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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끝내 꺾이지 않았던 빛, '굳세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그림 속, 국립 5·18 민주묘지의 푸른 잔디 위로 뉘엿뉘엿 저무는 노을빛이 장엄하게 내려앉고 있습니다. 추모비 앞에 수많은 시민이 모여 고개를 숙인 채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모으고 있지요. 분향대에서 피어오르는 은은한 향연은 그날의 아픔과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우리의 다짐처럼 하늘로 부드럽게 피어오르고, 둘레에 가득 피어난 붉은 장미들은 슬픔 속에서도 피어난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결실을 닮았습니다. 두려움에 맞서 서로를 지켜냈던 이들의 넋을 기리는 정숙하고도 경건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슬픔을 넘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겁고 단단한 무언가가 차오름을 느끼게 됩니다. 꿋꿋하게 뜻한 바를 밀고 나아가는 '굳세다' 5·18 민주화운동 46돌을 맞아 광주 곳곳에서 추모 음악회와 시민 걷기 행사, 당시의 생생한 기록을 돌아보는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는 기별을 보았습니다. 특히 그림 속 풍경처럼 오늘날의 젊은 세대와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하여 그날의 아픔을 보듬고 민주주의의 참뜻을 기억하려는 모습이 참으로 뜻깊고 든든하게 다가옵니다. 오늘 우리가 마음 깊이 새겨볼 토박이말은 '굳세다'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말을 '뜻한 바를 굽히지 않고 밀고 나아가는 힘이 있다'라고 풀이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말은 무언가 단단하게 응축된 상태를 뜻하는 '굳다'와 힘이 있는 상태를 뜻하는 '세다'가 어우러진 짜임으로 된 낱말입니다. 거칠고 투박하게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느낌이 아니라,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속으로 단단히 버텨내며 끝내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기운을 담고 있는 참 아름다운 말이지요. 우리 삶을 지탱하는 굳센 마음의 힘 46년 전 5월 광주의 시민들이 보여준 모습은 그저 '용감했다'는 말만으로는 다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몰아치는 두려움과 공포 앞에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지켜내려 했던 마음, 억눌림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으려 했던 그 꿋꿋함의 바탕에는 바로 굳센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림 속 시민들이 바치는 정성어린 추모처럼, '굳센 의지'로 민주주의의 새벽을 깨웠던 역사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자유로운 숨을 쉴 수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거센 바람이 불어와 마음이 휘청이고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어지는 순간을 마주하곤 합니다. 하지만 어두운 시대를 밝힌 것이 끝내 꺾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굳센 마음이었듯,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어떤 어려움이든 묵묵히 버텨낼 수 있는 단단한 씨앗이 숨겨져 있습니다. 쉽게 꺾이지 않는 그 굳센 마음을 믿고, 오늘 하루도 힘차게 걸어가 보셔도 좋습니다. [마음 나누기] 나날살이에서 마음이 흔들리거나 지칠 때, 여러분을 다시금 단단하게 붙잡아 주는 '굳센 버팀목'은 무엇인가요? 식구들의 따뜻한 한마디도 좋고, 스스로 되뇌는 다짐도 좋습니다. 무너지지 않고 나아갈 힘을 주는 여러분만의 굳센 이야기를 댓글로 나누어 주세요. 여러분의 소중한 공감과 공유가 모여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빛이 됩니다. [한 줄 생각] "어두운 시대를 밝힌 것은 끝내 꺾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굳센 마음이었습니다." [오늘의 토박이말] ▶ 굳세다 뜻: 뜻한 바를 굽히지 않고 밀고 나아가는 힘이 있다. 보기: 그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굳세게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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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보완으로 재탄생한 석가모니 일대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베스트셀러는 종종 판을 바꾸어 다시 펴내고, 그때마다 저자는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갑니다. 조선시대에 책을 출판하는 일이 오늘날과 같지는 않았지만, 1459년에 세조가 편찬한 《월인석보(月印釋譜)》가 오늘날로 치면 수정, 증보로 완성도를 높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앞 두 글자 ‘월인’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의 앞 두 글자 ‘석보’를 합하여 붙인 책 이름입니다. 그럼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은 어떤 책들일까요? 먼저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아들의 명복을 빌며 1446년에 세종의 비이자 당시 수양대군이었던 세조의 어머니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1446)가 수양대군의 사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세종은 수양대군에게 “왕후의 명복을 비는 데는 불경을 옮겨 쓰는 것만 한 일이 없으니, 네가 석가모니의 행적을 편찬하여 번역함이 마땅하다.” 하셨습니다. 이에 수양대군은 1447년에 석가모니의 전기를 모아 《석보상절》을 펴내고 이를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세종께 올렸습니다. 이를 보신 세종이 《석보상절》에 담긴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노래 형식의 훈민정음으로 지어 ‘월인천강’이라 하였으니, 그 뜻은 달빛이 천 개의 강에 비추듯 부처의 자비가 모든 중생을 비춘다는 것입니다. 1457년에 세조는 큰아들 의경세자(懿敬世子, 1438~1457)를 먼저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슬픔에 휩싸인 세조는 아들과 돌아가신 부모님을 추모하기 위해 승려들의 자문을 받으며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다시 다듬고 보충하여 새로운 형식의 석가모니 일대기를 펴냈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1459년에 완성된 《월인석보》입니다. 공백 메우기 이러한 편찬의 내력과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월인석보》의 관계는 《월인석보》 권1에 실려 있는 《월인석보》 서문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은 현재 일부만 남아 있고, 이 책들과 관련된 다른 기록도 없기 때문입니다. 《월인석보》 권1에는 《석보상절》의 서문도 실려 있어 《석보상절》이 1447년에 완성되었다는 사실과 편찬 과정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월인석보》에 수록된 《석보상절의 내용들은 일부만 남은 《석보상절》의 공백을 메워주기도 합니다. 《월인천강지곡》의 공백을 메워주는 것도 《월인석보》입니다. 《월인천강지곡》은 원래 상중하 세 권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상권 194수만 온전하게 남아 있고 《석보상절에 몇 수가 섞여 전합니다. 다행히 《월인석보》에 실려 있는 《월인천강지곡》을 통해 《월인천강지곡》이 580여 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수록 순서나 내용 등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월인석보》도 전체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전모를 볼 수 없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무엇보다 《월인석보》 권1의 첫머리에는 “‘나랏말ᄊᆞ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하는 《훈민정음 언해본》이 실려 있어,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이 이 모든 작업의 중심이자 매개임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시각적 효과 《월인석보》는 단순히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해서 새로 편찬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석보상절》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쓴 《석가보》를 비롯하여 《묘법연화경》, 《아미타경》, 《대방편불보은경》 등의 불경을 바탕으로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산문 형식으로 편찬한 것입니다. 전체가 남아 있지 않지만 25권 정도로 나누어진 듯합니다. 반면 《월인천강지곡》은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노랫말 형식의 운문으로 지은 것입니다. 세조는 《월인석보》를 펴내면서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유기적으로 결합했습니다. 곧 석가모니의 일생과 관련하여 펼쳐지는 내용들의 단락을 나누고 먼저 《월인천강지곡》을 수록했습니다. 이어서 해당하는 《석보상절 부분을 넣었는데, 불경 내용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것으로 《석보상절》 원본보다 더 자세합니다. 그리고 용어나 내용에 대한 보충 설명인 주석도 해당하는 부분 근처에 넣었습니다. 이 또한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훨씬 다양하고 풍부하게 보완했습니다. 《월인석보》는 이러한 구성 의도가 한눈에 드러날 수 있도록 특별한 편집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먼저 《월인천강지곡》의 내용은 첫 번째 칸에서 시작하고, 이 내용에 해당하는 《석보상절은 두 번째 칸부터 시작하도록 배치했습니다. 주석은 해당 내용 가까이에 두 줄의 작은 글씨로 넣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독자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부분, 주석 부분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월인천강지곡》은 《석보상절보다 큰 글자를 사용하고 《석보상절은 주석보다 큰 글자를 사용함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한자의 음을 표기한 훈민정음 서체와 일반 서체의 크기도 달리하여 시각적으로 차이를 인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운문인 《월인천강지곡》을 먼저 배치하고, 이어서 경전 내용인 《석보상절》을 배치한 편집 방식은 불경의 일반적인 전개 방식, 곧 경전의 내용을 먼저 쓰고 부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형식으로 지은 게송(偈頌)을 배치하는 방식과 반대됩니다. 이처럼 부왕이 지은 내용을 앞세우고 더 큰 글자를 사용함으로써 부왕을 존경하는 뜻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효과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은 금속활자로 인쇄했기 때문에 서체가 같지만, 목판본인 《월인석보》는 두 책과 서체가 다릅니다. 특히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의 ‘ㆍ’ 모양이 둥근 점인 것과 달리 《월인석보》의 ‘ㆍ’는 오른쪽으로 내리긋는 사선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붓글씨에 적합한 형태로 서체가 변화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월인석보》는 훈민정음 표기법에서 차이를 드러낼 뿐 아니라 한자와 훈민정음의 크기와 배치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월인천강지곡》에서는 훈민정음 아래 작은 글자로 한자를 병기한 것 외에는 훈민정음만 사용했습니다. 반면 《월인석보》는 한자를 앞세우고 훈민정음을 그 아래 작은 글자로 표시했습니다. 《석보상절》은 《월인석보》와 같은 형식으로 훈민정음과 한자를 표기하였지만, 훈민정음이 한자보다 커서 눈에 잘 들어옵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든 세 책의 이러한 차이는 훈민정음을 어떻게 표기하고 활용, 보급할까에 대한 당시의 고민을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극적인 이야기 이제 《월인석보》 권20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권20에는 《월인천강지곡》 제341수에서 411수까지 수록되어 있습니다. 실제 《월인천강지곡》의 이 부분이 현존하지 않아 원래 이 내용이 341~411수에 해당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석가모니의 일생과 관련된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대개 비슷하다고 믿을 만합니다. 《월인석보》 권20은 《월인천강지곡》 341~411수를 341수, 342~346수, 347~348수, 349~405수, 406~411수, 이렇게 5단락으로 나누어 먼저 수록하고 이에 해당하는 《석보상절을 조합했습니다. 341수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가섭이 석가모니가 영산회에서 연꽃 한 송이를 대중에게 보이자, 그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는 부분을 노랫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한다고 할 때 쓰는 ‘염화미소(拈花微笑)’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석보상절》을 옮겨온 것으로, 《불조통기(佛祖統紀)》 권5 등에 나오는 ‘염화미소’ 관련 부분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월인천강지곡》 342~346수는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 「서품(序品)」과 「효양품(孝養品)」을 뒤친(번역한) 것입니다. 부처와 부모의 은혜를 갚기 위한 석가모니의 여러 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대방편불보은경》 설법의 시작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347~348수는 《대방편불보은경》 「자품(慈品)」에 나오는 내용으로 석가모니 10대 제자의 한 사람인 사리불(舍利弗)의 죽음과 전생에 관한 내용입니다. 349~405수는 석가모니의 전신이었던 수대나태자(須大拏太子)가 자신의 처자까지 바치면서 불도를 닦은 이야기를 담은 《태자수대나경(太子須大拏經)》의 내용입니다. 마지막 406~411수는 《대방편불보은경》 「효양품」에 나오는 수사제태자(須闍提太子)의 전생에 관한 내용입니다.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과 그 말씀을 담은 불경 자체가 극적이고 감동적인 요소를 담고 있지만, 《월인석보》 권20에 이런 내용들이 더욱더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리불의 죽음과 전생, 수대나태자와 수사제태자의 이야기가 그런 예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태자수대나경》, 《대방편불보은경》과 같은 원래의 경전을 따랐지만, 한문 순서를 바꾸거나 줄여 번역한 곳도 있고 경전에 없는 내용을 상세하게 묘사하기도 하여 빈틈없이 짜인 고대소설을 보는 것처럼 극적이고 흥미롭습니다. 이런 극적인 이야기는 독자에게 부처의 일생 곧, 열반에 도달하기 위해 효도와 보시를 실천했던 삶을 더욱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특히 사리불의 죽음과 전생, 수대나태자의 전생에 관한 내용은 주석 형식인 작은 글자로만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석보상절》 편찬 당시에는 없던 내용을 새로 추가하거나 더 자세하게 보충해 넣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월인석보》를 펴내면서 석가의 일대기를 어떻게 하면 더 감동적이고 극적으로 전달할지 깊이 고민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