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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받고 대신 매를 맞는 일, 매품팔이

[돈 받고 대신 매를 맞는 일, 매품팔이 465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2월 뉴스엔 “대한체육회가 이른바 '맷값 폭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최철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 당선인(마이트앤메인 대표)의 인준을 최종 거부했다.”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흥보전에는 “이때 본읍 김좌수가 흥부를 불러 하는 말이, ‘돈 삼십 냥을 줄 것이니 내대신 감영에 가서 매를 맞고 오라.’ 흥부 생각하되, ‘삼십 냥을 받아 열냥 어치 양식 사고 닷냥 어치 반찬 사고 닷냥 어치 나무 사고 열 냥이 남거든 매 맞고 와서 몸조섭하리라.’“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매품팔이 대목이죠. 실제 조선시대에 이런 매품팔이가 있었을까요? 《승정원일기》에 “돈을 받고 대신 곤장을 맞는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매품팔이가 있었던 게 분명하지요. 특히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장유승 책임연구원이 쓴 글에 보면 조선후기 문인 성대중(成大中)의 《청성잡기(靑城雜記)》에 나오는 직업적 매품팔이가 소개됩니다. 그런데 아내가 채근하는 바람에 고작 7냥씩 받고 하루 세 번이나 매품을 팔았던 사람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겨우 7냥? 그런데 조선시대 법전에 곤장 백 대는 7냥의 벌금으로 대납할 수 있었기에 흥부전의 3

나무를 다루는 장인 대목장과 소목장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65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무를 다루어 집 짓는 일이나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목수 또는 목장(木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목장에는 크게 둘로 나누어 대목장과 소목장이 있습니다. 《경국대전》에는 대목장과 소목장의 구별 없이 목장으로만 기록됐으나 고려시대에도 집을 짓고 가구를 짜는 두 분야의 영역은 따로 있었지요. 이 가운데 먼저 대목장(大木匠)은 큰 건물 곧 궁궐이나 절 그리고 집을 짓는 책임자를 말하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해 전통을 잇도록 합니다. 목조건물을 짓는 데는 목수 외에 기와장이(蓋匠)ㆍ흙벽장이(이장-泥匠)ㆍ단청장(丹靑匠-가칠장假漆匠)ㆍ석수(石手) 등과 긴밀히 협조해야 하지만, 대목장이 건물을 설계하고 공사의 감리까지 겸하는 까닭에 건축에 있어서 총책임자입니다. 그런가 하면 집 지을 때 문짝ㆍ반자ㆍ난간을 만들고 장롱 따위 가구를 만드는 소목장(小木匠)도 있습니다. 소목장 역시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되었지요. 예전에는 궁궐이나 절을 짓는 일이 아주 중요했기에 이 목장들에게 벼슬도 내렸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통일신라의 관직을 보면 도시행정을 관장하는 전읍서(典邑署)에 전문직으로서의 목수가 상당하였고

흉터투성이인 성대로 소리를 하는 판소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64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판소리학회 회장을 지낸 군산대학교 최동현 교수는 그의 책 《소리꾼, 득음에 바치는 일생》에서 “판소리 창자들이 갖추어야 할 요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득음’이다.”라고 말합니다. 판소리는 음악적 요소가 가장 중요한 예술이고, 또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소리’를 만드는 과정이 길고 험난하기 때문인데, 소리꾼이 훈련하는 과정에서 온갖 고초를 겪는 것이 다 이 득음 때문입니다. ‘득음(得音)’이란 곧 ‘소리를 얻는 것’으로 본래 소리꾼이 가지지 못한 소리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판소리에서 소리꾼들이 쓰는 소리는 매우 독특한 것으로 바로 목쉰 소리를 말합니다. 판소리는 큰 음량으로 길게는 8시간 동안 여러 사람 앞에서 불러야 하기에 오랜 시간 동안 소리를 해도 괜찮도록 단련해서 목이 쉰 상태를 만들어 버립니다. 곧 성대에 상처를 내서 흉터투성이인 채로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거칠고 쉰 목소리를 판소리에서는 ‘수리성’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수리’란 으뜸이라는 뜻이어서 판소리에서 으뜸가는 성음이라는 뜻인데 다만, 그 거친 소리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맑은소리는 ‘천구성’이라고 해서 더욱 훌륭한 성음으

오늘은 불편했던 이웃과 웃는 날 유두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64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우리 겨레가 즐겼던 명절 가운데 하나인 유두(流頭 : 음력 6월 15일)입니다. 유두는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준말인데 신라 때부터 있었던 풍속이며, 가장 원기가 왕성한 곳인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날입니다. 이렇게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면 액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는데, 유두를 신라 때 이두로 '소두'(머리 빗다), '수두'라고도 썼다고 합니다. 수두란 물마리(마리는 머리의 옛말)로 '물맞이'라는 뜻인데 요즘도 신라의 옛 땅인 경상도에서는 유두를 '물맞이'라고 부른다지요. 유두의 대표적인 풍속은 유두천신(流頭薦新)입니다. 이는 유두날 아침 유두면, 상화떡, 연병, 수단 등의 음식과, 피, 조, 벼, 콩 따위의 여러 가지 곡식을 참외나 오이, 수박 등과 함께 사당에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하지요. 옛날에는 새 과일이 나도 자기가 먼저 먹지 않고 돌아가신 조상에게 올린 다음에 먹었습니다. 농촌에서는 밀가루로 떡을 만들고 참외나 기다란 생선 따위로 음식을 장만하여 논의 물꼬와 밭 가운데에 차려놓고 농사신에게 풍년을 비는 고사를 지내며, 자기의 논밭 하나, 하나마다

오늘은 대서, 더위로 염소뿔 녹는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64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상엔 온통 더위 천지 광한전(달나라에 있다는 궁전) 월궁으로 달아날 재주 없으니 설악산 폭포 생각나고 풍혈 있는 빙산이 그리워라” 이는 조선 전기 문신 서거정이 시문을 모아 펴낸 《동문선(東文選)》이란 책에 나오는 시입니다. 온통 더위 천지에 설악산 폭포와 풍혈(늘 시원한 바람이 불어 나오는 바위틈)이 있는 빙산이 그립다고 노래합니다. 이제 무더위가 절정에 올라 어제는 중복(中伏)이었고, 오늘은 24절기의 열두째 대서(大暑)입니다. 이때는 무더위가 가장 심해서 "더위로 염소뿔이 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지요. 그런데 조선시대 선비들은 한여름 지금보다 훨씬 더 무더위와 힘겹게 싸웠습니다. 함부로 의관을 벗어던질 수 없는 법도가 있었으니 겨우 냇가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선비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더위를 멀리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대자리 위에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명 조식 같은 사람은 제자들을 데리고 지리산에 올랐고, 추사 김정희는 한여름 북한산에 올라 북한산수순비 탁본을 해올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남

추사, 여름날 북한산 올라 순수비 탁본 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64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순조 16년(1816년) 7월 된더위가 숨을 헐떡거리게 하는 뜨거운 여름날이었습니다. 금석학과 고증학에 한창 심취하고 있던 31살의 추사 김정희는 동무 김경연과 함께 북한산 비봉 꼭대기에 있는 수수께끼의 옛 비석을 조사ㆍ판독하기 위하여 가파른 암벽을 기어 올라갔지요. 그동안 이 빗돌은 조선 초 태조의 왕사 무학대사와 관련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끼 속의 비문을 짚어 나가다가 깜짝 놀라게 됩니다. 비문 내용이 무학대사와 전혀 다른 1천 수백 년 전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임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추사는 빗돌을 확인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빗돌 옆에 “이것은 신라 진흥대왕 순수비다. 병자년 7월 김정희와 김경연이 와서 읽어보았다.”라는 발문을 쓰고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는 이듬해인 1817년 6월 8일(양력 7월 21일) 조인영과 함께 다시 비봉에 올랐고, “김정희와 조인영이 함께 와서 상세하게 살펴보았는데, 남아 있는 글자가 68자였다.”라고 덧붙입니다. 지금이라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 현상 변경”이란 죄목으로 처벌을 받았겠지만, 당시 두루마기 차림으로 무더운 여름날 북한산 비봉까지 올라가

늙은 소나무, 하늘로 솟아오를 듯하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64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階前偃蓋一孤松(계전언개일고송) 계단 앞에 누운 듯 서 있는 한 그루의 외로운 소나무 枝幹多年老作龍(지간다년로작룡) 가지와 줄기는 여러 해 지난 늙은 용의 모습이네 歲暮風高揩病目(세모풍고개병목) 해 저물고 바람 높을 제 병든 눈을 비비고 보니 擬看千丈上靑空(의간천장상청공) 마치 천 길의 푸른 하늘로 솟아오를 듯하네 이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ㆍ시인인 강희안(姜希顔)의 <사우정영송(四友亭詠松)>이란 한시입니다. 사우정에 올라 소나무를 보고 노래한 영물시(詠物詩, 자연과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사물을 대상으로 하여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시)로, 노송(老松)의 위용(偉容)을 눈앞에서 보는 듯 생동감 있게 잘 묘사했지요. 사우정 앞에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데, 마치 누워 있는 듯 비스듬히 가지와 줄기를 드리우고 있는데 마치 늙은 용이 승천하기 위해 꿈틀거리는 듯합니다. 해는 저물고 센 바람이 부는 날 가물가물한 눈을 비비고서 노송(老松)을 바라보니, 천 길이나 되는 푸른 하늘로 솟아오를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조선 후기 문신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이 시에 대해 “격조가 가장 높다

아내와 남편 사이 부름말은 ‘임자’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64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요즘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 연예인들이 나와서 ‘내 와이프가 어쩌구“ 하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분명히 우리말 ’아내‘가 있는데도 영어를 쓰는 것을 보면서 참 답답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우리 겨레가 아내와 남편 사이에 쓰는 부름말(호칭어)은 ’여보‘와 함께 ‘임자’를 썼습니다. 알다시피 ‘임자’는 본디 ‘물건이나 짐승 따위를 제 것으로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주인’이라는 한자말에 밀려서 자리를 빼앗겼지만, 우리 겨레는 아내와 남편 사이에 부름말로 쓴 것이지요. 아내는 남편을, 남편도 아내를 “임자!” 이렇게 불렀는데 서로가 상대를 자기의 ‘임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서로가 상대에게 매인 사람으로 여기고 상대를 자기의 주인이라고 불렀던 것이고, 아내와 남편 사이에 조금도 높낮이를 서로 달리하는 부름말을 쓰지는 않았고 ‘임자’라는 말로 평등한 사이였음을 드러냈습니다. 요즘도 가끔 남편이 아내에게 낮춤말을 하면서 이른바 ‘남존여비’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일제 침략 기간에 남긴 일본 사람들 말법의 찌꺼기라고 합니다. 아내와 남편 사이에 높낮이가 없다는 사실은 가리킴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