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현장 제암리 교회의 비극을 찾아서

2014.02.20 11:01:49

일제국주의의 만행 사건에 대한 앨버트피터 기자의 글 소개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어느 날 당신이 나가는 교회에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모이라고 한다면 “혹시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느냐?” 고 반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19년 4월 15일, 지금으로부터 95년 전 제암리에서는 ‘위험한 일’이 일어났다. 순진하고 순박한 주민들은 일본군 중위놈이 설마 교회문을 걸어 닫고 총질을 해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며칠 전 겨울비가 추적거리며 내리는 가운데 찾은 제암리 교회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침묵에 휩싸였다. 하늘도 희뿌연 하게 흐리고 초목들도 아직 깊은 겨울잠에 빠져있었다.

     
 
   
▲ 양민학살도 모자라 불을 싸지른 일본군의 만행으로 폐허가된 마을 

 제암리 교회당에 총성이 울리고 양민들이 처참히 학살된 이후 세계의 양심은 기사로 타전하여 이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1919년 5월 28일 <저팬 애드버타이저> 기자 앨버트 피터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다소 길더라도 앨버트 피터 기자의 양심으로 쓴 글을 소개하니 인내하며 읽어주길 바란다.

 “일본군이 제암리교회에 총부리를 겨눈 것은 유의해야 할 일이다. 조선 사람들이 전혀 무장 을 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이는 전투행위가 아니다. 이것은 거칠고 흥분한 몇몇 군인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일본군의 정규 장교의 명령에 따라 조직적인 군 파견대가 저지른 일이었다. 그때에 진압할 저항이나 폭동도 없었다. 조선에 사법기관이 엄연히 존재하고 법정이 정기적으로 열리는데도 그것을 법률위반 행위로 고발할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것은 한마디로 정당한 이유도 없는 계획적인 냉혹한 살육이었다. 이것을 반박할만한 그 어떤 종류의 진정이나 변명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건의 처리는 어떻게 되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저팬 애드버타이저>의 기사를 통해서 제암리 사건이 공개된 지 이미 한 달이 지났으며 세계는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총독은 선교사들에게 책임자가 처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충분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으며 또 그런 범죄에 알맞다고 생각되는 처벌이란 어떤 것일까?

   
▲학살 현장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

 조선인 학살에 참여한 일본군 장교에게 가한 처벌은?

 조선인 학살에 참여한 파견대를 지휘한 장교가 군법 회의에서 총살형을 당했는지, 불명예 제대를 했는지, 한두 달 동안의 감봉 처분을 받았는지 다만 앞으로 잘하라는 말만 들었는지 아니면 좀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는 ‘벌’을 받은 것인지 도대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를 나는 물었다. 이 물음은 심각한 것이다.(중간 줄임)

 하세가와 총독은 이상하게도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제암리 사건은 천황을 불명예스럽게 한 것이기에 예전 같으면 할복자살로 용서를 빌었을 일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한 총독의 답을 기다리는 대표단에게 그는 스스로 총독자리를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도쿄에 전했어야 했다. 이것만이 그가 할 남자다운 행동이다. 그런데 자신의 책임은 묵살하고 알맹이도 없이 제암리에서 ‘조선인 학살 책임자를 처벌했다’고 발표하는 것은 어리석고 비열한 짓이다.

 그러나 책임은 하세가와 총독보다 높은 곳에 있을 지도 모른다. 일본국민 모두의 도덕적인 책임감은 어떤가?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이 만행에 대해 일본정부에 공개 항의를 하는 도덕적인 용기와 양심을 가진 일본인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그런 움직임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기다림이었다. 조선에는 다른 외국인보다도 몇 곱이나 많은 일본인이 살고 있으며 그들 중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있고 탁월한 자리에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제암리 사건에 대해 총독을 찾아가 규탄하는 사람은 일본인 가운데는 없고 외국인들이 이 일을 맡았다. 왜 이런 일을 하는 일본인의 모임은 없을까?

   
▲ 양민 학살이 있었던 제암리교회 터에 세운 기념탑 (현재 새로 지은 제암리 교회는 기념탑 위쪽에 있다)

 일본인의 문제점은 다른 민족에게 저지른 잘못을 도덕적으로 반성할 능력이 모자라는 점

 도쿄는 일본제국주의 신경의 중추이고 모든 종류의 집회와 데모를 하는 본고장이다. 나는 그곳에서 일본국민이 어떤 항의의 움직임이라도 보일까하여 기다렸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항의 데모도, 언론의 들끓는 규탄도 없었고, 어떤 정당도 제암리 사건을 문제 삼으려 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조선인의 복지나 정당한 통치의 유지나 제국의 명예를 걱정하는 모습도 없었다.

 그 옛날 ‘총독 암살 음모’사건을 두고 내 친구가 ‘일본인의 문제점은 다른 민족에게 저지른 잘못을 도덕적으로 반성할 능력이 모자라는 점’이라 한 말이 또렷이 떠올랐다. 분명히 그런 것 같다.

 ‘도덕적으로 반성할 능력’이 모자라므로 제국의 군복을 입은 군인이 무장하지 않은 조선인을 쏘고, 칼로 베고, 불태운 사실에 침묵하는 게 아닌가! 세계가 일본인을 평가하는데 이런 일들이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할까? 일본군대가 저지른 만행을 곧바로 규탄하고 그들을 적절히 처벌하였다면 이번 사태는 좀 더 쉽게 용서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항의의 움직임조차 전혀 없는 그런 냉담한 상태에서는 용서받기가 힘든 것이다.(뒤 줄임) ”

 제암리 양민 학살은 세계인이 분노한 명백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렇기에 곧 다가오는 95주년 삼일절을 앞둔 한국인들에게는 더없는 치욕의 날이요, 용서 할 수 없는 일제의 만행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고즈넉한 곳에 자리한 제암리교회

   
▲ 순국기념관 모습

아베신조 일본 수상은 이러한 학살을  알고 있을까? 더 나아가 아베수상에게 힘을 실어 주는 많은 일본인들은 알고 있을까?

 이러한 참상은 시간이 흐른다고 치유 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들이 진정한 용서를 해 줄 때 아물 수 있는 상처다. 그러한 치유는 죽은 사람들을 살려내는 일이 아니라 그 후손들이 사는 땅에 대한 도전을 멈추는 것이다. 이러한 도전이 계속 되는한 제암리 참상 사건은 95년 전 상태 그대로다.

 일본인들의 도전이란 독도 영유권 주장, 아베수상의 야스쿠니참배, 동해표기의 훼방 등 일련의 일들을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일본이 과거 침략시기의 일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제95주년 3.1만세운동을 앞두고 제암리의 참상을 떠올리는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결코 용서하되 잊지 말라고 제암이 교회 전시관 벽면 사진에는 통곡하는 부녀자들의 울부짖는 사진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이한꽃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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