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호심 기자] 1960년대의 월남에 대한 관심을 대변하는 노래이다. 매우 시사적인 점도 있지만, 이 노래가 사랑을 받았던 것은 이 곡의 독특한노래 분위기라고 하겠다. 김추자의 특징 있는 음색이 그러한 분위기에 더욱 보탬이 되고 있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이제서 돌아왔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너무나 기다렸네 굳게 닫힌 그 입술 무거운 그철모 웃으며 돌아왔네 어린 동생 반기며 그품에 안겼네 모두다 안겼네 말썽많은 김총각 모두 말을 했지만 의젓하게 훈장달고 돌아온 김상사 김추자의 데뷔곡인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는 의외의 큰 성공으로 신인 무명가수를 일약 정상급으로 올려놓았다. 작곡가 신중현은 당시 이 노래를 작곡하면서 작곡자의 새로운 자세를 제시하기도 했다. 곧 그는 신인 김추자가 가요계에 발을 드려놓기 전에 창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고, 이 점을 장점으로 발굴해 내기 위해 바로 이 곡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작곡자는 무턱대고 작곡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부를 가수의 특기, 특징, 음색, 창법까지 계산해가며 여기에 어울릴 곡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신중현, 김추자 콤비는 당시 가요계에 새바람을 일으키며 확고하
[우리문화신문=김호심 기자]'살짜기 옵서예'는 1966년 초 최창권이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단체인 '예그린 악단'의 음악 지휘자로 취임하면서 발표한 뮤지컬 이다. 또'살짜기 옵서예'는 여색을 멀리하는 배비장과 천하일색 제주 기생 애랑의 사랑 이야기가 토대를 이루는 내용으로 조선의 풍자소설 배비장전을 뮤지컬화 했다. 애랑이라는 미모의 기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여기에 배비장이니 정비장을 등장시켜, 가식만을 내세우는 형식주의적인 양반의 인습을 코믹하고도 사실적으로 풍자한 이 설화는 오늘날까지도 조선 풍자소설의 백미로 일러지고 있다.영정조의 시대에는 이것을 대본으로 하는 창극(판소리)이 발표되었던 기록이 있으니 확실히 뮤지컬로 안성맞춤인 소재인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이 '살짜기 옵서예'는 뮤지컬로서 한국 최초의 시도였다고 하는 데에 큰 의의가 있는 작품 이었지만 그만큼 관계자의 고심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반면에 또 그 성패는 한국에 있어서 뮤지컬의 장래를 점치는 것으로 큰 관심을 쏠렸지만, 다행히 흥행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어 밝은 장래를 약속하는 것이 되었다. 초연에서의 주연은 패티 김, 그녀는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알려진 가수이다.'살짜
[우리문화신문=김호심 기자]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별들이 다정히 손을 잡는 밤 기어이 가신다면 헤어 집시다 아프게 마음새긴 그말 한마디 보내고 밤마다 울음이 나도 남자답게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1967년에 발표된 '뜨거운 안녕'은 정원, 트위스트 김과 더불어 1960년대 극장 쇼의 인기 스타로 군림했던 쟈니 리의 노래다. 이보다 앞서 이 곡의 작곡자인 서영은은 무더운 초여름에 서울 시내 체부동의 2층 방에서 이 노래의 주제를 잡아놓고 연습을 거듭하여 다듬었다.소리높여 매일 "뜨거운 안녕"하는 통에 동네에서는 시끄럽다고 진성서를 파출소에 냈다. 진정서를 받아든 경찰은 작곡자를 찾아와 주민들의 신고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연습을 삼가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것은 작곡자에게 음악을 버리라는 말과 별 차이 없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찌는듯한 한낮의 더위 속에서도 꼼짝없이 문을 닫고 땀을 흘려가며 연습을 했다. 이렇게 '뜨거운 안녕'은 뜨겁게 만들어졌다. 이 곡은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다.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여자를 돌려보내고 남자는 밤마다 울음이 나도 참으며 남자답게 그녀를 향해 뜨겁게 '안녕히라며 이별 인사를 하겠다는 것
[우리문화신문=김호심 기자] 정훈희의 목소리는 참 특이하다. '김상희'가 동물성이고 '이미자'가 식물성이라면 '정훈희'의 목소리는 다분히 광물성에 가깝다. 처음 듣게 되면 아주 따가운 느낌을 받는다. 동시에 무척 차갑다. 그러나 '정훈희'의 매력은 바로 이런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아~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엽없이 나는 간다...... 1967년에 발표된 정훈희의 ‘안개’는 박현 선생이 노랫말을 쓰고고 이봉조 선생이 곡을 붙인 작품이다.어느 거리인지는 모르지만, 실연당한 여인이 안개가 자욱한 거리를 거닐며 추억에 잠기게 된다.사랑했던 남자는 어딘가로 떠나가 버렸다. "생각하면 무엇하나" 하지만 연인에 대한 "애타는 마음"으로 그녀는 발걸음이 무겁다. 정훈의 매력이 짙게 뭍어나는 노래라 할 것이다. 이 노래가 히트하자 노래를 소재로 한 영화도 나왔다. 정훈희는 그뒤에 몇편의 영화에도 출연하여 연기자로서의 실력과 풍만한 육체미를 과시하기도 했다.이봉조 선생의 이 곡은 특히 동경가요제에 나
[우리문화신문=김호심 기자] 아리랑 목동은 민요풍의 노래이다. 우리 민요 아리랑에서 곡이 발상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다.이 곡을 처음 녹음했던 가수는 박단마(1955년)였다. 이 후 김치 캣츠가 재 녹음하여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대중화를 타기 시작한 건 1980년대 프로야구 리그에서 응원가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스포츠 경기에서의 응원가로도 굳어졌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 아주까리 동백꽃이 제아무리 고와도 동네방네 생각나는 내 사랑만 하오리까 아리아리 동동 쓰리쓰리 동동 아리랑 콧노래를 들려나 주오 4월 봄날의 시골풍경이 잘 나타나 있다. 바구니를 끼고 나물 캐러 나가는 시골 처녀의 첫사랑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 시골에서 아가씨들이 봄이면 나물 캐러 나가는 것을 다목적으로 이용했다. 눈에 맞는 총각과의 데이트 시간이기도 하고, 무료한 봄날의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진짜 싱싱한 봄나물을 캐다가 식탁을 즐겁게 하려는 목적도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시골의 나물 캐는 정경은 노래의 좋은 소재인 것 같다.
[우리문화신문=김호심 기자] 이미자하면 동백 아가씨이었고, 동백 아가씨 하면 '이미자'로 통할만큼 이 노래의 경이적인 히트로 이미자는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때가 있었다. 그녀가 1964년 발표한 동백 아가씨는 당시 신성일, 엄앵란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 주제가였다. 지구 레코드의 임정수 사장이 백영호 선생의 곡을 받아 주어서 그녀가 부른 것이었다. 곡 자체도 좋았고, 특별한 감정을 붙이지 않아도 저절로 감동이 우러나왔다. 특히 가사의 내용에 충실한 감정을 가지고 부르다 보니 애절한 노래가 탄생한 것이다. 한때 동백 아가씨가 금지곡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났을 때도 그 노래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통하여 전해졌다. 이후 동백 아가씨 이 노래 하나로 이미자는 불멸의 가수가 돼버렸다. 국군이 파병됐던 베트남 전쟁터에서는 동백아가씨가 비둘기부대의 사단가처럼 불리기도 할 정도였다. 물론 이미자는 위문공연 가수 중에서 가장 인기 높은 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