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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나는 까닭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인류의 시원부터 폭력은 늘 존재해 왔습니다. 그 원시적인 폭력이 집단화되고 거대화될 때, 우리는 그것을 전쟁이라 부릅니다. 구석기 시대의 폭력은 전쟁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충돌이었습니다. 인구 밀도가 낮아 마주칠 일조차 드물었으나, 기후 변화로 사냥감이 줄거나 안락한 동굴을 지켜야 할 때면 인간은 생존을 걸고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고 정착하면서 전쟁은 비로소 조직화합니다. 정착은 곧 소유의 탄생을 의미했습니다. 비축된 식량과 비옥한 토지는 타 집단에게 매력적인 약탈 대상이 되었고,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되는 깊은 해자와 단단한 성벽은 당시 외부의 침략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위협적이었는지를 증명하는 서글픈 흉터입니다. 석기시대 후기로 갈수록 전쟁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을 넘어, 명예와 복수, 그리고 상징으로 대변되는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영역으로 진입합니다. "조상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라거나 "우리의 신이 이 땅을 허락했다"라는 명분은 전쟁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전사 계급이 생겨나고 전문적인 살인 무기가 등장하며, 전쟁은 하나의 견고한 사회적 구조로 자리 잡게 됩니다. 수만 년이 흐른 지금, 인류는 돌도끼 대신 미사일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본질적 원인은 여전히 자원의 결핍과 상대에 대한 불신이라는 석기시대의 굴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토지와 물을 위해 싸웠다면, 현대에는 석유와 희토류, 그리고 경제적 패권을 위해 총성을 울립니다. 내 집단의 풍요가 타 집단의 결핍을 전제로 할 때, 인간은 너무도 쉽게 공존 대신 탈취를 선택해 왔습니다. 전쟁은 종종 평범한 개인들의 의지가 아닌, 권력자들의 야망과 오판 때문에 점화됩니다. 지지율 회복, 역사적 업적에 대한 욕구, 군수 산업의 이익 등이 전쟁이라는 수단을 빌려 분출됩니다. 정작 전장에서 피를 흘리는 이들은 전쟁을 결정한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은 전쟁이 가진 가장 잔혹한 모순입니다. 또한, 상대가 나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게 만드는 안보 딜레마는 현대 사회를 여전히 전쟁의 위협 속에 가두어 둡니다. 인간에게 파괴적인 본능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공감하고 협력하며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숭고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전쟁이 남기는 것은 승리의 영광이 아니라 씻을 수 없는 상처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라는 범위를 내 가족과 민족을 넘어 인류 전체로 넓히는 인식의 확장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무력이 아닌 대화와 법치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국제적 신뢰를 쌓아가야 합니다. 결국 전쟁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본성이 만든 비극이지만, 그 비극을 멈출 수 있는 열쇠 또한 인간의 도덕적 용기와 지혜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파괴하는 존재인 동시에, 무너진 폐허 위에서 끝내 다시 꽃을 피워내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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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비의 탁함이 가신 자리, 다시 맑은 숨이 돌아와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그림 속, 푸른 제주 바다를 곁에 두고 시원하게 뻗은 길 위로 하얀 전기차가 매끄럽게 달리고 있습니다. 차창을 내리고 눈을 감은 채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청년의 표정에서 말로 다 못 할 평온함이 느껴지네요. 화면 오른쪽, 거센 파도에 씻겨 내려가는 누런 흙먼지는 우리가 지난날 겪었던 '흙비'의 기억일지도 모릅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성껏 가꾸어 온 친환경 정책이 저 탁한 기운을 밀어내고 눈부시게 푸른 숨결을 되찾아준 풍경, 그 상쾌한 변화에 딱 맞는 우리말을 소개합니다. 상태가 달라지고 깨끗이 씻기는 가시다 전기차 보급 1위인 제주의 공기가 10년 전보다 43%나 깨끗해져 전국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줍니다. 흙비가 내리던 날의 막막함이 어느새 희망의 흐름으로 바뀌는 순간이지요. 이처럼 흐리거나 탁하던 것이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우리는 '가시다'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토박이말은 '가시다'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가시다'를 두 가지 뜻으로 풀이합니다. 첫째는 '어떤 상태가 없어지거나 달라지다'입니다. 감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처럼 남아있던 기운이 사라지는 것을 말하지요. 둘째는 '물 따위로 깨끗이 씻다'입니다. 소금물로 입을 가시듯 탁한 것을 씻어내는 행위입니다. 제주의 맑아진 공기는 단순히 수치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자잘먼지(미세먼지)'의 탁함이라는 상태가 달라지고(1), 꾸준한 환경 정책이라는 '물'로 그 먼지를 깨끗이 씻어낸(2)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그늘도 환하게 가시기를 우리는 흔히 입안을 씻어내는 것을 '입가심', 배고픔을 면하는 것을 '볼가심'이라 부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가심'을 '깨끗하지 않은 것을 물 따위로 씻는 일'이라는 뜻으로만 풀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주의 맑아진 공기를 보며 이 낱말의 뜻을 조금 더 넓게 품어보고 싶어집니다. 씻어내는 행위를 넘어, 우리 삶에 머물던 불안이나 고단함 같은 어떤 상태가 없어지거나 달라지는 일까지 모두 '가심'이라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흙비가 내릴 때는 영영 하늘이 밝아지지 않을 것 같아 시달리기도 하지만, 끝내 정성이 쌓이면 그 탁함은 반드시 가시게 마련입니다. 지금 혹시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걱정이 가득하신가요? 제주의 공기가 10년에 걸쳐 맑아졌듯, 여러분을 괴롭히던 마음의 안개도 조금씩 가셔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던 탁함이 가시고 난 뒤 마주할 그 가볍고 산뜻한 숨을 기다리며, 오늘도 맑은 마음으로 하루를 가시어(씻어) 내시길 바랍니다. [마음 나누기] 그림 속 청년처럼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요즘 당신의 마음속에서 기분 좋게 가시고(사라지고) 있는 걱정이나 불안은 무엇인가요? 맑아진 공기만큼이나 산뜻해진 당신의 기분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주세요. [한 줄 생각] "보이지 않던 탁함이 가실 때, 우리의 숨도 한결 가벼워집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가시다 뜻: 1. 어떤 상태가 없어지거나 달라지다. 2. 물 따위로 깨끗이 씻다. 보기: 제주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공기의 탁함이 환하게 가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