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가 입던 풍차바지, 스란치마, 그 특별한 만남

  • 등록 2015.08.25 10:29:25
크게보기

국립고궁박물관,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특별 공개

[한국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최종덕)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624일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日本 文化學園 服飾博物館)으로부터 기증받은 덕혜옹주(德惠翁主, 1912~1989) 유품 7점을 25일부터 96일까지 13일간 국립고궁박물관 1대한제국과 황실전시실에서 특별 공개한다.

*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 1923년 문화재봉여학교(文化裁縫女學校) 창립한 일본 복식교육의 중심 기관. 그 부속기관인 복식박물관은 세계 각국의 복식 관련 자료 2만여 점을 보유하고 있음 

 

   
▲ 붉은 색 스란치마, 예장용으로 입는 치마이며, ‘복(福)’, ‘백(百)’, ‘세(歲)’, ‘수(壽)’, ‘남(男)’ 등의 글자와 석류, 여지, 영지 따위 화초(花草) 무늬를 금박한 스란단을 치마 아래에 덧붙였다.

   
▲ 안감을 사용하지 않고 한 겹으로 제작한 여름용 초록색 홑당의이다.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특별 공개에서는 덕혜옹주가 입었던 어린이용 당의(唐衣)와 스란치마, 돌띠 저고리와 풍차바지, 속바지(단속곳), 어른용 반회장(半回裝)저고리와 치마 등 총 7점의 복식을 선보인다. 이들 유품은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던 당시 남긴 조선왕실 복식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당대 최고 수준의 왕실 복식 유물로서 복식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 당의(唐衣): 조선 시대 여성들이 입었던 예복
* 반회장(半回裝)저고리: , 고름, 끝동(소매 끝)에 다른 색 천을 대어 지은 저고리  

이 복식들을 소 다케유키(宗武志, 1908~1985)1955년 덕혜옹주와 이혼하면서 영친왕(英親王) 부부에게 돌려보낸 덕혜옹주 유품의 일부이다. 영친왕 부부가 1956 당시 문화여자단기대학(현 문화학원의 전신)의 학장이었던 도쿠가와 요시치카(川義親, 1886~1976)에게 기증하면서 일본에 남게 되었고, 이후 1979년 개관한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에서 소장해왔다

 

   
▲ 진분홍 비단으로 지은 어린이용 돌띠 저고리
 
   
▲ 뒤가 트여 있어 기저귀를 갈아 채우기 편리하게 만든 어린이용 풍차바지

   
▲ 대나무 잎과 꽃문양이 가득 메워진 연노랑색 비단으로 지은 어린이용 단속곳

덕혜옹주는 조선왕조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첫 번째 황제인 고종 황제가 1912년 환갑의 나이에 본 고명딸이다. 일제강점기인 1925, 14살의 나이에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나 20살에 일본인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하였으며, 이후 젊은 나이에 나타나는 조발성(早發性) 치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이혼을 맞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조국을 떠난 지 38년 만인 1962년 환국하여 창덕궁 낙재의 수강재(壽康齋)에서 머물다가, 198978살에 세상을 떴다.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특별 공개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남긴 복식을 통해 덕혜옹주의 일생과 대한제국 황실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물론, 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양국의 우호협력 증대를 위해 소장품을 선뜻 기증해 준 깊은 뜻을 되새기는 자리가 될 것이다.

 

   
▲ 깃, 고름, 끝동을 붉은색으로 장식한 반회장저고리

   
▲ 진분홍 비단 바탕에 ‘수(壽)’자와 표주박 문양이 가득 메워진 어른용 치마

   
 

한성훈 기자 sol119@empas.com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