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곽재우와 정기룡 장군은 의병 3,000명과 관군 500명, 도합 3,500명을 규합하여 부산 함락에 나서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진해에 머물다가 동래성 십리 밖으로 진영을 옮겼다. 그리고 동래성을 점령하고 있는 아사노 요시나가의 행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통제사의 함대가 부산을 공격하게 된다면 반드시 아사노의 육군은 부산을 지원하기 위해서 군사를 이원화 하게 될 것이고, 그때가 우리의 공격 시점이 된다.” “그런데......아직 움직일 생각을 않고 있습니다.” 정기룡 장군은 탐문에 나섰던 척후병들의 보고를 받고 곽재우에게 의논했다. 지금쯤이면 부산으로 향했던 이순신 함대가 항구를 쑥밭으로 포격해야 하는 것이고 동래의 아사노 부대가 이동을 해야 하는 것인데 모든 것이 잠잠했다. “통제사의 함대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 확실합니다." “이번에는 세자 저하도 승선하셨다고 들었소.” 정기룡의 표정이 불안하게 변하였다. “전령을 통하여 진린의 곳간을 성공적으로 털었다는 소식과 바로 부산으로 출항 한다고 하였는데......어쩌면 좋습니까?” 곽재우도 경험이 풍부한 의병장이었으나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일본 본토를 공격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김충선과 준사는 동시에 경악성을 토해냈다. “그래......똥을 삼키는 표정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구루시마 미치후사. 일본 함대의 수장이 건장한 무사 네 명이 메고 있는 간이의자에 황금색 보료를 깔고 의연한 태도로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어둠에 잠긴 관선의 선실에서 그가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김충선과 준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세상에......?” 구루시마의 뒤로 화승총을 겨냥한 병사 10명과 궁수와 창병이 각기 10명, 도합 30여 명이 넘는 병사들이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그들은 삽시간에 김충선과 준사를 포위 하였다. “네 놈의 계략이 보통이 아니어서......내가 그 점을 역이용했다.” 구루시마가 차갑게 웃었다. 김충선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당할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만일 업고 있는 준사만 아니라면 그래도 어떤 몸부림을 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날 포기해라. 넌 진작 그래야 했어.” 준사의 속삭임이 절망적으로 들려왔다. 김충선은 상대방을 너무 호락호락하게 본 것이 실수임을 깨달았다. 구루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김충선은 몸을 돌려 도주하는 수색병 등을 왜병이 떨어뜨린 창으로 던져서 그대로 꿰뚫었다. “아악.....” 가덕도 숲에서 절망적인 비명이 연신 터져 나왔다. 김충선은 다시 준사를 업고는 다른 방향으로 죽어라 달렸다. 이어서 김충선은 야음을 틈타서 가덕도 해안의 구루시마 진영으로 오히려 내려왔다. 꼬박 하루 동안을 가덕도의 야산에 몸을 숨기고 이리저리 은폐 장소를 옮겨가며 왜적의 수색을 피해 다녔던 것이다. 그는 두 다리를 잃은 준사를 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빨랐다. ‘왜적이 가덕도의 산야를 누비고 있을 때 우린 오히려 적진의 심장부로 뛰어든다. 이것이 조선의 속담으로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이다.’ 김충선은 준사와 더불어 해안을 기다가 바닷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준사는 상처가 소금물에 닿자 고통이 극심하였으나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역시 넌 인내 준사다! 예전부터 참는 데는 네가 최고였어.” 준사는 온 몸의 고통 속에서도 희미하게 웃었다. “그랬던가?” “기억 나냐? 고구마를 굽기 위해 달구었던 돌을 가장 오래 들고 있는 사람이 고구마를 고를 우선권이 쥐어 졌을 때 항상 네가 일등 이였다. 넌 지독하게 참을성이 강한 놈 이였어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사헌부 지평 강두명이라고 하네만. 자네도 성명을 알려줘야지 공평하지 않겠나?” “공평한 것은 집안에 난장을 이루고 있으니 그만 틀렸소이다. 하지만 내 이름은 기억해 두시는 것이 좋겠소이다. 유진이라 하오.” “유진이라? 기억하기 어렵지는 않네만 이유를 물어도 좋겠나?” 유진은 매우 담담한 얼굴이었다. “우리 집안을 온통 뒤흔들었으니 내 이름으로 한번쯤은 강지평에게 교훈을 내려줘야 하지 않겠소이까.” 강두명의 안색이 싸늘하게 변하였다. “어린 도령이 고약하구나.” “고약한 짓을 누가 먼저 벌렸소이까?” 강두명은 방자한 태도로 위협을 가하였다. “감찰기관의 임무를 방해 한다면 국법으로 다스릴 것이다.” 유진의 태도는 흔들림이 없었다. “아버님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응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유념해 주시기 바라오. 그것은 때로 국법보다도 두려운 방문이 될 것입니다. 아주 은밀하게.” 은밀한 두려움이란 어떤 것인가. 강두명의 뇌리에 명나라 사신 병부주사 사헌의 실종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서애 유성룡의 저택에 그의 종적은 없었다. 혹여 사헌은 이미 사망에 이른 것은 아닌지. 서야 유성룡에게 장형을 가한 죄목으로 그는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그것은 거부하겠네.” 강두명의 눈초리가 세모꼴로 독 오른 독사처럼 번뜩였다. “계속 의심을 안고 가실 작정입니까?” “내가 아직은 조선의 재상 신분이네. 물론 임금님에게 사직 상소를 올려두긴 했지만 윤허(允許)를 받지 못했으니 영상의 몸이란 말일세. 일국의 재상이 이런 추잡한 사안에 응대하는 것은 체통의 문제일세. 이해하시게.” “만약 사직 상소가 오늘 밤이라도 받아들여진다면 그리 하시겠습니까? 순순히 사헌부의 압수 수색에 응하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서애 유성룡은 망설이지 않았다. “물론일세. 자네에게 그만한 배경이 존재 하는가?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군.” 사헌부 지평 강두명은 오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악귀처럼 이를 드러내며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소생을 까다로운 부류로 분류했어야 옳았소이다. 영상의 고매한 안목을 평소 존경해 왔었는데, 그건 헛소문에 불과 했군요.” 강두명은 기분 나쁘게 미소를 날리면서 가장 자리에 황금 칠을 한 갈색 두루마리를 장삼에서 꺼내어 영상의 코앞으로 내밀었다. “이것은......?” “읽어 보시오. 상감마마의 어지요.” - 영상과 함께 한 세월이 몇 해인지 아득하오. 평생을 과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그것이 왜? 무슨 연유로? 하는 데까지는 아직 도달하지는 못하였지만 영상은 일부러 장형을 선택하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강지평의 논리는 결론을 추이하지 못하였으니 다만 의심이요 추측에 불과한 것일세.” “하오나, 당시 어전에서의 기록은 사관들과 상감마마를 비롯한 내관의 입을 통하여 확인하였습니다. 그들의 증언 역시 평소의 영상과는 확연히 구분되어질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하여 이다.” 서애 유성룡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강두명은 조선의 임금이 도발적이면서도 영민하고, 교활하면서도 애틋한 선조가 낙점한 인물이란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강두명. 그는 아마도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을 향해 도전하고 있으리라. 어쩌면 그의 입을 통해 발설되는 모든 말들은 선조의 의중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것은 명나라 사신들의 무례한 행동을 오랜 기간 인내하고 또 인내 했다가 감정이 폭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 “물론입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사안이옵니다. 그러나 구태여 자진해서 의금부의 형틀에 묶으라는 요청은 하지 않으셔도 될 법 하였습니다. 영상의 그런 행위는 상감마마의 의중을 저울질 하려는 계산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자네 아래는 감찰(監察)이 있지 않은가. 정 6품의.” “그들과 지평, 정 4품의 장령(掌令) 등은 전부가 비슷한 처지이옵니다.” 강두명은 미꾸라지 마냥 요리조리 노련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서애 유성룡은 강두명의 요사한 행위에 더 이상 현혹당하기가 싫었다. “그만 돌아가 주게. 장형을 당한 상처 부위가 아직도 쑤셔서 쑥뜸을 좀 피워야 하겠으니까.” 강두명은 약간 말투를 바꾸었다. “대감은 쑥으로 뜸을 뜨면서 요상을 하고 계시지만 명나라 사신 사헌 병부주사는 행방을 모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역시 그것이었구나.’ 유성룡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정면으로 그 이야기를 듣게 되자 입장이 거북하였다. 사헌의 실종에 대해서 유성룡은 직접적 관여는 없었으나 간접적으로는 관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세상이 영상을 의심하고 있으나 소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헌의 실종에 이 사람이 관여 됐다고?” “그렇습니다. 대감이, 조선의 영상이 명나라 사신에게 장형을 당하였으니 이 무슨 해괴한 사단이란 말입니까? 그 명나라 사신이 사라진 것은 그 직후 발생한 것이니 의당 대감에게 혐의를 둘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자네는 날 의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대감의 용태는 어떠하십니까?” “그걸 알기 위한 방문은 아닐 것이고.” 강두명은 무안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 소리 죽여 웃었다. “허헛, 대감께옵선 소생의 방문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하십니다요. 보다 편안하게 대해주소서.” 서애 유성룡은 실상 사헌부 지평 강두명에 대하여 어떤 사전 정보도 지니고 있지 않았었다. 한데, 지난번 선조와의 독대 중에 자신이 사찰 당하고 있음을 자각한 후에 측근을 풀어서 은밀히 주변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을 즈음 예상치 않은 인물 한 명이 포착 되었다. 사헌부 지평의 신분으로 어전을 은밀히 왕래하고 승정원과 좌의정 육두성과도 인연을 맺고 있는 위인으로 근자에는 선전관 조영을 의금부에서 방면 하는데 역할을 다하였다는 정보였다. “이 사람은 누구와도 편한 사람이오.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한 음해를 목적으로 접근하거나 이용하기 위한 수단을 모색하는 작자들에 대해서는 까다롭소.” 강두명의 교활한 눈빛이 어색하게 흔들렸다. “소생은 그런 부류가 아닙니다.” “그러신가? 그렇다면 어느 쪽에서 노시는 분이신가?” 강두명은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목소리도 가다듬었다. “사헌부는 행정을 감찰하고 관리들을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과인으로부터 버림받고자 했겠지.” 선조는 신음처럼 내뱉었다. “......?” 강두명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선조는 비분이 가득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영상은 과인을 떠났다. 그가 목적으로 하는 것은 바로 이순신이다.” “네엣?” 선조의 장탄식에 대하여 강두명은 자세를 바로 잡았다. 서애 유성룡의 이상행동 끝에 존재하는 통제사 이순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조선의 명재상이라 불리던 서애 유성룡이 조선을 배신하려는 것이 아닐까. “사헌이 실종 되던 날, 김충선과 그 일당들이 서애의 저택을 방문하였음이 밀승들의 감찰 일지에 의해서 밝혀졌다.” 충격적인 보고가 밀승들에 의해서 접수된 것이다. 강두명은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는 상황을 빠르게 유추해 내었다. “사헌의 실종에 영상이 관여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밀승들은 사헌으로 추종되는 인물을 발견한 적은 없으나 김충선 일행이 커다란 자루를 메고 왔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야심한 시각에 어떤 사단이 발생하였는지는 밀승들 역시 모르고 있다. 그들은 인경과 더불어 감찰을 개시하고, 물러갔기 때문이다.” 임금의 설명으로 미루어 밀승들은 인경이 울리기 전까지는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선조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럼, 사신이 지금 서애대감의 자택에 구금되어 있다는 말이냐?” “아직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주변을 탐문한 결과, 그 날, 야심한 시각에 여러 번의 비명이 영상의 저택에서 새어 나왔다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아마도 상감마마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강두명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조선 왕 선조를 주시하였다. 왕은 여전히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무슨 소리인가?” “소신에게는 설명해 주시옵소서. 상감마마께서 은밀히 이용하고 있는 비밀 승려들 말입니다.” 선조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머물렀다. “그들을 찾아내었느냐? 대단하구나. 대견스럽구나.” 명나라 사신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하여 김충선에게 혐의를 두고 추적하던 강두명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서애 유성룡의 저택을 돌아보던 중에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것은 수시로 승려들이 유성룡의 저택 주변을 왕래하며 감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 승려들은 두 명씩 교대로 짝을 지어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강두명은 즉시 의금부 나졸들을 동원하여 그들을 포박하였다. “너희들의 배후를 대어라!”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