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3 (수)

  • 흐림동두천 11.0℃
  • 맑음강릉 18.2℃
  • 서울 12.5℃
  • 구름많음대전 14.4℃
  • 흐림대구 18.0℃
  • 흐림울산 19.4℃
  • 흐림광주 15.6℃
  • 흐림부산 19.6℃
  • 흐림고창 15.2℃
  • 구름조금제주 18.7℃
  • 흐림강화 11.9℃
  • 흐림보은 14.5℃
  • 흐림금산 15.0℃
  • 흐림강진군 16.5℃
  • 구름많음경주시 19.8℃
  • 구름많음거제 19.2℃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우리문화편지

전체기사 보기
배너
배너

99년 전 오늘 일제, 남산에 조선신궁 세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1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99년 전인 오늘(1925년 10월 15일)은 서울 남산 중턱에 43만㎡ㆍ15개 건물로 ‘조선신궁’이 완공된 날인데 신궁은 신사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것입니다. 일제는 10월 13일 경성역에서 조선신궁에 놓을 신체(身體)를 일본으로부터 받아오는 열차가 도착하는 행사를 여는 등 조선신궁 완공에 맞춰 경성의 가장 큰 행사로 화려하게 기획하였기까지 하였지요. 조선신궁은 일 왕가의 시조신인 아마테라스와 1912년에 죽은 명치왕을 모신다는 명목으로 세웠습니다. 기존에 남산 마루에 있던 국사당(나라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을 인왕산으로 옮김과 동시에 개인 사당으로 격하시켜 버렸고, 고종이 만든 조선 첫 국립묘지 격인 장충단(1900년)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일제는 남산을 둘러싸고 공원을 만들어서 조선인들에게 사랑받던 남산을 일본 시조를 받드는 신궁과 일본인들의 집단 거류지로 만들어 버렸지요. 조선신궁 말고도 일제는 남산 주변에 노기신사(1934), 경성호국신사(1943) 등을 세워 조선인에게 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신사(神社)는 일본 신민화정책의 하나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온 나라에 신사를 세워 1945년

임금이 내린 교지와 편지도 한글로 썼다

[얼레빗으로 빗는하루 501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10월 9일은 578돌 한글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세종임금이 만든 훈민정음이 조선시대 내내 ‘언문’이라 하여 푸대접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임금이나 왕비 등이 한글 편지를 썼음은 물론 교지도 한글로 써서 사실상 한글은 많은 이가 쓰는 글자였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때인 선조 25년(1592년) 4월 13일 선조임금은 공식 문서인 교지에 언문을 썼지요. 교지를 쓴 때는 왜군이 7백여 척의 배를 앞세워 부산포로 쳐들어와 미처 전쟁 준비를 하지 못했던 조선은 왜군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속속들이 관군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선조는 탄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조실록》 25년 8월 19일 기록을 보면 “언서로 방을 많이 써서 송언신에게 보내어 민간을 알아듣게 타이르도록 하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기서 한문이 아닌 언서(한글)로 교지를 내린 까닭은 백성과의 원활한 사맛(의사소통)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는 또한 임진왜란 당시 백성의 상당수가 언문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2022년 보물로 지정된 《정조국문어필첩(正祖國文御筆帖, 한글박물관 소장)》은 정

‘학생들 문해력 부족’이라는 기사의 문제점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1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제 578돌 한글날을 맞아 언론에는 “시발점'이라고 하니 학생들이 ‘왜 욕해요?’”라고 했다면서 학생들 문해력 부족이 심각한 상태라는 기사들이 올라왔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578돌 한글날을 앞두고 전국 5천848명의 초ㆍ중ㆍ고 교원을 대상으로 벌인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 조사' 결과를 두고 보도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언론이 아무 비판의식 없이 보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를 든 것들을 보면 위 시발점(始發點) 사례 말고도 "두발 자유화 토론을 하는데, 두발이 두 다리인 줄 알았다고 한다.", “금일을 금요일로 착각했다고 하더라”,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수도라는 말을 몰라 충격받았다” 등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발점’ 대신 ‘시작점’, ‘두발’ 대신 ‘머리털’, ‘금일’은 ‘오늘, ’수도‘는 ’서울‘이란 쉬운 말로 바꾸면 간단히 해결될 일입니다. 최근 우리말 사전 《푸른배달말집》을 펴낸 한실 님은 “오늘날 널리 쓰는 한글왜말은 조금도 우리말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많은 한자말들은 중국에서 쓰던 말보다는 일본이 만들어서 우리가 따라 쓴 말이다.”라고 말입니다. 예를 들면 일본처

‘해외’가 아니라 ‘나라 밖’이라고 써야 해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0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미국, 중국, 프랑스같이 다른 나라를 말할 때 흔히 사람들은 ‘해외’라고 합니다.그러나 이는 일본말을 들여다 쓴 것입니다. 일본은 섬나라기 때문에 일본 밖은 무조건 바다 밖 곧 해외(海外)라고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노녘(북녘)이 큰 뭍(대륙)과 붙어 있어서 나라 밖으로 나가는데 무조건 바다로만 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해외가 아니고 ‘나라 밖’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못 쓰는 말로는 노랫말에 ‘동해바다’라고 돼 있는데 이는 ‘동쪽에 있는 바다 바다’라고 겹말을 쓰는 것입니다. 온 세상 으뜸글자라고 하는 한글을 창제한 한글날 578돌 이 눈앞에 있지만 이렇게 버릇이 되어 잘못된 말인 줄 모르고 쓰는 대한민국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은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영어를 섞어야 잘났다고 생각해서인지 ‘열쇠말’이면 될 것을 ‘키워드’, ‘열쇠고리’는 ‘키링’, ‘벼룩시장’은 ‘플리마켓’, ‘입장권’은 ‘티켓’, ‘전시기획자’는 ‘큐레이터’, ‘흐름(경향)은 ’트렌드‘라고 쓰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예전 한 우리말운동가가 “‘가든’이라고 쓰면 유식하고, ‘식당’이면 그렇고 그

죽어가는 우리말을 찾아낸 《푸른배달말집》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0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10월 3일 서울 서초구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한실 님과 푸른누리 사람들이 함께 만든 《푸른배달말집》 책잔치가 열렸습니다. 이 책은 쉽게 말하자면 ‘우리말 국어사전’이지만, 그간 나온 우리말 사전과는 크게 다른데 한실 님의 말을 빌리자면 “죽어가는 우리말을 찾아 실었고, 글말에 물들지 않은 우리말 입말 보기를 많이 들었다.”라고 합니다. 한실 님은 “오늘날 우리가 배곳(학교)에서 배워 쓰는 말은 거의 모두 일본말에서 왔습니다. 우리말 낱말이 모자라서 말을 넉넉하게 하려고 들여다 쓴다면 다른 나라 말이라도 받아들여 써야겠지요. 그런데 일본말에서 온 말은 멀쩡한 우리말을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한 말들입니다. 이런 말을 한글 왜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한실 님은 왜말에 밀려서 안방을 차지한 우리말을 다시 살려내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한실 님은 겨레, 나라, 다스림, 살림, 나라밖이 있는데도 일본 사람들이 만든 민족, 국가, 정치, 경제, 해외가 안방을 차지하게 놔둘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푸른배달말집》 펴냄의 비롯된 것은 빗방울이라는 덧이름(호)를 쓰며 우리말 살리

오늘 개천절, 단군을 교조로 받드는 ‘대종교’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0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대종교(大倧敎)는 삼신일체(三神一體) ‘한얼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단군 한배검을 교조(敎祖)로 받드는 한국 고유의 종교다. 대종교의 '대종(大倧)'은 하느님이란 뜻이다. ‘대(大)’는 ‘천(天)’에 속하며 우리말로 ‘한’이다. ‘종(倧)’은 신인 종자(字)로 순우리말로 ‘검' 또는 ‘얼’로 표현할 수 있다. 한얼님이 사람으로 변화해서 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신 분이 바로 신인(神人)이다. 한얼님이 지상에 내려오심은 세상을 크게 널리 구제(弘益人間 理化世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은 서기전 2333년, 곧 단군기원 원년에 국조 단군이 첫 배달나라(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세웠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한 제4356돌 개천절입니다. 그리고 위 내용은 한국의 민족종교 대종교 누리집에 있는 대종교 소개글인데 대종교는 단군이 하늘을 여신 개천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대종교의 구현 목표를 보면 ‘홍익인간(弘益人間)ㆍ이화세계(理化世界)'라고 하여 고조선의 건국이념과 같지요. 대종교 창시자인 나철(1863 ∼1916) 선생은 을사늑약 매국노들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뒤 유배됐고, 그에서 풀려난 선생은 1909년 1월 15일

광해군의 총애를 받은 김개시, 비선실세였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0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개시는 친척 딸의 남편인 ‘정몽필’을 양자로 삼아, 뇌물 챙기기와 백성을 수탈하도록 했다. 또 김개시는 밤낮으로 정몽필과 방에 틀어박혀 음란한 행동을 일삼았고, 국정농단과 매관매직 같은 온갖 악한 짓을 함께 저질렀다.” 이는 펴낸이를 알 수 없는 책으로 조선시대 야사와 잡록을 모아놓은 《대동야승(大東野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김개시는 조선후기 제15대 광해군의 총애를 받아 권세를 누린 궁녀인데 민첩하고 꾀가 많았으며, 이를 배경으로 국정에 관여하여 권신인 대북(大北)의 영수 이이첨(李爾瞻)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윤선도(尹善道)ㆍ이회(李洄) 등이 여러 차례 상소하여 잘못을 지적하였으나, 도리어 그들이 유배되고 말았지요.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반정군에 잡혀 참수당하였습니다. 심지어 《인조실록》 1년(1623년) 9월 14일 기록에 보면 “김씨(김개시)는 곧 이른바 김 상궁인데 일찍이 선조의 후궁으로 있다가 뒤에 폐주(광해군)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무신년 선조의 승하 당시 약밥에다 독약을 넣었다는 말도 있었다. 적신 이이첨이 김씨에게 빌붙어 음흉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