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興到卽運意(흥도즉운의) 흥이 나면 곧 뜻을 움직이고
意到卽寫之(의도즉사지) 뜻이 이르면 곧 써내려 간다
我是朝鮮人(아시조선인) 나는 조선 사람이니
甘作朝鮮詩(감작조선시) 조선시를 즐겨 쓰리
위는 다산 정약용이 쓴 “노인일쾌사 육수 효향산(老人一快事 六首 效香山)”의 한시 일부입니다. 다산이 노인의 한 가지 즐거운 일에 관한 시 여섯 수를 향산거사(香山居士) 곧 백거이(白居易, 중국 당나라 때의 뛰어난 시인)의 시체(詩體)를 본받아 1832년 지은 것이지요. 이 시는 “조선시선언(朝鮮詩宣言)”으로 유명한데, 우리나라의 시를 중국 문학의 예속에서 풀어내려는 다산(茶山)의 강한 주체의식(主體意識)을 드러냈습니다.

《조선시대 한시읽기(한국학술정보)》에서 원주용 교수는 다산이 <척발위론(拓跋魏論)>에서, “성인의 법은 중국이면서도 오랑캐의 짓을 하면 오랑캐로 대우하고, 오랑캐이면서도 중국의 짓을 하면 중국으로 대우하니, 중국과 오랑캐는 그 도와 정치에 있는 것이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 하여,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화이(華夷)의 개념과는 달리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절대적 권위를 거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동호론(東胡論)>에서는, “《사기(史記)》에 ‘동이는 어질고 선하다.’라고 했는데, 참으로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하물며 조선은 정동(正東)의 땅에 있기 때문에 그 풍속이 예(禮)를 좋아하고 무(武)를 천하게 여겨 차라리 약할지언정 포악하지는 않으니, 군자의 나라다. 아! 이미 중국에 태어날 수 없었다면 오직 동이뿐이도다.”라고 했지요. 이로서 다산은 우리나라의 우수한 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중국시(中國詩)를 흉내 내지 않고 오로지 조선시(朝鮮詩)를 짓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겸제 정선이 진경산수화를 그렸던 뜻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