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3월에서 4월 사이 - 안도현 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꽃 핀 다음에는 산서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 제비꽃 피고 이제 봄이다. 아직 저 멀리 남촌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아직 여기까진 오지 않았지만, 봄의 전령사 얼음새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저 남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는 변산바람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또 섬진강 매화마을에서는 매화 바람이 불고, 머지않아 우리는 흐드러지게 피어 꽃보라를 일으키는 꽃들을 보게 된다. 그렇게 3월과 4월 사이에는 온갖 꽃들이 다투어서 핀다. 곧 온통 꽃의 수채화 세상으로 변할 텐데, 이를 두고 꽃의 아름다움이나 향기에 취하는 것을 토박이말로 '꽃멀미'라고 하고, 꽃보라가 인다고도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꽃향기 가득한 세상에 편지를 쓸 때 “꽃보라 맞고 꽃멀미 하셨나요?”라고 속삭인다.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세상, 안도현 시인은 그의 시 <3월에서 4월 사이>에서 산서고등학교 관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꼬리를 물고 - 박노해 산비탈 밭이 목 말라서 졸졸졸 흐르는 계곡 물줄기를 대나무 관으로 끌어와 물둥지를 만들었다 나로서는 수에즈 운하만큼 대단한 공사였다 물 본 김에 수련 몇 뿌리를 심었더니 붉은 연꽃이 피고 개구리밥이 뜨고 참개구리가 이주해 식구를 늘리기 시작한다 개구리 합창이 정이 들 때쯤 꽃뱀이 슬슬 나타나더니 뱀을 노리는 너구리가 어슬렁거리고 하늘에는 처음 본 솔개가 원을 그린다 얼마 전 일취스님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찾아서》라는 책을 펴냈다. “우리는 모두가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잘 사는 길도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이렇다 할 방법을 제시하기 힘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혼자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은 강한 것 같지만 매우 나약하기 때문에 동반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이 위안이 되고 보호받을 수 있다. 그리고 상대가 있어야 사람이 살고 있다는 생존의 가치성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책에서 스님은 말한다. 우리 겨레는 예부터 이웃은 물론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지 때 팥죽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봄이 오면 하얗게 핀 꽃 들녘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 바구니엔 앵두와 풀꽃 가득 담아 하얗고 붉은 향기가득 봄 맞으러 가야지 (가운데 줄임) 풀 무덤에 새까만 앙금 모두 묻고 마음엔 한껏 꽃 피워 봄 맞으러 가야지 모레면 벌써 24절기 셋째 ‘경칩(驚蟄)’이다. 경칩은 놀란다는 ‘경(驚)’과 겨울잠 자는 벌레라는 뜻의 ‘칩(蟄)’이 어울린 말로 겨울잠 자는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뜻이다. 원래 ‘계칩(啓蟄)’으로 불렀으나 기원전 2세기 중국 전한의 6대 황제였던 경제(景帝)의 이름이 유계(劉啓)여서, 황제 이름에 쓰인 글자를 피해서 계'자를 '경(驚)'자로 바꾸어 '경칩'이 되었다. 경칩에는 개구리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좋고 몸에 좋다고 해서 이날 개구리알 찾기가 혈안이 되는데 지방에 따라선 도룡뇽 알을 건져 먹기도 한다.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즙을 마시면 위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약으로 먹는 지방도 있다. 이때쯤 되면 경기도 포천에 있는 국립수목원 전시원에는 봄꽃들 잔치로 완연한 봄세상이 된다. 그와 함께 수목원 곳곳 얼음 녹은 물웅덩이마다 겨울잠을 끝낸 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자한(自恨) 春冷補寒衣(춘냉보한의) 봄날이 차서 얇은 옷을 꿰매는데 紗窓日照時(사창일조시) 깁창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네 低頭信手處(저두신수처)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긴 채 珠淚滴針絲(주루적침사) 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 적시네 이는 매창(梅窓)이 연인 유희경을 오랜 세월 동안 만나지 못하여 애절한 속마음을 표현한 <자한(自恨)>이라는 시다. 아직 쌀쌀한 이른 봄, 갑창(甲窓, 추위를 막으려고, 미닫이 안쪽에 덧끼우는 미닫이)에 햇빛이 비치고 있지만, 머리 숙여 그저 손길 가는 대로 바느질만 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 눈물이 실과 바늘을 적신다고 표현하여 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애절한 속마음을 짐작게 한다. 매창(梅窓)은 부안의 기생으로 황진이와 더불어 시서화에 능한 조선 여류문학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탕종(李湯從)의 딸로서 본명은 이향금(李香今)이며 매창은 호다. 계유년에 태어나 계생(癸生), 계랑(癸娘, 桂娘)이라고도 한다. 당대 문인이었던 유희경과 가슴 시린 사랑을 나누었고, 허균, 이귀 등과 교류하며 그녀의 문학적 재능을 널리 알렸음은 물론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다. 매창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수 무렵 - 변경서 쑥물 드는 을숙도엔 여백이 남아있다 스스로 몸 낮추며 드러누운 저 강물 나란히 일렬횡대로 명지바람* 불어오고 쓰다듬고 매만지면 상처도 꽃이 된다 떠났다가 때가 되면 다시 드는 밑물 썰물 웃을 일 슬픈 일들이 찰랑찰랑 뒤척인다 돌리면 공든 탑도 모래성 되는 세월 겨울은 정이 들어 떠나기가 어려운지 갈대발 하구를 따라 멈칫멈칫 걷고 있다. 모레 2월 19일은 24절기 둘째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다. ‘우수(雨水)’라는 말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말로 이제 추운 겨울이 가고 이른바 봄을 맞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봄꽃이 피어나기 전 마지막 겨울 추위가 선뜻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 아직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 이 무렵이다. 하지만, 봄은 이제 코앞에 다가와 있다. 이제 봄이 저 남녘에서 서서히 올라오고 있을 거다. 이때쯤 되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물이라며 한양 상인들에게 황소 60 마리를 살 수 있는 4천 냥을 받고 대동강을 팔았다는 김선달이 생각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이 땅을 휩쓸고 지나간 뒤 조선의 위정자들은 민생을 외면했고 백성은 고통 속에서 살아갔다. 이때 사회 현실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黃卷中間對聖賢 옛 책을 펴서 읽어 성현을 마주하고 虛明一室坐超然 밝고 빈방 안에 초연히 앉아 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가에 봄소식 보게 되니 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 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않으리 어제 1월 26일 제주방송에서는 “추위 이겨낸 '봄의 전령' 매화 만발.. 평년보다 46일 빨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꽃이 피기 시작한 매화가 이날 활짝 피었다는 소식이다. 그런가 하면 전국적으로 강추위가 찾아온 22일에도 경남 창원 한 아파트 단지에 매화가 피었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매화는 눈 속에 핀다고 하여 설중매(雪中梅), 설중화(雪中花)라 하고, 한겨울에 핀다고 하여 동매(冬梅)라고도 불린다. 맨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매화는 긴 겨울을 보내고 꽃이 피듯 시련기를 이겨낸 끝에 좋은 소식이 있음을 암시한다. 찬 서리를 이겨내는 강인한 성정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가는 선비의 의연한 자세와 닮았다고 하여 군자의 꽃으로 추앙받는다. 그와 함께 꽃말은 고결한 마음, 기품, 결백, 인내라고 한다. 조선 전기 성균관대사성, 대제학을 지낸 조선시대 으뜸 성리학자 퇴계 이황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십이월(음력)은 늦겨울이라 소한ㆍ대한 절기로다 눈 덮인 산봉우리 해 저문 빛이로다 새해 전에 남은 날이 얼마나 걸렸는가 집안 여인들은 새 옷을 장만하고 무명 명주 끊어 온갖 색깔 들여내니 짙은 빨강 보라 엷은 노랑 파랑 짙은 초록 옥색이라 한편으로 다듬으며 한편으로 지어내니 상자에도 가득하고 횃대에도 걸었도다 입을 것 그만하고 음식 장만 하오리라 떡쌀은 몇 말이며 술쌀은 몇 말인고 콩 갈아 두부하고 메밀쌀 만두 빚소 <농가월령가 (음력 12월, 양력 1월)> 오늘은 24절기의 마지막 날 대한(大寒)이다. 이름으로 보아서는 가장 추운 날이지만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소한 무렵이 대한 때보다 훨씬 추울 때가 많다. 그러나 아직 이 무렵은 한겨울인지라 먹거리가 부족했던 옛사람들은 끼니 걱정이 컸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세끼 밥을 두 끼로 줄였다. 겨울철엔 나무 한두 짐씩 하는 것 말고는 힘든 농사일은 없어서 세끼 밥 먹기가 죄스러워 점심 한 끼는 반드시 죽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는 죽을 쑤어 먹음으로써 아직 남아있는 양식을 아껴서 돌아오는 보릿고개를 잘 넘기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따뜻한 얼음 - 박남준 옷을 껴입듯 한 겹 또 한 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 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일주일 뒤면 24절기의 마지막 ‘대한(大寒)’으로 이때쯤이면 추위가 절정에 달했다. 아침에 세수하고 방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당기면 손에 문고리가 짝 달라붙어 손이 찢어지는 듯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뿐만 아니다. 저녁에 구들장이 설설 끓을 정도로 아궁이에 불을 때 두었지만 새벽이면 구들장이 싸늘하게 식었고, 문틈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에 몸을 새우처럼 웅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興到卽運意(흥도즉운의) 흥이 나면 곧 뜻을 움직이고 意到卽寫之(의도즉사지) 뜻이 이르면 곧 써내려 간다 我是朝鮮人(아시조선인) 나는 조선 사람이니 甘作朝鮮詩(감작조선시) 조선시를 즐겨 쓰리 卿當用卿法(경당용경법) 그대들은 마땅히 그대들의 법을 따르면 되지 迂哉議者誰(우재의자수) 오활하다 말 많은 자 누구인가? 區區格與律(구구격여률) 구구한 그대들의 시격과 운율을 遠人何得知(원인하득지) 먼 곳의 우리가 어찌 알 수 있으랴?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무려 5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는 다산(茶山)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실학자의 으뜸 인물이다. 위 한시는 다산 정약용이 쓴 <노인일쾌사 육수 효향산(老人一快事 六首 效香山)>의 한 꼭지로 다산이 노인의 한 가지 즐거운 일에 관한 시 여섯 수를 향산거사(香山居士) 곧 백거이(白居易, 중국 당나라 때의 뛰어난 시인)의 시체(詩體)를 본받아 1832년 지은 것이다. 《조선시대 한시읽기(한국학술정보)》에서 원주용 교수는 다산이 <척발위론(拓跋魏論)>에서, “성인의 법은 중국이면서도 오랑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안 부 - 김시천 때로는 안부를 묻고 산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그럴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사람 속에 묻혀 살면서 사람이 목마른 이 팍팍한 세상에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물어준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가슴 떨리는 일인지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걸 깨우치며 산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오늘 내가 아는 사람들의 안부를 일일이 묻고 싶다 “고모님께서 새해는 숙병(宿病)이 다 쾌차(快差)하셨다 하니 기뻐하옵나이다.” 이 글은 숙종임금이 고모인 숙희공주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숙종은 고모의 오랜 병이 완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숙병이 쾌차했다 하니 기쁩니다.”라며 아직 병중이건만 이미 병이 다 나은 것처럼 표현했다. 그런가 하면 정조 때 사람 한경(漢經)은 하진백(河鎭伯) 집안사람들에게 문안 편지를 보냈는데 하진백이 과거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을에 있을 과거에서 급제했다며 미리 축하의 덕담을 보내고 있다. 이 밖에 명성왕후(明聖王后, 현종 비)가 셋째 딸인 명안공주(明安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