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편지 182]글라스키노의 안중근을 아십니까? -곽수종-

2014.02.11 05:03:04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2년여 전 11월 초, 초겨울 찬바람이 서울 하늘에서 조금씩 느껴질 때,  친구의 제안으로 블라디보스톡을 가게됐다. 사실 그 땅, 역사적으로 간도라 불리었다는 것 외에, 소련의 극동 함대 사령부가 있었던 부동항이라는 것. 고작 그 정도 밖에는 아는게 없었다.

  한국 근대화의 이정표가 말없이 있는 , 과연 땅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지도를 펴고 북서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만나는 곳이 길림, 하얼빈, 글라스키노, 자루비노, 블라디보스톡 같은 동간도 땅이 보인다. 부여 ? 고구려 ? 고려 좋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해서, 그래도 우린 이런 크고 넓은 땅을 지녔던 몰락한 사대부라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여긴 우리 근대사에 파란만장했던 일본의 근대사를 쏘고,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주요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요즈음은 백두산 관광이 활기를 띠면서, 훈춘, 글라스키노, 자루비노, 블라디보스톡을 잇는 관광 코스도 비교적 알려져 있는 편이다.

  11 블라디보스톡 공항의 공기를 맡아 경험이 있는가? 이것은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과거 결코 없었던 사회주의 국가의 맹주, 소련의 동북아 지역 영토에 발을 디딘다는 것은 이념적 장벽을 이렇게 쉽게 넘을 있었음이다. 아마 동춘 페리를 타고 배를 이용해 1 2일로 간도 부동항 자루비노 항에 내릴 감회가 더할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보라! 겨울 동토에 내려가는 구한말 한국인들의 아픔과 회한을!

  화제를 잠시 경제로 돌려 곳에 대거 한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즈음의 상황을 살펴보자. 20세기 일본경제의 모습과 한반도 점령의 야욕 사이엔 어느 정도 상관 관계가 있어야한다. 예를 들면, 서구 열강들과 같이 신천지를 찾아 나선다던지, 새로운 향료와 금을 찾아 항해를 시작한다던지….

   
▲ 안중근과 한시

  하지만 일본은 문명의 시작 이후 줄기차게 한반도를 테러했고, 치고 빠지면서 한반도 남쪽 끝자락에서 가장 골치아픈 이웃이었음이 분명하지 않을까? 이들이 1868 메이지 유신을 시작하면서 4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무엇을 추구하고 이루어 냈을까? 군국화 이외의 문명사적 발전은 결코 그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무릇 창조라는 것은, 특히 문화적 창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적어도 한국의 문명과 문화는 MP3 같은 창조적 개발품을 만들어 내기도 했었다는 자부심은 가질 있어야한다. 비록 추가적인 기술개발이 없었고, 대기업의 벤처기업 죽이기로 인해 이상 진전은 보지 못했지만.  이런 대기업의 비민주적 행위는 어쩌면 일제 침략기에 우리가 배웠거나, 답습했던 구악적 행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20세기 일본과 한국경제는 어떤 관계였을까? 무엇을 주고 받았고, 일본은 한국을 침략했을까? 1908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수출입 품목을 보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수입 품목은 44.4% 쌀이고, 다음이 31.1% 콩이었다. 이에 비해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가장 많은 수출상품은 면포였고, 다음이 면사제품이었다. 당시 초기 자본주의 국가로서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일본이 과연 국내경제문제와 해외경제문제 모두를 총괄할 있었을까? 아울러 초기 민족자본이 부족했을 일본이 어떻게 자본 형성이 급속하게 이루어질 있었을까?   이를 설명하는 비교적 간단한 답을 찾아보면 이렇다.

  대한제국에서 토지조사와 측량을 핑계로 산림, 광산, 어장과 같은 자본을 빼앗거나 수탈하는 방식의 자본 축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담보로 잡은 토지를 빼앗는 고리대금업이 이들의 가장 손쉬운 대한제국 상권제압의 수단으로 쓰였을 것이고, 이러한 구태와 구악을 지금도 우리 주변 건설현장이나 대부업 등에서 쉽게 찾아 있다.  

자루비노 항에 내렸을 대한제국민들의 모습을 떠올린 것은 일제 강점 1 6개월 전인 1909 2 일본 흥업은행으로부터 1000만엔을 토지조사 비용으로 승인받고, 이듬해 1월에 '토지조사사업계획 수립한 , 토지강탈이 자행되면서 자루비노로 이주하던 사람들을 생각해보자는 의미였다. 이는 우리의 가슴 아픈 과거를 되새겨 보자는 뜻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내용을 말하고자 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어느 민족이 추운 동토의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정착할 있다고 생각할까?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돌덩이 땅을 개간해서 나라를 되찾고 대한독립을 꿈꾸게한 원동력은 어디에서 찾아 있을까? 한민족 이외에 어느 민족이 땅위에 농사를 짓고 독립운동의 시작과 끝을 챙길 있었을까?

  필자가 방문한 , 자루비노 항에서 30-40 남짓 거리의글라스키노 가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없다 곳엔 우리나라 중견기업이 조성한안중근 의사 의거 있다. 12명의 친구들과 함께 대한독립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을 약속한 의지와 뜻이 하나의 바위글로 새겨진 형태로 있다.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것…독립을 위해 누군가는 싸우고 희생해야 한다는 그리고 12명의 친구들추운 겨울 초가집 굴뚝 위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를 넓고 황량한 땅을 가로 질러 각자가 달려 길에서 만나, 어느 오두막 한켠에서 나누었을 결연한 뜻과 눈빛을 생각하면, 과연 우린 무엇을 느껴야 할 것인가?

   
▲ 마주 앉은 사람들은 프랑스 신부와 두 동생

   이덕일의 말을 빌려보자 "안중근은 자서전에서 이토를 사살한 15가지 이유를 기술했는데, ‘한국민  황후를 시해한 ’, ‘한국 황제를 폐위시킨 ’, ‘5조약(을사늑약) 7조약(정미늑약) 체결한 ’,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 ‘군대를 해산시킨 ’, ‘교육을 방해한 ’, ‘동양 평화를 깨뜨린 등이다.…중략무수한 고초 끝에 러시아령으로 돌아온 안중근은 1909 3 5 연추의 하리 마을에서 김기룡, 황병길, 백규삼 11명의 동지들과 왼손 무명지마디를 자르는동의단지회(同義 斷指會)’ 결성했다. 동지들은 붉은 선혈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란 글자를 썼는데, …중략이토 저격은 동양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제주공항을 가보면, 중국과 일본 등에서 많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차 이곳을 방문하듯, 우리도 이곳 간도 땅을 새로운 역사 학습지로 개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것을 단순히 관광과 역사 학습지로 본다는 것도 시기적으로 제한적일 있지만, 가능하다면, 이곳은 21세기 우리의 경제, 사회, 문명사적 영토로서의 확장선 상에 놓여 있음을 부인할 없을 것이다. 여기엔 고려인이 있고, 많은 몽고계의 혈통, 여진, 거란의 혈통이 녹아 있어, 다양한 문화와 인종적 고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우리는 이곳을 새로운 독립을 위한 터전으로 삼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나라를 빼앗긴 이를 되찾겠다고 나서는 것이 독립이라면, 이미 존재하는 미래의 새로운 영토를 새롭게 정의하고 여기서 우리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시작해 있다고 판단하는 것도 새로운 형태의 창조적 독립운동은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동북 3(서간도) 하바로브스크까지 올라가는 간도 땅을 모두 우리 미래의  경제적, 문명사적 영토로 확장시킬 있는, 새로운 형태의 독립운동이 하루 빨리 전략적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첫째, 이곳 문화와 문명에 대한 이해와 고찰이 있어야할 것이고 인문학적 지식의 축적을 준비해야한다. 둘째, 국경적, 지정학적 개념의 국가 정의를 확장시킴으로써 여기에 인구 이동, 인종적 결합과 다양성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진정한 통일 한반도 지형의 확장성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이를 국가의 핵심이익(National core interest)으로 지정한 , 정권이 바뀌어도 이런 이해관계를 무너뜨리거나, 정책의 근본을 왜곡, 변경히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것이다.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소리는 이제 이상독립자체의 함성으로만 외쳐지지 않는다. 경제의 싸움이고, 외교의 다툼이며, 안보와 영토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실질적 다툼으로 전환되고 있다.‘독립 떨어져 나가 홀로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뚜렷한‘주체로서 새로운 영토와 문화자본을 가꾸어 가는 실질적 영토의 확장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  안중근 의사가 우리 모두에게 21세기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도 자루비노 항의 바다 냄새, 블라디보스톡의 현대 호텔과 부동항 축소된 극동 소련함대의 잠수함이 생각난다. 러일전쟁에서 강대하던 발틱함대가 일본에게 참패한 이데올로기의 격변기를 지나, 이제 중국의 나진·선봉항 50년 조차에 긴장하고 있는 러시아를 보면서, 과연 지금 글라스키노의 안중근은 어떤 생각을 친구들과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안중근 의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는 이제부터 우리의 심리적 영토를 넓혀가는 새로운 독립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곽수종

                                                             
                          경제학박사

이한꽃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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