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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곰팡이과학자가 말하는 국어사전의 오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우리말샘>의 오류를 보면서 우리가 흔히 범할 수 있는 실수를 깨닫고 장기 발전의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특히 전문어의 한자 표기에 많은 오류가 있습니다. 제한된 공간에다 오류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 친절한 해설을 붙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특별히 설명과 토의가 필요한 글자나 개념에 대해서는 별도로 한 페이지씩 할애하여 부록으로 넣었습니다. 저는 주로 생명과학 분야의 용어 중에서 '우연히 마주친' 오류를 나열하고 해설하였지만, 각 세부 분야의 전문가들이 해당 분야의 용어에 대한 해설과 한자 표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글은 신현동 교수의 신간 《곰팡이과학자가 펼친 우리말샘》(월드사이언스. 2026.8)에 나오는 지은이 서문 가운데 일부다. 여기서 <우리말샘>이란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국민 참여형 개방형 국어사전으로, 표준어뿐만 아니라 신조어, 방언, 전문용어 등 실생활 어휘를 국민이 직접 등록하고 편집할 수 있는 디지털 지식 대사전’을 말한다. 그러니까 위 글 곧 《곰팡이과학자가 펼친 우리말샘》의 서문 내용은 곰팡이과학자인 신현동 교수가 《표준국어대사전》의 잘못을 짚어주기 위해 그동안 이용하면서 문제점이 있는 낱말을 골라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말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 가운데는 ‘국어사전에 오류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국어사전(이 글에서 말하는 국어사전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말함)에 잘못이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심각하다고 한다면 ‘네? 뭐라구요?’라고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신현동 교수의 《곰팡이과학자가 펼친 우리말샘》을 읽어 나가면서 ‘맞아 맞아’라는 말을 독백처럼 수십, 수백 번 읊조렸다. 신 교수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 책을 펴냈을까? 완전히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곰팡이과학자가 펼친 우리말샘》에 나오는 말 가운데 ‘깜부기’라고 부르는 낱말에 대한 지적을 보자. (필자는 어린 시절 옥수수 등이 까맣게 병든 것을 깜부기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간-흑수병(稈黑穗病) 『농업』 밀에 곰팡이가 생겨 발병하는 병. ☞ 稈黑穗病(간흑수병)은 밀의 줄기[稈]에 생기는 깜부기병[黑穗病]을 가리키는 일본어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용어는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농업 자료에 등장했으나, 이후에는 ‘줄기깜부기병’으로 쓰이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따라서 이 표제어는 《우리말샘》에서 삭제되어야 마땅하다.” -5쪽 “견-흑수병(堅黑穗病)”도 마찬가지로 현재는 쓰지 않는 말로 현재는 “비린흑수병”으로 불린다. -13쪽 듣고 보니 일본어를 45년 이상 전공한 필자에게도 ‘간흑수병’이나 ‘견흑수병’이란 말은 생소하다. 지금은 한글 ‘깜부기’로 바뀌어 쓰고 있는데 한국에서 1950년대 이후 사라진 ‘간-흑수병(稈黑穗病)’, ‘견-흑수병(堅黑穗病)’ 같은 말을 국어사전에 여전히 실어두고 있는 속뜻은 무엇일까? 신현동 교수는 이처럼 한때는 썼으나 현재는 쓰지 않는 특히 일본어 한자말에 대해 지적하는가 하면, 낱말 가운데 ‘한자’ 자체가 틀린 말도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다. 예컨대, 식물용어로 구근초라는 말의 한자가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보자. “구근-초(球根艸)『식물』 알뿌리를 가진 풀. ☞ 식물의 알뿌리를 뜻하는 구근은, 球根이 옳은 한자이다. 과학에서 毬根이란 단어는 없다. 또한, 풀을 뜻하는 초는 草가 옳은 한자이다. 본래 艸가 풀을 뜻하기는 하였지만, 草에 자리를 빼앗긴 비운의 글자로서 일상어는 물론 과학 용어에서도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따라서 毬根艸는 球根草로 수정되어야 한다.”-26쪽 의학용어 하나를 더 보자. “깔때기조영술(깔때기照影術) 『의학』 방사선 비투과성 조영제를 주입한 뒤에 콩팥깔때기와 요관을 촬영하는 방법. ☞ 의료용으로 쓰이는 조영제(contrast agent)는 한자로 造影劑라고 하며, 조영제를 사용하는 의료 기술을 뜻하는 조영술은 造影術이 옳은 한자이다. 따라서 깔때기照影術은 깔때기造影術로 수정되어야 한다.”- 37쪽 “혈관영화조영술(血管映畫照影術)의 경우도 혈관영화조영술(血管映畫造影術)로 수정해야 한다.-228쪽 신현동 교수의 지적은 끝이 없다. 한자의 오류뿐이 아니다. 영문 표기가 잘못된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돼지살모넬라(salmonella) 부분을 보자. “돼지살모넬라(salmonella) 「보건 일반」 그람 음성 장내 세균. 고열, 오한과 무기력 증세를 동반하는 균혈증을 자주 일으키며 특히 소아 및 노인 환자에게서 위험이 높다. 대역어 영어 salmonella enterica subsp. choleraesuis ☞ 대역어의 학명 표기에서 속명의 첫 글자는 대문자로 써야 하고, 속명과 종소명은 이탤릭체로 써야 한다. 따라서 salmonella enterica subsp. choleraesuis는 Salmonella enterica subsp. choleraesuis로 수정되어야 한다.”-57쪽 신현동 교수의 《곰팡이과학자가 펼친 우리말샘》은 국어사전을 완전히 독파하고 문제점을 지적한 책은 아니다. 그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간 평생 곰팡이만 공부했고, 오늘도 새로운 곰팡이를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도 미생물학, 식물학, 동물학, 의학, 약학, 수의학, 농학, 환경학 등 여러 분야의 단어를 들추면서 용어의 적절성이나 한자의 쓰임새를 살피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꼼꼼히 메모했다. 틈틈이 개방형 국어사전 <우리말샘>에 낱말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지만, 제보에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아 책으로 출간하기로 마음을 먹고 혼자서 꾸준히 정리해 왔다. 과학자로서 이러한 작업은 힘들고 또한 낯선 일이지만 오류나 개선 사항을 정리하여 <국어사전> 발전에 힘을 보태고자 이 책을 내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현동 교수는 <국어사전>에 대한 아쉬움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말샘> 홈페이지에 표제어가 매일 추가되고 있지만, 공개된 항목을 살펴보면 대부분 행정구역명이나 단체명이라 아쉬움이 있다. 그보다 더 시급한 부분이 바로 전문용어의 추가일 것이다. 전문용어의 추가는 전문가의 참여가 있어야 하고, 전문가는 책임 있는 자세로 전문용어의 범주와 자격에 대하여 큰 고민을 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일례로, '항아리곰팡이병'은 타임지(TIME)의 표지에 소개될 정도로 국제적인 생물 개체수 감소 또는 멸종의 대표적 사례이며, 그 발원지가 한반도라서 더욱 유명하고 국내 학술자료와 뉴스미디어에도 흔히 등장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말샘>에 등재되지 못한 것은 사실상 전문가들이 사전 편찬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참여하지 않은 탓이다.” 완전히 공감한다. 일본어 전공자로서 우리말 속에 들어 있는 ‘일본어 찌꺼기’를 밝혀오고 있는 일을 평생 해오고 있는 사람으로서 신현동 교수처럼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할 말이 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필자다. 계속해서 신현동 교수의 고뇌에 찬 고백을 하나 더 들어보자. “이번 책은 불과 1년 정도 모은 단어인데도 이렇게도 많은 오류가 발견되었다. 그러한 오류 중에 인문학 분야의 오류는 거론하지 못했고, 과학, 특히 생명과학(의학 포함) 분야의 오류만 정리한 것이다. 이 경우도 좀 복잡한 것들은 나중을 위해 미루어 두었고, 비교적 간단한 오자, 한자의 오류, 철자의 오류, 너무 엉뚱한 해설 등을 주로 다루었다. 과학용어 중에 일본에서 만들어진(소위 근대어의 영역에 속하면서 1800년대 후반에 독일 등에서 수입된 학술용어를 한자로 표기했던 것) 용어가 근년에, 대략 1940~50년대 즈음에 대량으로 폐기되었고, 새로운 용어로 대체되었다. 완전히 폐기된 용어는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용어가 버젓이 우리나라 <우리말샘>에 등장하고 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이런 단어들을 하나하나 추적하여 일본에서의 폐기 근거를 제시하고, 우리나라에는 어떤 경과를 거쳐 아직도 국어사전에 남아 있는지 밝히는 일은 누군가 거론하고 정리해야 할 임무라고 본다.” 이처럼 곰팡이과학자의 <국어사전>의 문제점에 대한 애정이 어린 시선은 끝이 없다. “이런 폐기된 용어(단어)를 어찌할까 고민도 해 보았지만,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기에 엄두가 나지 않아, 지금 천장만 쳐다보는 중입니다. 선생님(필자)께서 출판하신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 국어사전》에서 예시된 단어들은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이라서 누구나 공감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용어의 '사쿠라'와 '오염'은 오직 극히 일부 과학자들만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오직 저 혼자만 알고 있는 것들도 많을 것입니다. 제가 시간이 많다면 더 연구하고 탐색하고 싶지만, 메모만 하고, 추적은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아! 신현동 교수도 필자와 같은 <국어사전>의 문제점에 대해 가슴앓이하고 계셨구나 싶은 생각에 가슴이 짠하다. 왜,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가슴앓이’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왜? 필자는 신현동 교수가 보내준 《곰팡이과학자가 펼친 우리말샘》 책을 손에 들고 지난 한 달여를 읽고 또 읽으며. '한글날 첫 기념 백돌이자 훈민정음 반포 580돌'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 나라 곳곳에서는 한글날을 맞아 각종 일회성 행사를 치르느라 정신이 없다. 잔치도 중요하지만 우리말글이 수록된 <국어사전>에 대한 대대적인 손을 봐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구상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필자 역시 오랜 시간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고 단행본을 내고 있지만 달걀로 바위 깨기다. 유독 한글날이 되면 필자는 신현동 교수와 같은 생각에 마음이 아리다. 개선의 여지는 아예 없는 것일까? 신현동 교수는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4 BC ~ 45 AD)의 라틴어 명언을 들어 <국어사전>의 오류를 지적한다. "Errare humanum est, sed in errare perseverare diabolicum"(실수를 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나, 실수를 고집하는 것은 악마의 일이다. 또는 "실수는 인간의 일이고,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악마의 일이다") 신 교수는 <국어사전>은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인간의 실수로 인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수가 반복되거나 수정되지 않은 채 내버려둔다면 끔찍한(diabolical)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한글날을 맞아 우리 <국어사전>의 여러 문제점을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히 해결해 나가는 구체적이고도 장기적인 계획이 있어야 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국어사전의 문제점을 꼼꼼하게 살핀 신현동 교수의 《곰팡이과학자가 펼친 우리말샘》 책은 자비 출판이라고 들었다. 아쉽게도 8월 20일 출간된 책이 아직도 교보문고 등 국내 대형서점에서는 검색되지 않고 있다. 겨우, 국립중앙도서관 한곳에서만 검색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을 독자들이 읽어야 우리 <국어사전>의 실상을 알 것이 아닌가! 아쉬운 대목이다. 이 글은 신현동 교수의 책과 신현동 교수와 나눈 번개글(이메일) 편지를 토대로 작성한 글이다. <곰팡이과학자 신현동 교수는 누구인가?> 겅원대 농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곰팡이계통분류학이다. 산과 들을 누비며 곰팡이를 수집하여 유전자원으로 영구보존하는 일에 땀을 흘리고 있다. 실험실에서는 곰팡이들의 미세구조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친인척 관계를 밝혀 곰팡이족보를 만드느라 애쓰고 있다. 곰팡이 신종 발견과 개명을 통하여 명명자로 지은이 이름 H.D. Shin이 들어간 곰팡이 학명이 200여 종에 이른다. 곰팡이 연구로 300여 편의 논문과 약 20권의 저(역)서를 발표했다. 국제학술지 「Mycobiology」의 제호를 직접 지었다. 국제학술지 「Mycoscience」에서 첫 한국인 편집위원과 온라인 학술지 「Mycosphere」에서 초대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곰팡이학(균학, 균류학) 분야 영향력 지수 세계 1위의 국제학술지 「Studies in Mycology」에서 처음이자 유일한 동양인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 지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이 약력은 신현동 교수의 또 다른 책인 《곰팡이가 없으면 지구도 없다》(교보문고)에 나오는 작가 정보를 토대로 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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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철과 도선국사―법맥을 따라 남도로 흐른 차향
[우리문화신문=손병철 철학박사/시인] 신라 하대의 산문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경전의 뜻을 글로 풀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직접 바라보아 본성을 깨닫고자 하는 선종(禪宗)이 당나라에서 들어왔다. 선종의 전래는 단지 새로운 불교사상의 유입만을 뜻하지 않았다. 선승들이 당나라의 쩔에서 생활하며 익힌 수행 방식과 일상의 규범, 공양과 음다의 풍속도 함께 바다를 건너왔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곡성 태안사의 적인선사 혜철과 광양 옥룡사의 도선국사를 만나게 된다. 적인선사 혜철(寂忍禪師 慧徹, 785~861)은 신라 서라벌 출신으로, 열다섯 살에 출가하여 부석사에서 화엄을 배웠다. 경전과 계율을 익힌 그는 서른 살이 되던 814년 당나라로 건너가 마조도일의 제자인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 선법을 배우고 심인(心印, 처님의 깨달음)을 받았다. 이후 중국의 여러 지역을 편력하고 천태산 국청사에 머물렀으며, 서주 부사사에서는 대장경을 공부하였다. 839년 귀국한 뒤 무주의 쌍봉사를 거쳐 곡성 태안사에 머물면서 동리산문(桐裏山門)을 열었다. 혜철이 중국에서 어떤 차를 마셨는지, 제자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차를 달여 주었는지를 알려 주는 직접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유학하던 9세기 당나라는 차가 절과 도시의 일상에 깊이 들어온 시대였다. 특히 선종 절에서는 좌선 중의 졸음을 물리치고 정신을 맑게 하며, 스승과 제자가 법을 묻고 답하는 자리에 차를 나누는 풍속이 널리 퍼져 있었다. 따라서 혜철이 중국에서 선법만 배우고 차생활은 전혀 접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는 당시의 시대환경과 선종 절의 생활을 통해 헤아린 것이므로, 확인된 사실과 역사적 추정을 구별하여 이해해야 한다. 혜철이 돌아와 자리 잡은 태안사는 섬진강과 보성강의 물길이 가까운 곡성 동리산에 있다. 산과 계곡이 깊고 습윤하여 차나무가 자라기에 알맞은 남도의 자연환경이다. 혜철은 이곳에서 백여 명의 제자를 길러냈으며, 그의 법은 여선사ㆍ윤다ㆍ도선ㆍ경보 등으로 이어졌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적인선사탑은 그가 남도에 심은 선법의 뿌리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말해 준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 팔각원당형 승탑의 뛰어난 조형성을 인정받아 202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혜철의 문하에서 특히 주목되는 제자가 도선(道詵, 827~898)이다. 영암에서 태어난 도선은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화엄사에서 화엄을 배우고, 다시 혜철을 찾아가 선법을 익혔다. 도선은 훗날 풍수지리와 비보사상(裨補思想, 자연적 여건이나 풍수지리적 환경에서 나타나는 결함이나 부족한 기운을 인위적으로 채우고 보완하여 길하게 바꾸고자 하는 사상)의 대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사상의 밑바탕에는 화엄의 상즉상입(相卽相入, 우주 만물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긴밀하게 융합되어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존재의 실상)과 선종의 실천정신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세상 만물이 서로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산과 물, 사람과 집, 사찰과 마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보는 그의 사유는 단순히 좋은 묏자리나 명당을 찾는 술법에 머물지 않았다. 도선이 스승으로부터 법을 배우는 자리에 차가 있었는지는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선법이 가르침의 말만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고 수행하는 가운데 몸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차를 달이고 나누는 산문의 생활문화 또한 자연스럽게 계승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차는 경전처럼 문자로만 전해지는 가르침이 아니다. 물을 긷고, 불을 피우고, 차를 달여 스승에게 올리며, 한 그릇의 차를 사이에 두고 묻고 답하는 일상의 행위 속에서 전해진다. 그러므로 혜철과 도선 사이의 차맥은 특정한 차 이름이나 제다법의 전수가 아니라, 선 수행과 차생활이 서로 스며드는 생활의 계승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도선은 864년경 광양 백계산의 옥룡사에 들어가 898년 입적할 때까지 35년 동안 머물렀다. 그는 그곳에서 수백 명의 제자를 길러 옥룡산문의 법맥을 이루었다. 현존하지 않는 「옥룡사 선각국사비」에는 도선이 화엄사에서 공부하고 혜철에게 배운 뒤 옥룡사를 중수하여 오랫동안 정진한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옥룡사는 도선의 사상이 실제 공간으로 드러난 곳이었다. 그는 자연을 억지로 정복하거나 인간의 뜻에 맞게 바꾸기보다, 땅의 부족한 기운을 보충하고 산천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길을 찾았다. 비보(裨補)란 결함이 있는 땅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심고 물길을 살피며 절과 탑을 세워 그 땅이 지닌 생명력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이러한 사상은 좋은 차가 명산의 이름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흙ㆍ물ㆍ햇빛ㆍ안개ㆍ나무와 그것을 돌보는 사람의 정성이 서로 감응할 때 태어난다는 차의 이치와도 통한다. 옥룡사터 일대에서 발견된 완(사발) 조각과 절 주변에 이어져 온 자생차의 흔적은 옥룡사가 오랫동안 음다문화와 인연을 맺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출토된 완을 곧바로 도선이 사용한 찻그릇이라고 단정하거나, 오늘날의 자생차를 도선이 직접 심은 차나무의 후손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도선 개인의 차생활을 증명하는 직접 사료라기보다, 그가 머물렀던 남도 산문에서 차문화가 지속적으로 형성될 수 있었던 자연적ㆍ문화적 환경을 보여 주는 자료다. 도선과 광양 차문화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도 직접 기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먼저 밝히고, 혜철의 법맥과 옥룡사 유적, 자생차 환경과 후대의 전승을 종합하여 그 관련성을 살피고 있다. 신라 하대에 성립한 구산선문은 대부분 당나라에서 선법을 익힌 선승들에 의해 열렸다. 도의의 가지산문, 홍척의 실상산문, 혜철의 동리산문, 도윤의 사자산문, 무염의 성주산문, 범일의 사굴산문, 도헌의 희양산문, 현욱의 봉림산문, 이엄의 수미산문이 그것이다. 이 산문들은 왕경에서 멀리 떨어진 산과 강가에 수행 공동체를 이루었다. 차는 이 산문에서 좌선을 돕는 맑은 음료자, 불전에 올리는 공양이며, 스승과 제자와 손님을 이어 주는 따뜻한 매개가 되었을 것이다. 혜철과 도선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어떤 특별한 차의 이름이나 화려한 다구가 아니다. 그것은 차가 땅과 물에서 태어나 사람의 손을 거쳐 다시 마음을 맑히는 순환의 문화다. 혜철은 당나라에서 받아들인 선법을 동리산에 심었고, 도선은 그 법을 산천과 인간의 조화로 넓혔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법맥은 문헌으로 확인되지만 차맥은 생활과 환경 속에서 복원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차는 기록된 차라기보다 산문에 스며든 차이며, 한 잔의 이름보다 더 오래 남은 수행의 풍속이었다. 심물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차나무와 샘물, 찻그릇과 불, 차를 달이는 사람과 마시는 사람은 각각 고립된 물(物)이 아니다. 서로 감응하여 새로운 생명과 의미를 이루는 활물(活物)이다. 차를 달이는 동안 산의 기운은 물에 들고, 물의 맑음은 차에 스며들며, 차의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혜철에게서 도선으로 이어진 가르침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말로 전한 법은 마음으로 들어가고, 마음에 들어간 법은 다시 산천을 살리는 행위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동리산에서 피어난 선의 한 줄기는 백계산 옥룡사로 흘렀고, 그 법맥을 따라 남도의 산사에는 차향이 스며들었다. 혜철은 선과 차가 함께 머물 수 있는 산문의 문을 열었으며, 도선은 그 문을 지나 산과 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더 넓은 세계로 나갔다. 한 사람은 마음의 터를 열고, 한 사람은 산천의 터를 살렸다. 그 사이를 흐른 한 잔의 차는 법맥이면서 차맥이었고, 신라의 선이 고려의 차문화로 건너가는 고요한 물길이었다. (2826.10.8. 불한산방에서 라석)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