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곰보ㆍ사팔뜨기의 채제공, 영의정 되다

  • 등록 2025.05.25 16: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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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9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정조실록》 37권, 정조 17년(1793년) 5월 25일 기록에는 “임금이 채제공을 의정부 영의정으로 임명하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정조 개혁의 중심에 섰던 인물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은 영조 19년(1743) 문과에 급제한 뒤, 암행어사를 지냈으며 도승지ㆍ병조판서ㆍ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우의정ㆍ좌의정ㆍ영의정을 지낸 인물입니다. 10여 년을 재상으로 있는 동안 여러 분야에 걸쳐 임금을 보필하였습니다.

 

그가 죽자, 정조는 “이 대신은 불세출의 인물이다. 그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격이 우뚝하게 기력(氣力)이 있어, 무슨 일을 만나면 주저 없이 바로 담당하여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굽히지 않았다. 그 기상을 시(詩)로 표현하면 시가 비장하고 강개하여, 사람들이 우국지사의 유풍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벼슬을 시작하여 이때부터 영조께 인정을 받아 금전과 곡식을 총괄하고 세법(稅法)을 관장하였으며, 임금이 쓴 글을 다듬고 내의원(內醫院)에 있으면서 선왕의 옥‘체에 정성을 다하였다.”라고 애통해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에는 채제공의 무덤이 있는데 이곳에는 경기도의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조어제채제공뇌문비(正祖 御製 蔡濟恭 誄文碑)‘가 있습니다. 여기에 쓰인 뇌문은 임금이 신하의 죽음을 애도하며 손수 그의 공적을 찬양하는 글을 적어 보낸 조문 형식의 글을 새겨놓은 것입니다. 채제공의 초상을 보면 그는 태생으로 살짝곰보와 사팔뜨기 눈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채제공은 그렇게 못생겼지만, 영조와 정조의 총애를 받은 큰 인물입니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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