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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에서 신라인의 구심점이 된 장보고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2025년 10월 27일(월)~11월 3일(월) 7박 8일, 총 이동 거리 2,260km) 글ㆍ사진 : 안동립(고조선유적답사회 회장, 동아지도 대표) 참여자 : 안동립, 고재성, 김종택, 김지환, 문부산, 배국환, 백은희, 엄수정, 이우언, 이일걸, 장형순, 정운채, 황현규, 황현득, 안내 염용철, 손광휘 고(옛)조선유적답사회, 다음 카페 : http://cafe.daum.net/map4u7 2025년 세 번째 답사인 '전설적인 인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7박 8일 동안 중국 산둥성 일주를 하였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산동성의 이번 답사는 태산, 노산 등산과 장보고, 소동파, 강태공, 치우 천황, 태호 복희 씨, 순임금, 공자, 제갈량, 조조, 진시황 등 40여 명의 위대한 인물의 사상과 정신을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배우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1일 차 : 2025년 10월 27일 월요일 아침 8시 인천국제공항 제1 여객터미널 L카운터에 모였다. 제주항공 7C 8501편으로 인천공항에서 10시 50분 출발하여 50분 만에 중국 위해 공항 부근에 왔다. 군사 공항으로 창문을 닫고 불까지 끄면서 착륙하였다. 지난 가을 연길 공항에서도 창문을 닫고 착륙하였는데, 이곳도 같았다. 입국장에서 가이드 염용철 씨와 손광휘 사장을 만났다. 26인승 리무진을 타고 시내로 가면서 창밖을 보니 하늘은 맑고 주변 풍경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적산 법화원(赤山法华院) : 공항에서 석도항 방향으로 50분(44km) 달려 법화원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전동차를 타고 관음전 앞에 내리니 광장에 움직이는 대형 분수를 만들어 2시부터 15분 동안 공연하였다. 엄청난 규모의 물을 뿜으며 음악과 함께 무지개가 피어오르고, 청동 조각으로 만든 천사와 코끼리 등이 움직이는 화려한 분수 쇼를 보았다. 중국인들의 보여주는 스케일은 대단하다. 장보고(張保皐, ?~846)는 9세기 신라 후기의 해상 무역왕이자 군인이다. 807년에 장보고는 당나라로 건너가 군대에 입대하여, 뛰어난 무예와 용맹으로 장군으로 진급했다. 이후 신라로 돌아와 해적을 소탕하고, 전남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한 다음, 청해진 대사(大使)로 동아시아 해상권을 장악, 해상 무역망을 구축했다. 또, 당나라에 적산 법화원(천태종)을 세워 재당 신라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846년 염장에게 암살당하였는데 '염장 지른다'라는 말의 어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소금에 절이는 일을 ‘염장질’이라 한다.) 적산 정상에는 신으로 모셔진 거대한 청동 장보고 좌상이 황해를 굽어보고 있다. 이곳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바다와 어우러져 확 트이는 느낌이다. 장보고 기념관으로 이동하여 동상과 초상화로 장보고를 만났다. 근엄한 기상으로 위엄이 있다. 유물마다 한글 설명을 붙여두어 이해하기 좋았다. 건물 가운데는 드라마 ‘해신’의 영상과 출연진 사진을 전시해 두었다. 법화원 본당 대웅보전에는 한국의 부처님과 모습이 비슷하여 중국 절과 분위기가 다르다. 부처님 양옆에 제자 마하가섭과 아난다, 동서남북 벽에 문수보살, 보현보살, 십팔나한 벽화가 있다. 지장보살이 인상적이었다. 839년 6월, 왜의 승려 엔닌(円兰, 圓仁)이 법을 구하기 위해 당나라로 순례를 떠나 법화사에 세 번 2년 9개월 동안 머물렀다. 847년 7월에 귀국 길에 올라, 9월 2일에 당의 적산을 출발, 청해진을 거쳐 9월 17일에 일본의 박다(博多, 후쿠오카)에 도착하였다. 엔닌은 왜를 떠난지 9년 3개월 만에 귀국한 뒤 당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종교에 대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를 펴냈다. 제자들에게 일본 교토 오노산에 적산의 이름을 딴 ‘적산선원’을 건립하게 했다. 법화원은 규모가 크고 볼거리가 많았다. 버스를 타고 3시간 달려(285km) 어두워져서야 연대시(烟台, 호텔 : 蓬莱华侨宾馆 6199-6188)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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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꽃사슴의 봄 마중'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꽃사슴의 봄 마중 - 이고야 날카롭던 겨울 바람 입춘 지나 부드러워진 날 서울숲 꽃사슴우리에 봄이 성큼 다가왔다 시린 계절을 견뎌낸 꽃사슴들의 간절한 그리움이 아직 오지 않은 초록의 계절을 탐하듯 맑은 눈동자 속에는 이미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고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살며시 번지는 훈풍에 서로의 마음을 여는 소리가 봄을 재촉한다. 어제(15일) 서울숲 나들이를 했다. 강변북로를 달리면서 성수동 근처 구름다리(서울숲에서 볼때는 한강변으로 가는 보행다리)에 새겨진 <서울숲>이란 커다란 글자를 보면서도 발걸음을 해보긴 처음이다. 성수동에 있는 서울숲은 2005년 6월 18일,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했으니 개원후 21년 만에 발걸음을 한 셈이다. 아직 겨울 끝자락이라 서울숲의 모든 초목은 앙상한 가지 상태였으나 꽃사슴우리에서 만난 꽃사슴들들의 먹이 먹는 모습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서울숲이 있던 곳은 과거 임금의 사냥터였으며, 이후 상수도 수원지, 골프장, 경마장 등으로 사용되다가 서울숲으로 조성되었다. 서울숲은 조성 단계부터 프로그램 운영까지 시민들의 기부와 참여로 이루어진 최초의 공원이라 그런지 숲 조성시 모금에 동참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둔 이름판이 인상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