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윤지영 기자] 북한산성행궁은 도성 외곽의 전략적인 요지인 북한산성에 위치한 행궁으로서 남한산성 행궁, 강화행궁과 더불어 전란을 대비한 임시궁궐이며, 도성 방어의 의지를 표출하기 위해서 축조된 것으로 다른 행궁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또한 북한산성 행궁은 조선 후기 집권층의 국가의식과 애민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 현재는 행궁으로서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지만 1999년에 실시한 지표조사 결과 행궁터의 과거 모습을 알 수 있는 유구들이 노출되고 지하에도 유구가 매장되어 있는 중요 유적이지임이 밝혀졌다.
이와 관련하여 고양시(시장 최성)는 10월 31일 오전 11시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위치한 사적 제479호 북한산성 행궁터에서 '북한산성 행궁지 2∼3차 발굴조사의 조사성과에 대한 학술자문회의'를 연다.
조사 3년차인 북한산성 행궁지 발굴조사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경기도·고양시·경기문화재단이 함께 설립한 북한산성문화사업팀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는 이미 조사가 완료된 내전터, 왕의 집무 공간인 외전터를 대상으로 그 성과를 발표한다.

▲ 1904년대 행궁 사진

▲ 북한지에 수록된 행궁터 위치도
《북한지(北漢誌)》(聖能, 1745), 《만기요람(萬機要覽)》(1808),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따위에는 북한산성 행궁이 대략 130여 칸에 이르는 규모였다고 전하는데, 이번 조사 결과로 문헌 기록의 내용을 수정·보완·검증할 수 있게 되었다.
외전터의 경우 중심건물은 마루와 좌우온돌방을 갖춘 28칸 규모(내전과 같다)이며 그 중심축에는 월대·계단·어도·대문지가 일렬로 정렬해 있고 좌우행각으로 둘러싸여 중심영역을 형성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아랫단 외대문지는 외전의 중심축에 외대문이 정렬하고 주변으로 좌우 행랑이 둘러싼 형태임도 확인하였다. 기록에 보이는 외전영역은 처음 축조당시 총 61칸에서 이후 총 74칸으로 변화하게 되는데, 행궁 보수와 수축 등 필요에 따라 규모가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 북한산성 행궁터와 삼각산(2014년)
한편 이번 조사로 북한산성 행궁이 1915년 7월 산사태로 훼손됐음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1912년에서 1915년까지 영국성공회의 여름피서지로 활용되었음을 확인해 주는 서양유물인 램프와 스토브 등이 출토되어 영국 성공회가 북한산성 행궁을 한동안 이용했다는 사실을 물적 증거로 확증하게 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북한산성문화사업팀은 이제까지 미공개되었던 북한산성 행궁터 내전의 최근접 사진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원형복원을 위한 결정적인 고증자료을 얻는 수확도 있었다. 북한산성 행궁터에 대한 발굴은 정비와 복원을 목적으로 추진됐다. 고양시는 지난해 내전터의 조사와 올해의 외전터의 조사로 북한산성 행궁 복원을 위한 건축적·고고학적 자료를 충분히 확보했다.

▲ 내정전 후원 축대

▲ 내정전 상방터
고양시 관계자는 "1910년대 행궁의 전체 모습 사진이 잘 보존되어 있고 이번에 새롭게 확보한 사진으로 건물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 있으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여 건물 기초의 원형이 고스란히 잘 보존되어 있어 북한산성 행궁의 원형 복원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향후 고양시는 북한산성 행궁지에 대한 복원과 아울러 북한산성 내의 여타 건물과 성벽에 대한 정비, 복원을 원활하게 추진하여 연 700만 명 이상이 찾는 북한산성을 수도권의 새로운 문화명소로 탈바꿈시키고 북한산성이 조선 후기의 문화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공간으로 새롭게 인식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계획을 밝히며 "나아가 북한산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힘을 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문화재청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