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9 (일)

  • 맑음동두천 22.8℃
  • 흐림강릉 21.6℃
  • 구름많음서울 24.9℃
  • 대전 25.7℃
  • 흐림대구 26.3℃
  • 흐림울산 24.6℃
  • 흐림광주 27.3℃
  • 흐림부산 26.2℃
  • 흐림고창 24.8℃
  • 구름많음제주 27.9℃
  • 맑음강화 22.9℃
  • 흐림보은 25.8℃
  • 흐림금산 26.3℃
  • 흐림강진군 27.4℃
  • 흐림경주시 23.1℃
  • 흐림거제 26.6℃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우리문화편지

전체기사 보기
배너
배너

태종, 새 도읍을 결정할 때 동전 던지기로 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6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음양 산정도감(陰陽刪定都監)을 두었다. 영삼사사(領三司事) 권중화(權仲和)와 판삼사사 정도전, 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성석린(成石璘)ㆍ삼사 우복야 남은(南誾)ㆍ정당 문학(政堂文學) 정총(鄭摠)ㆍ첨서중추원사(僉書中樞院事) 하륜(河崙)ㆍ중추원 학사 이직(李稷)ㆍ대사헌 이근(李懃)ㆍ평원군(平原君) 이서(李舒)가 서운 관원과 함께 지리와 도참(圖讖)에 관한 여러 책을 모아서 참고하여 교정하게 하였다.” 이는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1394년) 7월 12일 기록으로 ‘음양 산정도감(陰陽刪定都監)’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음양산정도감(陰陽刪定都監)은 조선 건국 초기에 설치된 나라 임시기구(도감)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운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옮기는 천도(遷都) 과정에서 풍수지리와 도참설의 기준을 정비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계룡산, 무악(현 신촌 일대), 한양 등 새 서울 후보지를 두고 신하들 사이에 이견과 예언(도참)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기구의 설치는 조선 왕조가 단순한 미신으로서가 아니라, 나라 통치 이념과 결부된 체계적인 학문으로서 풍수지리를 다루고자 했음을 보여주는

아이들에게 오방색 두루주머니 선물할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5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주머니는 자질구레한 물건이나 돈 등을 넣고 입술에 주름을 잡아 졸라매어 허리에 차거나 손에 들고 다니는 장신구입니다. 비단 헝겊으로 만들어 수를 놓거나 금박을 박기도 하는데, 옛날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지녔습니다. 특히 한복에는 대한제국 말기에 서양에서 들어온 조끼를 빼고는 물건을 넣을 만한 호주머니가 없어 실용적인 면에서 더욱 필요하였지요. 그 주머니 가운데 아래는 둥글고 위는 모나는데, 들머리에 잔주름을 잡아 오므리는 주머니를 두루주머니라 합니다. 두루주머니 가운데서도 특히 오방색 곧 노랑, 파랑, 하양, 빨강, 검정의 5가지 빛깔을 써서 아름답게 만든 것이 오방낭자(五方囊子) 곧 오방 두루주머니입니다. 오방 두루주머니 앞면 가운데는 글자를 금박으로 놓거나 수를 놓았으며, 액을 면하고 한 해를 무사히 지내라는 뜻으로 정월 해일(亥日, 돼지날)에 아이들에게 주머니를 선물했지요. 여기서 오방색이란 음과 양의 기운이 생겨나 하늘과 땅이 되고 다시 음양의 두 기운이 목(木)ㆍ화(火)ㆍ토(土)ㆍ금(金)ㆍ수(水)의 오행을 생성하였다는 ‘음양오행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오방색은 나쁜 기운을 막고 무병장수를 비손해 돌이

오늘은 소서, 남 위한 솔개그늘 되어보자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58]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의 열한째로 하지와 대서 사이에 든 소서(小暑)입니다. 하지 무렵까지 모내기를 끝낸 벼는 소서 때쯤이면 김매기가 한창이지요. “소서가 넘으면 새 각시도 모를 심는다.”, “7월의 늦은모는 행인도 달려들고, 지나는 원님도 말에서 내려 돕는다.”라는 속담이 전합니다. 소서가 되어도 모내기를 끝내지 못했다면 새색시건 원님이건 달려들어 도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요즈음은 농약을 치면서 농사를 지어 예전처럼 김매기, 피사리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지만, 여전히 예전 방식대로 농약 없이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허리가 휘고 땀범벅으로 온몸이 파김치가 되기도 합니다. 이때 솔개그늘은 농부들에게 참 고마운 존재이지요. 솔개그늘이란 날아가는 솔개가 드리운 그늘만큼 작은 그늘을 말합니다. 뙤약볕에서 논바닥을 헤매며 김을 매는 농부들에겐 비록 작은 솔개그늘이지만 여간 고마운 게 아닙니다. 거기에 실바람 한 오라기만 지나가도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힐 수 있지요.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소서, 남을 위한 솔개그늘이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때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철이므로 푸성귀(채소)나 과일들이 풍성해집니다. 특히 초여름

조선시대 장마가 계속되면 혼례 독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5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예조에서 계하기를, "고려 《고금상정례(古今詳定禮)》에 이르되, ‘무릇 장마가 그치지 않으면, 서울의 여러 문(門)에 사흘 동안 날마다 영제(禜祭)를 올리되, 한 번 영제를 지내도 장마가 그치지 않으면, 이에 큰 산, 큰 강과 바다에 3일 동안 기도(祈禱)하며, 그래도 그치지 않으면, 사직(社稷)과 종묘(宗廟)에 기도하며, 지방 행정구역에서는 성문(城門)에 영제를 지내고, 경내(境內)의 산천에 기도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장마가 오랫동안 계속하여 곡식을 손상했으니, 도성의 성문과 지방 가운데 장맛비가 너무 많은 곳에 영제를 지내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는 《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1418년) 6월 14일 기록으로 장맛비가 오래 내리자, 영제(禜祭) 곧 기청제(祈晴祭)를 지내도록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제 우리나라 곳곳에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장마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해마다 찾아오는 거대한 자연재해였으며, 《조선왕조실록》 등의 문헌에는 비가 오랫동안 내리는 현상을 '장마'의 옛말인 ‘오란비’ 또는 한자어로 ‘임우(霖雨)’라고 기록했습니다. 당시에는 3일 이상 연속으로 비가 내리

속이 좁다는 밴댕이, 맛은 일품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5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속은 좁아도 맛은 일품인 ‘밴댕이’ 우리는 흔히 속이 좁고 옹졸한 사람을 보고 “밴댕이 소갈머리(소갈딱지) 같다”라거나 “속이 밴댕이 콧구멍 같다”라며 혀를 차곤 합니다. 사소한 말에도 쉽게 토라지고, 너그럽지 못하며,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사람을 이 작은 생선에 견주는 것입니다. 밴댕이는 다 자라도 몸길이가 10~15cm 정도밖에 안 되는 청어과의 작은 물고기로 다른 생선과 달리 내장이 매우 작아 없는 듯 보이기 때문에 ‘속이 좁다’라는 비아냥을 듣습니다. 게다가 성질이 급해 그물이나 낚시에 걸리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물 위로 올라오자마자 몸을 비틀고 파르르 떨다가 금방 죽어버리는 특성 때문에 옹졸함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성격에 대한 오명과 달리, 맛과 영양은 으뜸입니다. 특히 7월 중순의 산란기를 앞둔 5월부터 7월 초까지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기름기가 돌아 고소함이 극에 달하는데, 그 맛이 고급 어종인 농어나 도미와 견줘도 손색이 없습니다. 또 영양상으로도 매우 훌륭한데 칼슘과 철분이 풍부하여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적이며, 불포화지방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성인병 예방과 피부 미용에도 탁월한 효능을 보입니

선비, 종가에서 보쌈을 당하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5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선 광해조 때 문인 유몽인이 지은 《어유야담》에는 과거를 보러 한양에 왔던 한 선비가 인적이 끊긴 종가 곧 현재의 종로에서 장정 네 명에게 보쌈을 당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딘지도 모르게 끌려가 예쁜 여인과 동침할 수밖에 없었던 선비는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어 다시 과거를 보러 한양에 올 때 밤마다 그 종가를 서성였으나 그 장정들을 또 만날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때는 과부가 된 여인은 죽을 때까지 개가를 못 한다는 법이 있어 이런 일도 벌어질 수가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납치 형식을 띠었지만, 실제로는 과부의 친정 식구들과 미리 합의를 보고 진행하는 일종의 '기획 재혼'도 많았습니다.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서 과부에게 새 삶을 열어주기 위한 사람들의 슬기로운 편법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난해서 장가를 가지 못하던 노총각들이 밤거리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쌈 작전에 휩쓸려 혼인에 성공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산군 4년(1498년) 송헌동이라는 사람이 이 법을 폐하고 개가를 허락해달라고 임금께 청하였지만 대다수 대신이 반대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보쌈’에는 여자집에서 외간

왜놈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한용운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5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은 광복을 1년여 앞둔 1944년 6월 29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자택 심우장(尋牛莊)에서 세상을 떴습니다. 올해는 시집 《님의 침묵》을 펴낸 지 100돌을 맞은 해여서 의미가 더욱 큽니다. "나는 조선 사람이다. 왜놈이 통치하는 호적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없다."라면서 평생을 호적 없이 지냈으며 "일본놈의 백성이 되기는 죽어도 싫다. 왜놈의 학교에도 절대 보내지 않겠다."라면서 집에서 손수 어린 딸을 공부시켰습니다. 선생은 또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성북동에 집을 남향으로 짓게 되면 조선총독부를 바라보게 된다며 이것이 싫어 북향집인 심우장(尋牛莊)을 지어 1933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습니다. '심우'는 불교 수행에서 본성을 깨닫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심우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지요. 서울시 기념물이었던 심우장은 2019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됐습니다. 만해에 관한 일화는 참으로 많은데 그를 회유하려고 조선총독부가 성북동 일대 20만 평의 나라 숲을 넘겨주겠다는 한 제의를 한마디로 거절하고, 최린 등과 함께 3·1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선생은 감옥에

정신 차리고 빚어야 하는 궁중떡 ‘혼돈병’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5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809년(순종 9)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엮은 가정살림에 관한 내용의 책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혼돈병(渾沌餠)”이라는 낯선 이름의 떡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떡은 먹으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떡인가요? 아니면 정신 차리고 빚어야지 잘못 빚으면 이상한 떡이 된다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 떡은 보통 떡보다 배로 손이 가고 재료와 과정이 복잡하여 음식 솜씨가 좋은 사람도 잘못 빚을 수 있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일 것입니다. 혼돈병은 찹쌀가루에 꿀, 승검초(당귀가루), 계핏가루, 후춧가루, 말린 생강, 황률(말려서 껍질을 벗긴 밤), 굵은 잣가루 같은 재료가 들어갑니다. 이 떡은 안칠 때 떡 모양을 보시기 크기로 하나씩 떠낼 수 있게 소복하게 한다고 하여 ‘봉우리떡’이라고도 하며, 소를 넣고 뚜껑을 덮어 안쳐 그 모양이 그릇 ‘합’과 같다고 하여 ‘합병’, 썰어 먹지 않고 도독하게 하나씩 먹는 떡이라는 뜻으로 ‘후병’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릅니다. 1766년 나온 《증보산림경제》에도 ‘혼돈병’이라는 떡 이름이 나오지만, 만드는 법이 ‘메밀가루를 꿀물에 타서 죽처럼 만들어 질항아리에 넣고 입구를 봉한 다음 겻불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