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 잘못을 뉘우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은 책이 있다면 어떨까요. 놀랍게도 그런 책이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땅을 짓밟은 일본인들이 손수 쓴, 90명의 회고 90편을 모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역(逆)징비록》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징비록에서 ‘역징비록’으로 임진왜란의 참화를 겪은 서애 유성룡은 《징비록(懲毖錄)》을 남겼습니다. ‘징비(懲毖)’란 《시경》의 “미리 징계하여 훗날의 근심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온 말입니다. 곧 자기 잘못까지 뼈에 새겨 “다시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말자”라고 다짐한 반성의 기록이지요. 그런데 여기, 정반대의 책이 있습니다. 침략한 쪽이, 반성은커녕 “우리가 조선을 잘 다스렸다”라며 스스로 칭찬한 책입니다. 반성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자화자찬이 들어선 셈이니, 저는 이 책을 뒤집힌 징비록, 곧 ‘역징비록’이라 부릅니다. 우리에게는 유성룡의 징비록만큼이나 뼈아프게 읽어야 할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조선 통치의 회고와 비판》은 우리가 지은 책이 아니라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훈민정음학 박사] 두 권이 같은 날 나온 사연 2026년 8월 12일, 연세대학교 유현경 교수가 정년 퇴임식을 했다. 그 자리에 두 권의 책이 함께 놓였다. 하나는 저자가 홀로 쓴 학술 단행본 《한국어 주어의 통사론》(집문당)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 스물세 명이 글을 모은 《한국어 문법 연구의 교학과 상장》(유현경 편, 집문당)이다. 두 책이 나란히 나온 경위가 흥미롭다. 지은이의 머리말에 따르면 2025년 여름, 제자들이 정년 기념 논총을 준비하고 있다며 그동안 발표한 논문을 한 권으로 묶어 보자고 제안해 왔는데, 정작 저자는 그보다 앞선 2024년 초부터 이미 《한국어 주어의 통사론》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서로의 계획을 모른 채 비슷한 시기에 같은 마음으로 책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저자가 원고 일정을 늦추어 두 책을 함께 펴냈다. 우연이라기에는 상징적이다. 스승의 단독 저서와 제자들의 논총이 같은 날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다는 것은, 한 학문 공동체가 어떻게 굴러왔는지를 그대로 보여 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논총의 제목에 담긴 '교학상장(敎學相長)'—가르치고 배우는 가운데 스승과 제자가 함께 자란다—은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훈민정음학 박사] 《훈민정음 해례본》은 그동안 주로 국어학의 눈으로 읽혀 왔다. 그런데 해례본은 '문자에 관한 책'이기 이전에 '문자로 쓰인 책'이다. 붓끝이 지나간 자리, 점과 선과 원의 짜임 그 자체가 연구 대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낯설고 외로운 길을 55년 넘게 홀로 걸어온 이가 있다. 서예가이자 서체연구가인 문곡(文谷) 박병천 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다. 《한글궁체연구》(1983), 《한글판본체연구》(1999), 《한글서간체연구》(2007), 《한글서체학연구》(2014)로 이어져 온 그의 연구 여정은 2021년, 반포 575돌 한글날에 맞추어 펴낸 567쪽의 역저 《훈민정음 서체연구》(한글ㆍ·漢字)로 하나의 봉우리에 올랐다. 이 책에서 그는 해례본 한글문자의 제자원리를 서예학적으로 재해석하고, 해례본 한자 글씨의 주인공이 안평대군임을 실증적으로 밝혔으며, 역대 영인본의 오류와 정음편 낙장 복원의 새 개선안까지 제시했다. 국어학ㆍ서예학ㆍ디자인학을 아우르는, 말 그대로 '훈민정음 서체학'의 집대성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훈민정음 해례본》 연구의 길에서 선생과 동행해 왔다. 충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요즘 세계는 한국 문화를 'K-컬처'라고 부른다. K-팝, 드라마, 영화, 게임까지 한국 콘텐츠는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BTS 아리랑'은 세계 음악 차트를 뒤흔들었고,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전통 놀이를 글로벌 콘텐츠로 재탄생시켰다. '강남스타일'은 하나의 몸짓으로 전 세계를 연결했으며, 최근 애니메이션 'K-POP 데몬헌터스'는 음악과 서사가 결합한 통합형 콘텐츠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이 모든 시작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의 서광일 대표는 도서출판 '더 로드'를 통해 펴낸 신간 《K-컬처의 원류, 우리가 잘 몰랐던 국악 이야기》에서 글을 쓰게 된 문제의식을 이처럼 밝힌다. "K-컬처는 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을까?"라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현대 산업 시스템에서 답을 찾지만, 지은이 서 대표는 "K-컬처의 성공은 산업이 아니라 문화의 구조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단언한다. 책에서 지은이는 "풍물의 장단, 판소리의 서사, 탈춤의 참여성, 그리고 아리랑의 공감 구조가 오늘날 K-컬처의 핵심 경쟁력으로 이어졌다"라고 설명한다. 풍물은 사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교육부 장관님, 그리고 전국의 시도교육감님들께. 저는 마흔아홉 해째 우리말글 연구와 운동을 함께 해 온 사람입니다. 2014년 12월 17일, 저는 간송미술관의 각별한 배려로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570년 세월을 견뎌 온 종이와 먹빛 앞에서 저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 학술 책임을 맡아 2015년 10월 9일, 역사상 처음으로 해례본 복간본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교보문고). 2023년에는 세종 시대 언해본의 첫 복간본도 펴냈습니다(가온누리). 원본을 보고 복간본을 만드는 일에 여러 해를 쏟으면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끝내 떨치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이렇게 애써 되살려 놓았는데,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 이 책을 가르칠 선생님들은 이 책을 읽어 보신 적이 있을까. 오늘, 이 편지는 그 물음에서 나왔습니다. 학자로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을 길러내는 일에 책임을 진 분들께 학자로서 드리는 간곡한 부탁입니다. 1. 2026년,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고 있습니까? 올해는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80돌, 한글날을 처음 정한 지 100돌이 되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이재명 대통령님께 올립니다. 저는 1977년 철도고등학교 1학년 재학 시절 한글 운동에 발을 들인 뒤로 올해까지 마흔아홉 해를 한글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 해에 한자식 이름을 버리고 ‘슬기롭고 옹골차다’라는 뜻의 토박이말 이름 ‘슬옹’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 뒤로 《훈민정음 해례본》과 세종을 공부하는 일로 세 개의 박사 학위를 받았고, 150편의 논문과 백스무 권이 넘는 책을 썼습니다. 이러한 학술 공로로 2021년에는 세종문화상 대통령상도 받았습니다. 올해 2026년은 우리 겨레에게 세 겹으로 뜻깊은 해입니다.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80돌이 되는 해이자, 1926년 ‘가갸날’을 선포하여 한글날을 제정한 지 100돌이 되는 해입니다. 또한 우리말글 중흥 시조라 일컫는 주시경 선생 탄신 150돌이기도 합니다. 문자를 만든 임금의 뜻과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그 문자를 기려 겨레의 얼을 지키려 한 선인들의 뜻이 한 해에 겹쳐 있습니다. 이런 해에 대통령님께 꼭 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어, 이렇게 공개편지를 씁니다. 1. 어떤 작품인가? 한글 서예의 큰 어른이신 청농 문관효 선생께서 두 폭 병풍
[우리문화신문=윤지영 기자] 도서출판 미래지식이 니체 명문장 필사책 《쓰러지지 않으려면 춤을 추어라》를 펴냈다. 삶의 매 순간 영혼을 깨우고 단단하게 다잡아줄 100개의 명문장 삶의 무게에 지친 현대인을 위해 니체의 철학적 고향인 질스마리아에서 길어 올린 인생 아포리즘 100개를 골랐다. 이 책은 눈으로만 읽는 철학책이 아니다. 고통을 창조적 에너지로 바꾼 니체의 뜨거운 문장들을 독자가 직접 쓰고 음미하는 특별한 필사 도서다. 문장 사이사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 명화들은 시각적 평온함을 더하며 한 권의 예술 작품을 소장한 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하루 10분, 지은이의 깊이 있는 해설과 명화를 길잡이 삼아 니체의 숨결을 손끝으로 따라 적어보자. 복잡한 생각은 비워지고, 흔들리는 삶을 다시 춤추게 할 강력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무거운 현실 앞에 주저앉은 당신에게 니체가 건네는 매혹적인 해독제 한 번이라도 춤추지 않은 날은 잃어버린 날로 여기자! 현대인의 삶은 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와 같다. 거센 바람을 맞으며 중심을 잡으려 애쓰다 보면 어느새 온몸이 경직되고 마음은 무거워진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티는 현대인에게 니체는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기록 뒤편에서 조선을 지키기 위해 소리 없이 칼을 갈고 방울을 흔들었던 조선 퇴귀사들의 숨겨진 사투가 장엄한 소설로 다시 깨어났다. 벽사신당은 실제 무교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조선 오컬트(Occult,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숨겨진 지식을 탐구) 장편소설 ‘벽사신궁 - 임진왜란편’(상·하권)을 동시 펴다고 밝혔다. 악(惡)이 아닌 한(恨)과 싸운다… 칼이 닿지 않는 어둠 속 두 손을 모아 싸우는 이야기 신간 《벽사신궁 - 임진왜란편》은 40년 동안 무업의 길을 걸으며 전통 예법과 진법을 수행해 온 만신(萬神)이자 실제 벽사신당의 당주인 한울과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대중을 사로잡아 온 25년 경력의 베테랑 시나리오 작가 이규복이 의기투합해 빚어낸 첫 작품이다. 두 저자는 무교를 단순히 흥미로운 소재나 자극적 콘텐츠로 소비해 왔던 기존 풍조에서 벗어나 전통 샤머니즘이 지닌 진정한 값어치와 역사성, 위로의 힘을 정공법으로 담아냈다. 소설의 무대는 왜란의 참화로 백성들의 고혈과 비명이 산천을 뒤흔들던 1592년 조선이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인간의 원한과 사악한 원혼들이 뒤엉켜 조선의 국운을 위협하는 가운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글날 제정 100돌을 맞은 올해,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동기를 놓고 벌어진 학술 논쟁이 뜻밖의 자리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바로 포털 기사 아래 ‘댓글난’이다. 한국일보는 지난 7월 22일 ‘세종의 훈민정음, 백성 위한 게 아니었다? 한글날 100돌에 불거진 불편한 논쟁’(최다원 기자)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지난달 펴낸 《한글, 불편한 진실》(푸른역사)의 주장과, 이에 대한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객원교수)의 반론을 서면ㆍ대면 인터뷰로 나란히 배치한 기획이었다. 강 교수는 한문학과 서지학 분야의 대중 학술서로 매우 권위 있는 학자이고 김 교수는 고1 때부터 49년 동안 한글운동을 해온 저명한 한글운동가자 한글 관련 박사학위 세 개와 130권 저술(72권 공저), 논문 150편을 발표한 세계적인 한글학자이기도 하다. 강 교수는 세종이 즉위 2년(1420)에 ‘부민고소법’을 폐지해 백성이 관의 수탈에 항의할 길을 막았고, 훈민정음을 편 뒤에도 백성이 글자를 익힐 기회를 제도로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훈민정음의 본질은 ‘훈민(訓民)’ 곧 백성에게 복
[우리문화신문=윤지영 기자] 투유드림의 출판 상표 텍스티(TXTY)가 소설가 정보라의 초기 작품 3편을 엮은 《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를 7월 20일 펴냈다. 한 작가의 시작을 읽는 일은 훗날 그가 써 내려갈 이야기의 단서를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름을 빼앗긴 여성, 제물로 길러진 소녀, 새끼를 잃은 길고양이. 정보라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전부터 이미 중심에서 밀려난 존재들의 목소리를 쓰고 있었다. 정보라는 과학소설(SF)과 모험(판타지), 공포(호러) 등 장르문학의 문법을 현실의 문제와 결합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 왔다. ‘저주토끼’, ‘너의 유토피아’, ‘붉은 칼’, ‘한밤의 시간표’ 등은 부커상 인터내셔널, 전미도서상, 필립 K. 딕상, 로커스상, 어슐러 K. 르 귄 소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이번 책은 그보다 앞선 시기에 쓰인 세 작품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불평등, 사랑과 연대를 향한 정보라의 오래된 관심을 보여준다. 첫 번째 수록작 ‘내 이름을 불러줘’는 혁명 이후 개인의 이름을 없애고 숫자로만 사람을 구분하는 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까지 나라가 통제하는 세계에서 주인공은 자신과