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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된 조지 포크의 모습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5살의 조지 포크를 만나 보자. 해군사관학교에 막 들어간 아들에 대해 아버지가 자기 동생(포크의 삼촌)에게 거침없이 자랑하는 편지다. 매우 긴 편지의 손글씨 판독이 썩 어렵다. 오래 뚫어본 결과 거의 완파하였다. 번역문을 여기에 올린다. 1872년 6월 20일 마리에타에서 친애하는 조지 사관생도 조지 클레이턴 포크를 소개하려네. 나는 방금 아나폴리스에서 돌아왔네. 거기에서 녀석이 학교용 군함 산텍호(US S School Ship Santec)에 승선하는 것을 보았네. 이제 그 자초지종의 역사를 기술하려 하네. 5월 초 우리 지역 의회의 의원인 디키(Dickey)가 카운티 신문을 통해 밝혔다네. 곧 랑카스터 지역에서 14살에서 18살 사이의 모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발시험을 열어 가장 우수한 인재를 한 명 뽑아 해군사관학교 생도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디키 의원은 브룩스 교수, 에반스 교수 그리고 헤이스 판사를 심사 위원으로 임명하고 신체검사는 블랙우드 박사에게 위촉했다네. 이 소식을 나는 아들 녀석에게 알려주면서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지. “아빠, 딱 제게 맞군요, 도전해 보고 싶어요.” 하더라구. 나는 녀석를 데리고 랑카스터로 갔네. 신체검사를 치렀는데 일등급으로 통과되었다네. 그다음 주에 녀석은 다시 랑카스터로 가서 심사위원들 앞에서 다른 4명과 함께 심사를 받았지. 최우수 성적을 받은 녀석의 이름이 디키 의원에게 전달되었다네. 6월 6일 저녁, 녀석은 해군장관으로부터 공식 문서 한 장을 받았다네. 6일부터 18일 사이에 최종 시험을 보아야 하니 아나폴리스의 사관학교 교장에게 신고하라는 지시문이었네. 녀석은 10일 8시 10분 혼자 집을 떠났네(모두에게 슬픈 이별이었어, 안 봐도 훤히 알겠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보가 녀석으로부터 왔었지. 14일 금요일 아침 9시부터 일요일 16일 정오까지 심사를 받았다네. 마지막 날인 16일 녀석은 다시 전보를 쳤네. 합격했다면서 날더러 오라는 거였어. 나는 17일 집을 나섰고 같은 날 저녁 7시에 녀석을 만났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함께 총무과 사무실로 가서 복장 예치금($254)을 냈다네. 나는 녀석이 멋진 복장을 하고 학교용 군함에 승선하는 모습을 보았지. 함께 시내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외출 휴가를 받았네. 우리는 즐거운 오후를 보냈지. 5시 45분 안녕을 고하고 작별의 키스를 하였네. 6시에 볼티모어 해안으로 갔네; 볼티모어를 뒤로하고 뉴욕에 도착하니 9시 25분. National Hotel에 묵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네. 마음이 허탈하여 참기 어려웠네. 7시에 뉴욕을 떠나 8시에 콜럼비아에 도착했네. 11시 58분에 콜럼비아를 떠나 집에 들어오니 12시 15분. 녀석이 집을 떠난 뒤로 마음이 무척 휑했었는데, 만나고 오니 좀 나은 것 같네. 향수에 젖어있던 녀석도 나를 보자 기분이 훨씬 나아진 것 같더군. 아마 몇 주 동안은 향수를 느끼겠지만 곧 지나가 갈 것이고 즐겁게 지내리라고 생각하네. 녀석은 “훗날 훤훤장부(軒軒丈夫, 외모가 준수하고 풍채가 좋아 기개가 당당해 보이는 남자)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고, 평생 충분한 보수를 받을 것이고, 조국으로부터는 든든한 보호를 받을 것이며, 좋은 행실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네. 녀석은 오는 10월 30일에 16살이 된다네. 신발을 벗고 쟀을 때 키는 5피트 2인치. 어떤 흠결도 없는 완벽한 상태이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씹지도 않네. 환각제 같은 것도 사용한 적 없고. 녀석은 놀이에서 져 본 적이 없다네. 나는 조지를 무척 신뢰하네. 4년 뒤 1등은 아닐지라도 매우 높은 성적으로 영예롭게 졸업할 게 틀림없어. 올해 9월까지는 학교용 군함에서 생활할 거고 그 뒤 학교로 돌아갈 거라네. 다음 해 6월에 시험을 치를 것이고 그런 다음 9월까지 배를 탄다네. 그리고 다시 사관학교로 돌아와 다음 해 6월까지 과정을 밟고 또 시험을 치르고. 그러고 나면 4주 동안 휴가를 받을 거네. 학교에선 과학과 프랑스어를 공부한다네. 졸업은 입학일로부터 4년 뒤가 될 거네. 가능한 한 속히 녀석에게 격려 편지를 써 주게나. 아래 주소로 (Cadet Midshipman 사관생도 / US Naval Academy 미국 해군사관학교 / Annapolis Mad 애너폴리스 매드) 5장을 채우고 있는 아버지의 편지는 일종의 사료라 할 수 있다. 시골 소년이 왜, 어떻게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지가 소상히 나와 있을 뿐 아니라 그 당시 소년의 언행과 심리도 투영되어 있다. 나아가 아들을 대견해하는 아버지의 긍지와 사랑 그리고 걱정이 섞인 지극한 보살핌이 정밀화, 아니 초정밀화처럼 그려져 있다. 몇 시 몇 분에 작별의 키스를 나누었는지 지까지 기록했다. 아버지는 이 편지를 ‘하나의 역사(a history)’ (위의 편지에서 붉은 줄)로서 기록한다고 적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역사 기록물인 셈이다. 범상치 않은 한 소년이 고향을 떠나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경위와 모습, 그리고 내면 풍경을 보여주는 첫 그림이다. 글쓴이는 미의회도서관을 직접 찾아가 이런 자료를 구했다. 이런 기록물이 보존되어 내려온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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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을 묻지 않아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람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대단한 말을 하지 않아도 괜히 믿음이 가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말을 잘해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그 물음 앞에서 떠오르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바로 '미쁘다'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미쁘다'를 '믿음성이 있다'고 풀이합니다. 쉽게 말하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미쁘다는 그냥 믿는다는 말보다 조금 더 따뜻한 느낌이 있습니다. 까닭을 하나하나 따지지 않아도 괜히 마음이 가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믿음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뢰'나 '믿음'이라는 말을 씁니다. 하지만 '미쁘다'라는 말에는 사람의 태도와 마음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약속을 잘 지키는 모습, 작은 일도 정성껏 하는 태도,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마음, 이런 것들이 쌓이면 어느새 우리는 그 사람을 두고 저 사람 참 미쁘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미쁘다'는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크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날마다의 작은 행동들이 쌓여서 만들어집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자기 일을 잘 해내고, 남을 속이지 않고,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그런 마음이 모여 미쁨이 됩니다. 그래서 미쁘다는 더 귀하고 오래 갑니다. 살다 보면 사람을 쉽게 믿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 미쁜 사람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미쁜 사람일까 하고 말입니다. 오늘 하루를 보내며 한 가지만이라도 실천해 보세요. 약속을 꼭 지키고, 친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입니다. 그런 작은 행동들이 모이면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미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한 덤] 우리는 살면서 미쁜 사람을 여러 번 만납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함께 쓰자고 말해 준 친구를 보며 그 친구는 참 미쁘다라고 느끼기도 하고, 늘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은 참 미쁘다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힘들 때 괜찮아 잘 될 거야라고 말해 주는 한마디가 미쁘게 느껴져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나는 누군가에게 미쁜 사람이었을까 생각해 보고, 내일은 한 가지라도 더 미쁘게 행동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미쁘다 뜻: 믿음성이 있다. 보기: 그는 작은 약속도 꼭 지키는 참 미쁜 사람이다. [한 줄 생각] 미쁘다는 것은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오래 쌓여서 저절로 믿어지게 되는 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