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이용준에 의해 기적적으로 발견되었다. 1446년(세종 28년)에 세종대왕이 직접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 목판본은 오랜 세월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발견 당시 표지를 포함 두 장, 모두 네 쪽이 찢겨 있었다. 그것을 간송 전형필 선생이 큰돈으로 사서 지금은 간송미술문화재단(서울시 성북구)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책은 1962년에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고,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올랐다. 이 책을 통해 훈민정음 창제 원리와 훈민정음 반포의 참뜻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 책은 2015년에 간송미술문화재단과 교보문고에 의해 처음 복간되었다. --------------------------------------------------------------------------------------------------- Discovery of the “Hunminjeongeum” Haerye in Andong, Gyeongbuk [Illustrated History of Hangeul 28] Professor Kim Sle-ong In 1940, a mi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926년, 한글 반포 480주년을 맞아 한글날 기념식 ‘가갸날’이 열렸다. 민족주의 국어학자들의 단체인 조선어연구회가 주최한 기념식에서 처음으로 가갸날을 선포했으며, 가갸날은 오늘날의 한글날이 되었다. 한글은 ‘가갸거겨, 나냐너녀’ 하는 식으로 배울 때라 언문, 가갸글 등으로 불려왔다. 그러다 1910년대 조선어 연구회에서 ‘으뜸가는 글, 하나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지어서 쓰게 되었다. 가갸날은 1928년부터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 The “Gagya Day” Celebration for Hangeul Day [Illustrated History of Hangeul 27] Professor Kim Sle-ong In 1926, marking the 480th anniversary of the invention of Hangeul, the first official celebration of Hangeul Day,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907년(고종 44년),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주시경 선생이 남대문 시장 부근의 상동 교회에 있던 상동청년학원 안에 한글 강습소를 열었다. 주시경 선생은 1914년 운명할 때까지 한글 강습소에서 김두봉, 최현배 등 많은 제자를 길렀다. 제자들은 1921년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 전신, 현 한글학회)를 조직하여 주시경의 뜻을 이어 한글 보급과 연구에 앞장섰다. 상동 교회는 지금도 같은 지역 새로나 빌딩에 남아 있어 그때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 Opening a Hangeul Education Center at Sangdong Youth Academy by Professor Ju Si-gyeong [Illustrated History of Hangeul 26] Professor Kim Sle-ong In 1907 (the 44th year of King Gojong’s reign), linguist and independence activist Ju Si-gyeo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연재를 마치며] 이 글은 사실의 정확한 기록이 아니고 소설입니다. 소설은 저자의 작은 경험에다가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다는 커다란 허구입니다. 우리문화신문에 1년 반 동안 연재소설을 쓰면서 저는 즐거웠습니다. 30년 전 과거의 추억을 꺼내어 활자화하면서 저는 아련한 행복감에 젖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이제는 인공지능 인터넷 세상이 되었습니다. 몇 개의 낱말를 말하거나, 또는 입력하고 자판을 누르면 과거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소설에 등장한 여주인공 미스 K를 사진과 글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가 2002년에 여성동아 기자와 인터뷰한 기사가 검색됩니다. http://woman.donga.com/List/3/all/12/128748/1 그가 2009년에 일간연예스포츠 기자와 인터뷰한 기사도 검색됩니다. https://m.blog.naver.com/mr732177/90046247230 어디서나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소설에 등장한 남주인공 K 교수는 2015년에 정년을 맞았습니다. 지금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해발 550m 산골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시 한 편을 남기며 연재를 마칩니다. 그리움 네가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904년(고종 41년), 충청도 노성군에 살던 ‘백조시’라는 여인이 여산 군수에게 자신의 집안 재산으로 있던 논밭을 가로챈 서 씨를 고소한 소장을 작성하는 일이 있었다. 백씨 여인은 자신의 동생이 약값 3냥 5돈을 갚지 못한 것 때문에 서 씨에게 논밭을 빼앗긴 일을 뒤늦게 알고, 집안 재산을 찾아 달라고 여산 군수에게 억울한 사연을 호소한 것이다. 그 뒤로 양측의 주장이 상반되어 여러 차례 소장이 오갔다. 1894년 고종이 한글을 국문으로 선언한 뒤에도 공문서는 한자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로 공식 문서가 소통되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더불어 세종대왕이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토로할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들었는데, 이 문서 역시 그러한 정신이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pressing an Injustice in Hangeul [The Illustrated History of Hangeul 25] In 1904 (the 41st year of King Gojong’s reign), a woman named Baek Jo-si, who lived in Nosoeng-gun, Chungcheong Pro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는 골프장에서 가장 가까운 오산 병원에 실려 갔다. 응급실에 가서 X레이를 찍고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옆으로 공을 맞아서 생명에 지장은 없어도 3주 이상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단다. 미스 K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보호자처럼 K 교수를 따라다녔다. 검사실에서 치료실로, 치료실에서 입원실로 옮기는 동안 계속해서 동행했다. 병실이 부족해서 1인실로 입원이 결정되었다. 병실까지 그미가 동행했다. K 교수는 환자 침대에 누워 그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제 보아도 어디서 보아도 그미는 아름다웠다. 그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K 교수를 바라보았다. K 교수가 애틋하고 갈구하는 표정으로 그미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미가 천천히 다가와 K 교수의 손을 잡더니 허리를 굽혀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K 교수는 가슴이 뛰면서 황홀했다. 눈을 감았다.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다.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아.... 시간은 흘러갔다. 그미가 입술을 떼고 K 교수를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작지만 진심 어린 목소리로 그미가 말했다. “교수님, 그동안 여러 가지로 고마웠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896년(고종 33년), 우리나라 첫 순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발행되었다. 《독립신문》은 독립협회의 서재필ㆍ윤치호가 창간한 신문으로, 가로 22cm, 세로 33cm 4쪽짜리 신문이었지만 당시에는 혁신적인 일이었다. 그전에 발행된 신문들은 모두 한자로만 기사를 썼기 때문에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신문을 읽기 힘들었는데, 《독립신문》이 나오면서 누구나 쉽게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독립신문》은 나라의 발전과 민중의 계몽을 위하여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다. ----------------------------------------------------------------------------------------------------------------- The First Hangeul Newspaper, Dongnip Sinmun, Is Published [The Illustrated History of Hangeul 24] In 1896 (the 33rd year of King Gojong’s reign), the first newspaper written entirely in Hangeul, Dongnip Sinmun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골프장에서 낙뢰로 인한 사망사고는 종종 발생한다. 2009년 4월 제주도 서귀포시 롯데스카이힐 골프장에서 열린 ‘제2회 롯데마트 여자오픈’에 한국계 미국인 미셸 위 선수가 출전했다. 1라운드를 돌던 미셸 위는 골프장 건너편 오름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것을 본 순간 클럽을 내던지고 그늘집으로 대피했다. 이를 지켜보던 동반 플레이어들은 '아직 낙뢰주의보가 발령되지 않았는데 웬 호들갑?'이라는 눈치로 미셸 위를 바라봤다. 기자 한 사람이 그늘집으로 미셸 위를 따라가 “왜 경기 중지 지시가 있기 전에 그늘집으로 대피했나”라고 물었더니, “경기 중지 발령을 기다리다가 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 미리 대피하는 게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셸 위가 그늘집에 들어선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경기 일시 중지를 알리는 신호음이 골프장에 울려 퍼졌다. 국내 골퍼들은 대부분 날씨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약한 비가 오면 골프를 중단하지 않고서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장마가 한창인 여름이 아니라면 낙뢰가 떨어질 가능성도 작을 것으로 생각하고 경기를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낙뢰는 4계절 가운데 언제라도 발생할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894년(고종 31년) 고종은 칙령을 통해 한글을 조선의 주류 공식 글자로 선포했다. 당시의 대한제국 칙령 제1호로, “법률 명령은 다 국문으로 본을 삼고, 한역을 부하며, 혹 국한문을 혼용함.”이라는, 한글 전용 대원칙에 관한 법령이 공포된 것이다. 이 법령이 바로 널리 시행되지는 못했지만 450년 만에 한글이 나라의 공식 글자로 인정받았다는 것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 -------------------------------------------------------------------------------------------------------------------- Emperor Gojong Proclaims Hangeul as the National Script [The Illustrated History of Hangeul 23] In 1894 (the 31st year of King Gojong’s reign), Emperor Gojong issued a royal decree declaring Hangeul as the official script of Joseon. This was established und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흔히들 골프가 인생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골프를 치면서 인생을 배운다고 말한다. 어느 점에서 인생을 배울 수가 있을까? 사람마다 해설이 다를 수가 있겠으나, K 교수의 경험으로는 골프나 인생이나 마무리가 중요하다. 골프에서는 퍼터(주: 골프에서 그린에 올린 공을 홀을 향하여 칠 때에 사용하는 짧은 골프채)를 잘해야 그 홀을 성공한다. 드라이버(주: 골프에서 가장 거리가 많이 나는 긴 골프채)를 잘 쳐도 퍼터에서 실수하면 그 홀은 실패로 간주한다. 아마추어들은 골프 연습장에 가면 드라이버만 열심히 연습한다. 연습장에서 퍼터 연습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그러나 프로 선수들은 실제로는 드라이버보다 퍼터 연습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고 한다. 타이거 우즈가 2011년에 쓴 《How I play Golf》라는 책을 읽어보면 제1장은 퍼팅에 관한 설명이다. “드라이버는 멋, 퍼터는 돈”이라는 말이 있다. 드라이버는 멋있는 폼으로 세게 치면 거리가 200m 이상 나가니 기분이 후련하고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퍼터는 10m 이내 거리에서 살짝 밀어야 하니 호쾌한 기분을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점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