왔다. 아버지한테는 네가 생일선물 사라고 큰돈을 주었다고 했어. 수빈아빠 얼굴을 생각해서…….”

아무래도 외할머니는 단단히 화가 나신 모양입니다. 아빠도 외할머니에게 많이 미안하셨나 봅니다. 괜히 엄마에게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당신은 정신을 어디다가 빼놓고 사는 거야?”

아빠는 무서운 눈으로 엄마를 째려봤습니다. 엄마도 짜증을 내며 아빠에게 싸울 듯이 대들었습니다.

“당신은 장모님 생신을 챙기면 머리에 뿔이라도 나요? 내가 시어머님 생신을 한 번이라도 잊은 적 있어요? 우리 엄마 생신은 당연히 당신이 챙겨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오빠가 멀리 외국에 사시니까 딸인 내가 엄마생신을 챙겨드려야 하는데…….”

엄마는 왈칵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수빈이는 엄마와 아빠가 크게 막 싸울 것 같아서 무서웠습니다. 즐거운 수빈이 생일날, 외할머니 때문에 아빠와 엄마가 큰소리를 치니까 외할머니가 미웠습니다. 외할머니는 왜 수빈이 생일날을 외할머니 생신이라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날은 내 강아지, 내 강아지, 라고 예뻐해 주시는 외할머니지가 오늘은 미웠습니다. 수빈이 생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할머니가 정말 미웠습니다.

“오늘이 내 생일이지. 왜 할머니 생신이에요?”

   
▲ 그림 김설아 (동신중 1학년)

참다못한 수빈이는 화를 내며 할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수빈아, 할머니에게 그러면 못써. 할머니 생신은 음력이라서 그래.”

“엄마, 음력이 뭐에요?”

“수빈아, 음력이 뭐냐 하면 말이야, 할머니 방에 숫자가 큰 달력이 있지? 큰 숫자 밑에 작은 숫자가 있지? 그 걸 음력이라고 하는 거야. 할머니 생신은 음력이야. 할머니처럼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생신을 음력으로 따지거든.”

“엄마, 그럼 음력 생일은 왔다 갔다 해요?”

“아니야, 왔다 갔다 하지 않아. 해마다 같은 날이야.”

“작년에는 할머니 생신이 내 생일날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올해는 왜 내 생일날을 할머니 생신이라고 해요? 할머니 생신에 날개가 달렸나 봐요? 그러니까 왔다 갔다 하지요.”

외할머니 생신에 날개가 달렸나 보다고, 조잘대는 수빈이 말에 화가 많이 나셨던 외할머니께서 쿡쿡 소리 내어 웃으셨습니다. 아빠도 손으로 입을 가리고 조심스럽게 웃다가 끝내, 푸~하하하 웃음을 폭발했습니다.

“그러게 수빈이 말이 맞네. 음력날짜는 양력날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니까 할머니 생일에 날개 달린 거 맞다."

엄마도 수빈이를 쳐다보며 배를 잡고 깔깔깔 웃었습니다.

“우리 이쁜 할미강아지 수빈이 때문에 할미가 웃는다. 그래, 할미 생일은 날개가 달려서 왔다 갔다 한다. 어쩔래? 요요, 이쁜 할미 강아지야.”

외할머니도 수빈이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호호호 소리 내어 웃으셨습니다. 수빈이도 덩달아서 깔깔깔 웃었습니다. 외할머니도 아빠도 엄마도 모두 화가 풀렸나 봅니다. 수빈이는 오늘 벌써 두 번째 울다가 웃었습니다. 울다가 웃어서 정말 똥꼬에 털이 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엄마, 엄마 생신은 수빈이 말대로 날개가 달린 거 맞아요. 음력생일은 양력 날짜로 계산하면 왔다 갔다 혼동하니까 엄마 생신을 양력으로 바꾸시는 게 어때요?”

“싫다, 어떻게 몇 십 년 동안 음력으로 지낸 생일을 하루아침에 양력으로 바꾸니? 그럼 네 아버지 생신은 또 어떡하고?”

“엄마,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인데요. 엄마 아버지 생신을 양력으로 바꾸시는 것이 좋겠어요. 요즘 사람들 하도 정신없이 바쁘게 사니까 음력은 신경 못 쓰고 살아요. 내년에도 생신 기억하지 못할까봐 미리 걱정이 돼요. 그러면 엄마 또 삐지고 골내실 거잖아요. 아버지 생신은 엄마가 잘 챙기시니까 바꾸지 않아도 상관없지만요.”

외할머니도 엄마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럼, 오늘이 음력 내생일이고, 양력 수빈이 생일과 같은 날이니까 내 생일을 양력으로 바꿔 볼까?”

장난처럼 말씀하시는 외할머니 말씀에 엄마는 환하게 활짝 웃었습니다. 엄마도 울다가 웃었으니 똥꼬에 털이 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수빈이는 웃음이 막 나왔습니다.

“그래요, 엄마. 생각 잘 하셨어요. 오늘부터 엄마하고 수빈이하고 같은 날 생일이에요.”

“우리 예쁜 수빈이 때문에 이 할미가 졌다. 오늘부터 할미 생일도 양력으로 해야겠다.”

“앞으로는 엄마생신은 절대 잊어먹지 않겠어요. 우리 수빈이 생일날하고 같은 날이니까요.”

“할미 생일을 손녀생일에 맞춰야 하다니, 상전이 따로 없네, 우리 수빈이가 상전이구나.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니 이 할미가 어지러워서 어디 살수 가 있나?”

외할머니는 음력생일이 없어지는 게 서운한가 봅니다. 상전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수빈이 얼굴을 살짝 꼬집습니다.

아빠도 할머니 눈치를 힐금힐금 보면서 좋은 생각이라고 짝짝짝 박수를 칩니다. 엄마는 외할머니 마음이 변하실까봐 그러는지 재빨리 아빠가 사 들고 오신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켰습니다. 엄마는 아주 큰소리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하고 우리 딸, 생일 축하합니다.'

“와, 그럼 할머니도 여덟 살이야. 수빈이랑 동갑이네. 헤헤헤.”

수빈이가 버릇없이 외할머니를 놀렸습니다. 외할머니는 화가 완전히 풀리셨나 봅니다. 수빈이가 버릇없이 굴어도 활짝 웃으셨습니다.

“수빈이 덕에 할미가 점점 젊어지겠구나. 하하하.”

큰소리로 밝게 웃으시는 외할머니 모습이 십년은 젊게 보였습니다. <끝>

<날개 달린 외할머니 생신>은  《고향으로 돌아 온 까치네》속에 들어 있는 동화입니다. 이 책은 이수옥 작가가 글을 쓰고 중학교 1학년인 김설아 손녀가 그림을 그린 동화로  할머니와 손녀의 풋풋한 사랑이 새겨진  따뜻한 이야기 책입니다.  이 책은 인터파크 등에서 인기리에 판매 중에 있습니다.(편집자 설명)

이수옥 기자 suock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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