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우리 겨레는 어떻게 목욕을 했을까?

  • 등록 2015.04.24 08: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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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994]

[한국문화신문 = 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는 예부터 제사를 지내거나 신성한 의식을 행할 때 목욕해서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부정을 피하려고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했습니다. 그러나 성리학의 시대였던 조선시대에는 옷을 함부로 벗어던질 수 없었기에 선비들은 한 여름에도 냇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조선 숙종 때의 문장가였던 신유한(申維翰)은 그의 일본 기행문 《해유록(海遊錄)》에서 남녀가 함께 목욕하는 풍속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물론 조선시대 이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는 불교가 전해지고 불교의 나라가 되면서 목욕이 습관화되기도 했었지요. 심지어 신라시대는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죄수에게 목욕벌을 내리기도 했고, 고려 때는 불교가 국교로 부흥하면서 목욕문화는 더욱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또 삼국시대에 대중화된 목욕문화는 백제가 불상과 경전을 일본에 보낼 때 함께 전파되었지요.

더구나 불교에 의해서 발전되었던 목욕은 고려시대부터 질병치료와 예방의학으로 정립되었으며, 《고려도경》에는 ‘고려인들이 하루에 서너 차례 목욕을 했고 개성의 큰 내에서 남녀가 한데 어울려 목욕을 했다’고 기록되어있을 정도입니다. 또 《고려사절요》에 보면 역대 임금들은 온천행차를 즐겼으며 병이 난 신하에게 온천욕을 권장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 화첩> 가운데 "단오풍정"

그러나 성리학  시대의 조선시대로 오면서 고려시대에 했던 남녀의 혼욕과 알몸을 드러내는 목욕을 더러운 일로 생각하여 황실이나 양반들은 목욕전용 옷을 걸치고 전신욕을 하였지요. 더구나 집에 목욕시설이 없었기에 옷을 입은 채, 겨우 함지박을 이용한 수준의 부분 목욕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는 전신목욕 대신 낯씻기, 손씻기, 발씻기, 뒷물, 이닦기, 머리감기를 하는 정도였고, 전신욕은 신윤복의 그림 <단오풍정>에서처럼 개울에 몸을 담그는 정도로 했는데, 다만 그 시기는 명절인 음력 3월 3일(삼짇날), 5월 5일(단오), 6월 15일(유두), 7월 7일(칠월칠석) ,7월 15일(중원절)이었습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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