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의 꿈 3

2014.02.20 09:53:03

어른과 함께 읽는 동화

[그린경제/얼레빗 = 이수옥 동화작가]  은비늘 말처럼 하늘이는 어떻게 생긴 아이일까? 남자아이일까? 여자아이일까? 멋지게 생겼을까? 예쁘게 생겼을까? 나처럼 밉게 생겼을까? 너무너무 궁금했어요. 그런 샐쭉이 마음을 남해아줌마는 읽었나 봅니다.

“하늘이 엄마. 오늘 멸치 보낼게요."

하늘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아줌마는 곧장 샐쭉이를 택배로 보냈습니다. 멸순이도 서울, 부산, 일산, 제천, 인천 등 전국적으로 제각기 골고루 팔려나갔습니다. 남해아줌마 집에 혼자 남은 은비늘이야 편지쓰기대회 상품으로 팔렸으니, 시상식장에서 마음껏 뽐내는 꿈을 꿀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이네 집은 멀기만 합니다. 깜깜한 상자 안에 갇혀서 몇 시간을 달렸는지 정신이 몽롱했습니다. 비늘이 모두 벗겨져 속살이 드러난 샐쭉이 몸은 더 노랗게 보였습니다.

“샐쭉군, 먼 길 오느라고 수고했어.”

하늘이 엄마는 반갑게 맞아 주지나 말지, 못생겼다고 하며 세 마리나 집어 먹습니다.

“어라, 보기보다 훨씬 맛있네, 어서 빨리 멸치볶음을 만들어야지.”

하늘이 엄마는 혼잣말로 흥얼거립니다. 하지만 샐쭉이는 은근히 짜증이 났습니다. 잘 생긴 은비늘에게 눈길 한번 안주고, 값이 싼 샐쭉이를 선택했으면서 못 생겼다고 흉을 보다니, 이상한 하늘이 엄마입니다. 남해아줌마만큼 이상한 하늘이 엄마입니다.

친하게 지내던 멸순이들은 어떤 집으로 팔려갔을까? 나처럼 못생겼다는 소리는 듣지 않겠지, 멸순이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꾹 참았습니다. 괜히 울었다가 눈물로 얼룩덜룩해지면 더 볼품이 없어질지 모르니까요.

 

 
   
▲ 그림 김설아(동신중 1학년)

그러면 하늘이 엄마가 멸치반찬을 만들 때마다 못생겼다는 말을 또 할지 모르니까요. 샐쭉이가 이토록 슬픈 생각에 빠진 것도 모르고, 하늘이 엄마는 분주하게 멸치볶음 반찬을 만듭니다.

‘물 한 컵, 진간장 한 숟가락, 들기름 한 숟가락, 매실 엑기스 한 숟가락, 물엿도 약간 넣어야지. 약한 불에 국물이 보글보글 끓을 때까지 나무숟가락으로 살살 저은 다음, 멸치를 넣고 달달 볶다가 국물이 자작자작해지면 불을 끄고 깨소금을 살살 뿌리면, 요리 끝.

하늘이 엄마는 멸치볶음을 만들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어디 맛 좀 볼까. 와, 씹을수록 고소하고 맛있네. 비늘이 벗겨진 샐쭉이면 어때. 멸치 맛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잖아. 은비늘 절반 가격에 샀으니 나는 일등 살림꾼이란 말이야'

집에는 하늘이 엄마뿐인데 누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듯 신이 나서 혼잣말로 계속 중얼댑니다.

‘샐쭉이가 어떻게 변신했는지 자랑해야지.’

하늘이 엄마는 하늘빛이 감도는 예쁜 접시위에 파란 깻잎을 꽃잎처럼 뺑 돌려 깔았습니다. 그리고 볶은 샐쭉이를 가운데에 얌전하게 담았습니다. 누가 봐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샐쭉이볶음입니다.

하늘이 엄마도 동화쓰기 공부를 합니다. 남해아줌마가 동화쓰기를 공부하는 인터넷 동화쓰기 카페에 샐쭉이볶음 사진을 올렸습니다.

물엿이랑 꿀을 넣고 볶은 샐쭉이 몸이 반짝반짝 윤이 났습니다. 깨소금을 뿌려서 치장을 마친 샐쭉이 모습은 볼수록 먹고 싶게 보였습니다.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에 샐쭉이는 입이 활짝 핀 꽃잎처럼 벌어졌습니다. 은비늘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마치, 금비늘로 탄생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늘이 엄마 표 샐쭉이 멸치볶음, 맛도 최고 영양도 최고’

샐쭉이는 지금껏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습니다. 하늘이 엄마의 광고성 칭찬이지만 고마워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샐쭉이는 하늘이네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겠다고 꼭꼭 다짐했습니다. 하늘이 엄마는 요리솜씨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마음씨도 얼마나 고운지 모릅니다. 하늘이 엄마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남해바다 파도소리가 쏴쏴 들리는 듯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늘아, 밥 먹자. 엄마가 맛있는 멸치볶음 만들었어.”

“엄마, 나 멸치볶음 싫어요.”

“하늘아, 멸치가 들을라? 누가 너를 싫다고 하면 좋겠어?”

“멸치가 어떻게 들어요?”

“멸치도 귀가 있는데 못 알아듣겠어?”

“그래도 먹기 싫어요.”

“하늘아,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해. 너 멸치가 얼마나 몸에 좋은지 알아?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음식이 멸치야. 우유만큼 칼슘이 많이 들어 있는 반찬이야.”

“그래도 싫은데…….”

방금 전까지 날아 갈 것 같던 샐쭉이 기분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하늘이 엄마의 멋진 요리솜씨 덕분에 금비늘로 태어난 듯 좋았던 기분이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은비늘 말처럼 하늘이 건강을 지켜주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는데, 하늘이가 샐쭉의 꿈을 한 번에 날려버렸다고 생각하니 슬펐습니다.

“하늘아, 그러지 말고 어서 먹어 봐, 엄마가 정성껏 만들었는데 먹지 않으면 멸치가 고향 남해바다로 돌아가고 싶을 거야.”

“엄마가 멸치마음을 어떻게 알아요?”

“엄마 말은 멸치에게 그런 마음이 들 거란 말이지. 하늘아, 멸치에게도 꿈이 있지 않을까? 아마, 멸치의 꿈은 하늘이의 뼈가 튼튼해지는 것 일지도 몰라.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멸치의 꿈이 모두 날아가는 것이 아닐까?”

“엄마는 멸치에게 무슨 꿈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하늘아,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다 꿈이 있지 않을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생선들도, 이 멸치까지도 말이야.”

엄마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하늘이의 마음이 새롭게 변했나 봅니다.

“엄마, 멸치의 꿈을 이루어 주고 싶어요.”

하늘이의 꿈은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는 거랍니다. 멸치의 꿈을 앗아버리면 자신의 꿈도 날아갈지 모른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멸치의 꿈을 이루어 주어야 자신의 꿈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엄마, 멸치가 꿈을 이루지 못하면 너무 불쌍할 것 같아요.”

“그럼, 누구든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건 슬픈 일이야.”

샐쭉이 꿈을 이루게 해준 하늘이 마음은 행복으로 출렁댑니다. 꿈을 이룬 샐쭉이 마음도 덩달아서 출렁댑니다. <별치의 꿈 끝>

 

 

*<멸치의 꿈>은  《고향으로 돌아 온 까치네》속에 들어 있는 동화입니다. 이 책은 이수옥 작가가 글을 쓰고 중학교 1학년인 김설아 손녀가 그림을 그린 동화로  할머니와 손녀의 풋풋한 사랑이 새겨진  따뜻한 이야기 책입니다.  이 책은 인터파크 등에서 인기리에 판매 중에 있습니다.(편집자 설명)

이수옥 기자 suock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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