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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출토유물 5,232점 모두 공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971년 7월 5일,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구 송산리고분군)에서 배수로 공사를 하는 도중에 우연히 벽돌무덤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무덤 입구에 놓인 지석은 이 무덤의 주인공이 백제를 다시 강한 나라로 부흥시킨 제25대 무령왕 부부임을 알려주었고, 무령왕릉의 발견으로 백제사와 동아시아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지요. 국립공주박물관은 2021년 무령왕릉 발굴 50돌을 기려 특별전시 ‘무령왕릉 발굴 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 특별전을 오는 9월 14일부터 내년 3월 6일까지 엽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무령왕릉 출토유물 5,232점 전체를 공개하는데 1971년 발견 이후 무령왕릉 출토유물 모두를 한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요. 상설전시실에서는 무령왕릉 출토유물 가운데 임금과 왕비가 착용한 대표적인 국보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전시하였음은 물론 도입부에는 백제인들의 내세관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받침 있는 은잔을 전시하고 그 안에 새겨진 아름다운 무늬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또 임금과 왕비의 관꾸미개, 금귀걸이, 청동거울, 무령왕릉 석수 등 주요 유물은 진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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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또다시 병원에서 맞는 여성애국지사 '오희옥'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안녕하세요. 열사님! 제가 이렇게 오늘 서대문형무소에 와서 열사님을 비롯해 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의 자랑스러운 업적을 알 수 있게 된 데에는 열사님의 노력과 희생 덕분입니다. 저는 열사님의 고통을 감히 헤아릴 수 조차 없지만 열사님을 포함해 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의 업적과 희생과 노력을 잊지 않으며 항상 열사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저의 오늘은 열사님 덕분입니다. 2021.8.27. 지연 올림” 이는 지난 8월 10일부터 29일까지, 광복 76주년 기념으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관장 박경목)에서 열린 ‘생존애국지사 초상화 및 정밀모형(피규어) 특별전시회’를 보고 난 뒤 관람객이 생존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에게 쓴 손편지다. 8월 현재 생존 애국지사는 모두 16분으로 이 가운데 여성은 오희옥(95세) 지사가 유일하다. 어제(18일), 오희옥 지사의 아들인 김흥태 선생으로부터 어머니(오희옥 지사)의 근황과 함께 지난 전시회 때 사용한 오희옥 지사 초상화와 손편지 엽서 사진을 받았다. 초상화는 이 기간에 전시된 16점 가운데 한 작품으로 초상화를 그린 화백은, 삼균주의를 제창한 조소앙 선생의 조카인 조범제 화백이 그렸고 전시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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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세계 기록 유산이 되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조선은 ‘기록의 나라’다. 이렇게 세밀하게 기록하고, 또 기록한 나라가 있을까 싶을 만큼 조선은 통치 행위의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왕의 언행을 기록으로 남긴 나라는 조선 외에도 많다. 중국과 베트남, 일본에도 실록이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은 수록내용의 다양성과 방대함, 공정성 측면에서 가히 독보적이다. 이 책은 이런 실록의 이모저모를 청소년과 성인도 알기 쉽게, 풍부한 자료사진과 함께 풀어냈다. 사계절이 펴내는 ‘고전맛집’ 시리즈는 ‘어른이 되기 전 꼭 읽어야 할 고전을 쉽고 맛있게 엮는다’는 취지로 기획되었고, 조선왕조실록편은 그중 두 번째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기록되고 있었기에 조선의 왕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역사의 책임을 무겁게 의식해야 했다. 내가 한 일을 후대의 누구도 알 수 없다면,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살다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들이, 행동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수백 년 후에도 전례로 쓰이고, 영원히 역사 속에 박제된다면? 그때는 그 누구도 행동을 가벼이 할 수 없었다. 이런 기록문화는 조선왕조를 5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지탱한 ‘역사의 소금’이자, 지배권력의 부패를 막는 방부제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