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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가 아니라 ‘나라 밖’이라고 써야 해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0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미국, 중국, 프랑스같이 다른 나라를 말할 때 흔히 사람들은 ‘해외’라고 합니다.그러나 이는 일본말을 들여다 쓴 것입니다. 일본은 섬나라기 때문에 일본 밖은 무조건 바다 밖 곧 해외(海外)라고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노녘(북녘)이 큰 뭍(대륙)과 붙어 있어서 나라 밖으로 나가는데 무조건 바다로만 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해외가 아니고 ‘나라 밖’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못 쓰는 말로는 노랫말에 ‘동해바다’라고 돼 있는데 이는 ‘동쪽에 있는 바다 바다’라고 겹말을 쓰는 것입니다. 온 세상 으뜸글자라고 하는 한글을 창제한 한글날 578돌 이 눈앞에 있지만 이렇게 버릇이 되어 잘못된 말인 줄 모르고 쓰는 대한민국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은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영어를 섞어야 잘났다고 생각해서인지 ‘열쇠말’이면 될 것을 ‘키워드’, ‘열쇠고리’는 ‘키링’, ‘벼룩시장’은 ‘플리마켓’, ‘입장권’은 ‘티켓’, ‘전시기획자’는 ‘큐레이터’, ‘흐름(경향)은 ’트렌드‘라고 쓰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예전 한 우리말운동가가 “‘가든’이라고 쓰면 유식하고, ‘식당’이면 그렇고 그

죽어가는 우리말을 찾아낸 《푸른배달말집》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0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10월 3일 서울 서초구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한실 님과 푸른누리 사람들이 함께 만든 《푸른배달말집》 책잔치가 열렸습니다. 이 책은 쉽게 말하자면 ‘우리말 국어사전’이지만, 그간 나온 우리말 사전과는 크게 다른데 한실 님의 말을 빌리자면 “죽어가는 우리말을 찾아 실었고, 글말에 물들지 않은 우리말 입말 보기를 많이 들었다.”라고 합니다. 한실 님은 “오늘날 우리가 배곳(학교)에서 배워 쓰는 말은 거의 모두 일본말에서 왔습니다. 우리말 낱말이 모자라서 말을 넉넉하게 하려고 들여다 쓴다면 다른 나라 말이라도 받아들여 써야겠지요. 그런데 일본말에서 온 말은 멀쩡한 우리말을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한 말들입니다. 이런 말을 한글 왜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한실 님은 왜말에 밀려서 안방을 차지한 우리말을 다시 살려내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한실 님은 겨레, 나라, 다스림, 살림, 나라밖이 있는데도 일본 사람들이 만든 민족, 국가, 정치, 경제, 해외가 안방을 차지하게 놔둘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푸른배달말집》 펴냄의 비롯된 것은 빗방울이라는 덧이름(호)를 쓰며 우리말 살리

오늘 개천절, 단군을 교조로 받드는 ‘대종교’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0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대종교(大倧敎)는 삼신일체(三神一體) ‘한얼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단군 한배검을 교조(敎祖)로 받드는 한국 고유의 종교다. 대종교의 '대종(大倧)'은 하느님이란 뜻이다. ‘대(大)’는 ‘천(天)’에 속하며 우리말로 ‘한’이다. ‘종(倧)’은 신인 종자(字)로 순우리말로 ‘검' 또는 ‘얼’로 표현할 수 있다. 한얼님이 사람으로 변화해서 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신 분이 바로 신인(神人)이다. 한얼님이 지상에 내려오심은 세상을 크게 널리 구제(弘益人間 理化世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은 서기전 2333년, 곧 단군기원 원년에 국조 단군이 첫 배달나라(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세웠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한 제4356돌 개천절입니다. 그리고 위 내용은 한국의 민족종교 대종교 누리집에 있는 대종교 소개글인데 대종교는 단군이 하늘을 여신 개천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대종교의 구현 목표를 보면 ‘홍익인간(弘益人間)ㆍ이화세계(理化世界)'라고 하여 고조선의 건국이념과 같지요. 대종교 창시자인 나철(1863 ∼1916) 선생은 을사늑약 매국노들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뒤 유배됐고, 그에서 풀려난 선생은 1909년 1월 15일

광해군의 총애를 받은 김개시, 비선실세였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0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개시는 친척 딸의 남편인 ‘정몽필’을 양자로 삼아, 뇌물 챙기기와 백성을 수탈하도록 했다. 또 김개시는 밤낮으로 정몽필과 방에 틀어박혀 음란한 행동을 일삼았고, 국정농단과 매관매직 같은 온갖 악한 짓을 함께 저질렀다.” 이는 펴낸이를 알 수 없는 책으로 조선시대 야사와 잡록을 모아놓은 《대동야승(大東野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김개시는 조선후기 제15대 광해군의 총애를 받아 권세를 누린 궁녀인데 민첩하고 꾀가 많았으며, 이를 배경으로 국정에 관여하여 권신인 대북(大北)의 영수 이이첨(李爾瞻)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윤선도(尹善道)ㆍ이회(李洄) 등이 여러 차례 상소하여 잘못을 지적하였으나, 도리어 그들이 유배되고 말았지요.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반정군에 잡혀 참수당하였습니다. 심지어 《인조실록》 1년(1623년) 9월 14일 기록에 보면 “김씨(김개시)는 곧 이른바 김 상궁인데 일찍이 선조의 후궁으로 있다가 뒤에 폐주(광해군)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무신년 선조의 승하 당시 약밥에다 독약을 넣었다는 말도 있었다. 적신 이이첨이 김씨에게 빌붙어 음흉한

오늘은 이완용 처단한 이재명 의사 순국한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0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14년 전 오늘(1910년 9월 30일)은 이완용을 처단한 이재명 의사가 사형집행으로 순국한 날입니다. 일제의 침략 괴수들보다 같은 겨레로서 왜적에게 나라를 파는데 앞장섰던 매국노들을 먼저 처단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지름길이라 생각한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신을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이 의사는 이 오적신들이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1909년 12월 22일 낮 11시 30분 무렵 성당 문밖에서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기다리다가 매국노 이완용이 인력거를 타고 앞으로 지나갈 때 칼을 들고 이완용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재명 의사는 이완용의 허리를 찌르고 이완용을 타고 앉아 어깨 등을 사정없이 찔렀지요. 그의 거사로 인력거 주변은 유혈이 낭자하였고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판단한 그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경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칼에 맞아 중상을 입었던 매국노 이완용은 불행히도 목숨을 건져 매국조약에 도장을 찍었지요. 이재명 의사는 1910년 봄 공판장에서 태연하고도 엄숙한 어조로 역적 이완용의 죄목을 통렬히 꾸짖고 나라를 위하여 그를 처단하였음을 역설하였으며, 일

영조임금, 고기인 줄 모르고 먹었다가 토해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0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선의 왕후(宣懿王后, 조선 20대 경종의 계비) 기일(忌日)’이다. 임금에게 올리는 아침 수라에 고기붙이로 만든 반찬이 있었는데, 눈이 침침하였기 때문에 분별하지 못하고 집어 먹었다가 토했었다.” 이는 《영조실록》 47년(1771) 6월 29일 자에 있는 기록입니다. 이를 보면 영조임금은 육고기를 싫어했음은 물론 과식을 피하고 매일 아침을 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조임금은 재위 기간이 가장 긴 임금이기도 했지만,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임금이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던 일 곧 “감선(減膳)”을 89차례나 했을 정도로 임금으로 해야 할 처신을 분명히 할 줄 아는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조의 감선은 권력 사이에서 신하들을 경고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고 하며, 심지어 감선이 아니라 아예 굶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또 영조는 자기 몸을 잘 섭생하여 81살까지 살았던 임금인데, 입맛도 까다로워 나이가 들수록 밥맛이 떨어지자 약간 짠 듯한 굴비와 톡 쏘는 갓김치, 매콤한 고추장이 입맛을 당긴다며 무척 즐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쌀밥보다는 보리밥을 즐겨 먹은 것은 물론 비린내가 나는 회와 생선은 절대

백성들의 송사를 대리한 외지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0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날 전지(傳旨)에, ‘무뢰배(無賴輩)가 항상 법정에 와 품을 받고 대신 송사(訟事)를 하기도 하고, 혹은 사람을 인도하여 송사를 일으키게 하며, 법률 조문을 마음대로 해석하여 법을 남용해서 옳고 그름을 변경하고 어지럽게 하는데, 시속(時俗)에서 외지부(外知部)라고 하니, 쟁송(爭訟)의 번거로움이 진실로 이러한 무리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므로, 마땅히 엄하게 징계하여 간사하고 거짓됨을 없애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성종실록》 95권, 성종 9년(1478년) 8월 15일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지금 일반 국민은 법에 호소할 일이 생기면 변호사를 찾습니다. 그것은 글을 안다 하더라도 갖가지 법과 시행령 그리고 판례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조선시대 글을 몰랐던 일반 백성은 도움을 받지 않으면 소장을 낼 수도 없었지요. 그뿐만 아니라 소장을 썼다 해도 문지기인 사령이 험악한 표정으로 서 있는 관아에 들어가 소송을 하는 것도 버거웠습니다. 이런 까닭에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소장을 잘 쓰고, 관청에 쉽게 드나들면서, 형리와도 잘 알뿐더러 말도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지요. 조선시대에는 이럴 때

뒤가 겹치지 않게 만든 갓난아이의 두렁치마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0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예전 갓난아이에게 입히던 옷으로 배냇저고리와 두렁치마가 있었습니다. 웃옷으로 입히던 배냇저고리는 깃과 섶을 달지 않은 아기 옷으로 배내옷, 깃저고리라고도 합니다. 희고 부드러운 무명이나 명주로 만드는데, 등에 솔기를 하지 않고 배와 손을 덮을 정도로 길게 만들었지요. 그런가 하면 아랫도리로 입히던 두렁치마는 조선시대 어린아이의 배부터 아랫도리를 둘러주는 기능적인 치마로서 '두렁이', 또는 '배두렁이'라고도 하지요. 배두렁이는 뒤가 겹치지 않게 만들었는데 이는 누워있는 아기에게 뒤가 배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론 기저귀 갈기에도 편리하게 했습니다. 요즘처럼 옷감의 종류도 많지 않았고, 요즘 입는 속옷 같은 것도 없었던 옛날에 몸이 여린 갓난아이에게 보온용으로 입혔던 것이지요. 흔히 무명이나 명주, 융 따위를 겹으로 하거나 솜을 두어 만들었으며 누비로 만든 것이 많았습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 보면 두 이레쯤(14일) 될 때 이 두렁치마를 입히기 시작한 듯합니다. 아기들이 기어다니기 전까지는 남아나 여아같이 입었지만, 자라면서 주로 여아들만 입었습니다.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두렁치마는 190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